상단영역

본문영역

[art & medicine]크메르의 미소

  • 입력 2008.11.01 00:00
  • 기자명 emddaily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바이온(Buyon) 사원은 앙코르 와트와 더불어 앙코르 지역의 명승지로 꼽힌다. 남쪽 문을 지나 숲길을 통해 1.5㎞가량 진행하면 거대한 사원을 만나게 되는데 가까이 갈수록 그 섬세한 아름다움에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바이온 사원은 앙코르 톰의 정 중앙에 위치하는데 앙코르 와트보다 약 100년 후인 12세기말 자야바르만 7세(Jayavarman VII, 1181~1201)에 의해 건축되었다고 한다.
그는 앙코르 왕국의 전성시대를 연 크메르(Khmer)의 영웅이며 크메르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와 가장 많은 유산과 치적을 남긴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받으며, 그는 선대왕과는 달리 대승불교를 받아들여 자기 자신을 관세음보살과 같이 생각하여 이 바이온 사원을 세웠다는 것으로 왕(자야바르만 7세)의 경지가 신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앙코르 문화유적은 신화나 전설 속 이야기로만 여겨진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앙코르와트가 숨겨져 있는 캄보디아 씨엠립은 과거 막강한 세력을 자랑하던 크메르족이 세운 앙코르 제국의 문화유산이기도하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자야바르만 7세는 정통후계자가 아닌 방계였는데 직계가 아닌 방계가 권력을 쟁취한 그는 정권의 정당성을 내세우기위해 힌두교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사회에 대승불교를 들여오면서 바이온 사원이외에도 앙코르 톰, 프레아칸, 닉뽀안, 따 프롬 등 많은 사원을 세우는 한편 빈민구제를 위한 많은 시설들도 건설하였다고 한다.
자야바르만 7세는 탁월한 군사력, 정치력, 그리고 자신을 관세음보살과 일치시키며 신격화시킬 정도로 능력 있는 왕이었으며 앙코르 왕국을 번영시킨 위대한 지도자였다고 한다.
저자도 2003년에 바이온 사원을 방문한바 있는데 가장 신기하게 느껴졌던 것은 석탑들 마다 동서남북의 네 방위에 조각된 신비의 미소를 짓는 얼굴들이 왕관 모양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었다. 현대 크메르족은 이 탑을 ‘프롬 바이온(Prohm Buyon)’이라고 부는데 ‘프롬’이란 캄보디아의 브라흐만 역사의 자취로 남아 있는 이름이다.
[1L]
시공을 넘나드는 불가사의한 미소들
바이온 사원에 있는 석탑에 새겨진 얼굴들이 누구의 것이며 왜 이런 조각품을 만들었는가를 밝히려는 학계의 시도와 다양한 노력은 자야바르만 7세의 통치의 종교적 특이성을 고려해서 일반적으로 브라흐만 대승불교(Brahmanic-Mahayanic)의 신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바이온 사원에는 많은 석탑이 있고 그 석탑에 새겨진 얼굴의 미소는 마치 붓으로 그려 넣은 인물화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그 불가사의한 미소들과 만나는 순간부터 시공을 넘나들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는 바이온의 미소, 앙코르의 미소, 자야바르만 7세의 미소, 관세음보살의 미소 등 여러 이름의 미소로 표현하고 있는데 사실 그렇다. 어떻게 보면 관세음보살의 미소인 듯한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용감한 장군의 호걸끼 어린 미소 같이 느껴지는 것도 있어 모든 조각품의 미소는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그래서 앞으로의 이 글에서는 이 석탑들의 미소를 크메르의 미소로 표기하기로 한다.
누구를 막론하고 바이온 사원에서 크메르의 미소 앞에 서는 순간 느끼게 되는 것은 처음 대하지만 수없이 많이 만난 것 같은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천년을 지나온 조각품이지만 크메르의 미소들은 그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의 미소와 더불어 동서양을 넘나들며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해주기 때문에 그 미소 앞에 서면 우선은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조각의 얼굴들은 그게 그것인 것처럼 보여도 같은 표정, 같은 미소는 하나도 없으며 모두가 제각기 다른 얼굴의 표정이다. 이렇듯 알듯 말듯한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듯한 얼굴 조각상이 도처에서 내려다보고 있어 얼굴의 숲이라고도 할 바이온 사원은 탑이 모두가 54기나 된다. 탑마다 동서남북으로 4개의 얼굴이 조각되어있어 총 조각상 숫자는 216개가 되는 셈이다. 신비롭다고 할 수밖에 없는 사면상(四面相)의 미소를 바라보며 ‘세계 7대불가사의’라는 수식어가 공연히 나온 것이 아닌 것을 실감하게 된다.
