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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tal clinic]현실을 직시하는 태도

  • 입력 2008.12.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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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에 깁스를 한 30대 초반의 남자가 어머니와 함께 나의 진료실을 찾아 왔다. 밤에 잠을 잘 자지 않고 어머니가 보기에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고 간혹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을 하여 어머니가 정신과에 가보자고 해서 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증상은 약 일 년 전부터 있었는데 요 근래 심해졌다고 하였다. 팔은 몇 달 전 기차에서 떨어지면서 골절이 생겼다고 하였다. 보기에 순해 보이고 나이에 비해 좀 어려보이는 이 남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국가고시를 준비하던 중에 이런 문제가 생겨 지금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상태였다.환자에게 주로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환자가 대답하기를 “내 속에서 진리와 반진리(反眞理)가 싸운다. 내 속에 쿠데타가 일어나 객체가 주체를 거스르는데 원래는 모두 진리가 장악하고 있다가 진리가 너무 사랑한 나머지 반진리를 풀어주었더니 오히려 반진리가 진리에 거스른다. 그 과정에서 제3, 제4의 반진리가 날뛰고 있어 진리가 반진리를 잘 평정할까 두렵다. 부처님 진리가 평정해야 될 텐데 큰일이다”라고 했는데 매우 진지하였다. 그것만 하루 종일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진리의 왕인 부처님이 승리하여야 될 텐데 걱정이라고 몇 번을 이야기하였다. 이야기하는 것으로 봐서는 마치 부처님의 진리가 모든 것을 제압하면 만사가 잘 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현실 부정, 그리고 종교로의 도피이 환자에게 내 자신도 종교가 불교이고 불교를 공부하고 있지만 환자가 이야기하는 내용은 진정한 불교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야기 같다고 하면서 진리와 반진리의 싸움은 환자 자신 마음속의 갈등이나 불안을 반영하는 것 같은데 이러한 증세가 시작된 시기인 약 일 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대답하기를 몇 년간 사귄 여자가 있었는데 자기는 헤어지고 싶지 않았지만 여자 쪽에서 요구하여 할 수 없이 헤어진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것 때문에 굉장히 마음이 아팠으나 몇 달 전에 겨우 마음이 정리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 그동안 국가고시를 준비했는데 도저히 자기 능력이 못 따라가서 포기한 상태라고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 지 막막하다고 했다. 이 두 가지의 큰 현실적 고민이 있던 중에 이런 증세가 생겼다. 그 후로는 현실적인 고민보다는 ‘큰 진리가 작은 진리를 굴복시켜야 될 텐데’라는 고민 속에 빠 졌다.팔이 부러진 것도 그 당시에 자기 때문에 친구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피해망상 속에서 친구를 구하기 위해 기차에서 일부러 떨어지면서 다친 것이다.환자는 1남 5녀의 막내이자 외아들로 집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별 고생 없이 컸고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라 생활력과 현실 적응력이 좀 약한 편이었다. 현재 이 환자는 정신병이 발병한 상태이고 진리와 반진리의 싸움이라는 것도 불교나 종교에 대한 진정한 고민이 아니라 자신의 현실적인 문제 즉 여자와 헤어진 것과 취직과 같은 현실 문제에 대한 불안을 반영하는 것이다. 지금 이 환자는 현실의 고민을 피해버리고 다른 형태의 고민을 만들어서 현실을 도외시하고 거기에만 빠져있는 상태이다. 이 환자가 이러한 정신병의 상태에서 회복되려면 다음의 세 가지를 지켜야 한다.첫째, 회복이 될 때까지 약을 철저히 먹고 둘째, 자기