[2L]
시간과 각도, 빛의 움직임에 달라지는 미소들
크메르의 미소는 사람에 따라 나름대로의 인상을 받고는 나름대로의 해석으로 참으로 여러 가지로 표현되고 있어 바이온 사원의 216개의 사면상은 미소의 최고 최대의 세계적인 집합장소라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어떤 화가들은 몇 날 며칠을 같은 장소에 앉아 이 오묘한 미소를 잡아내기 위해 애를 쓰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면 크메르의 미소야 말로 미소 연구가들에게는 둘도 없이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석탑에서 보는 크메르의 미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하나는 관세음보살의 미소와 같이 눈을 지그시 감고서의 대자대비의 미소이며, 다른 형의 미소는 눈을 뜨고 정면을 보거나 밑을 보는 즉, 통지자로서 백성을 내려다보며 태평성대를 대만족해하는 왕의 미소 같기도 하다. 후자의 경우를 보아 사람들은 통치자였던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을 상징적으로 조각해 넣은 것이라 생각한 것 같기도 하다.
석탑의 얼굴은 보는 이의 시선의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높은데 있는 얼굴을 밑에서 처다 보면 그 얼굴에는 미소가 전연 없는 듯이 보이고, 정면에서 마주 보는 경우, 높은 데서 밑으로 내려 보는 경우, 그리고 옆에서 사각을 지고 보는 경우 등에 따라 미소의 표정은 달라지는데 그중에서 옆에서 사각을 지고 보는 시선에 들어오는 미소가 보다 뚜렷이 웃는 것임을 느끼게 한다.
또 광선의 위치에 따라서도 미소의 표정은 달라지는데 특히 새벽에 동이 트면서 빛을 받기 시작하면 태양의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미소의 표정은 변화하다가 저녁노을에 보는 얼굴의 모양과 미소의 표정은 전연 다른 느낌의 천태만상의 미소를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햇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얼굴의 모양과 미소의 표정이 달라는 것을 이용하기 위해서 얼굴을 석탑의 4면에 조각하였다는 것에 납득이 감에 따라 왜 하필이면 4면 조각상이었는가의 이유를 알게 될 것 같다.
석탑의 얼굴의 가장 눈에 띠는 공통적인 특징이라면 두툼한 입술에 넓은 볼, 조금 짧은 듯한 얼굴에 입술 양쪽이 약간 위로 올라가면서 짓는 미소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점이다. 또한 코는 한결같이 콧날개가 크고 넓으며 미소 지움에 따라 콧날개의 폭은 더욱 늘어나 그 외측에서 구각(口角)으로 향하여 생기는 웃음의 주름인 비순구(鼻脣溝)를 구비하고 있다
미소의 표정은 눈에서도 볼 수 있는데 눈을 가볍게 감고 미소 짓는 것과 눈을 반쯤 감은 것, 눈을 완전히 뜬 것 등을 볼 수 있으며 눈을 뜬 얼굴에서는 시선이 아래를 보는 것과 고개를 들고 전면을 보는 것 등 다양한 눈의 표정을 볼 수 있다.
석탑의 얼굴 조각의 옆모습을 보면 이마에서 콧마루 또 입술에서 턱에 이르는 그 아우트라인의 윤곽은 일반 사람들의 모습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즉 정면으로나 약간 사각을 지운 모습은 크메르 미소 얼굴의 특유한 모습과 윤곽이지만 이를 완전 옆모습으로 보면 그 특징이 사라지고 일반 사람과 다름이 없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이를 정면과 옆모습을 번갈아 보면 기이하고 신비의 얼굴이 되고 이 얼굴에서 울어나는 미소 또한 신비하고 기이한 것으로 보이게 되는, 전술 한바와 같은 ‘표정의 만능성’을 지녔기 때문에 사람들은 매혹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영원한 미소
이러한 독득한 조각양식과 이러한 조각을 생각해낸 발상도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즉 그 얼굴의 길이가 작은 것은 175cm, 큰 것은 240cm을 넘는 것으로 사람의 키보다도 큰 돌을 사용하였다는 그 거대함에 압도되는 그 초자연성이라는 것에 신비성이 한층 더 가미되어 이미 기술한 미소의 만능적 다양성과 이행성을 전부 하나 하나 감상할 수 있었다.
또한 화강암이 많아 석재 문화재가 많은 우리나라 석공들도 솜씨가 뛰어나지만 이곳 캄보디아 사람들의 돌을 떡 주무르듯이 한 조각 솜씨는 감탄을 금할 수 없게 되고 그것도 이 석탑들이 오랜 세월동안 밀림 속에 매장되어 있다가 발견 되었는데도 그 얼굴의 미소는 조금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 그 신비하고 기이한 크메르의 미소를 한번 본 사람은 이를 언제까지나 잊을 수 없게 되는 영원한 미소로 남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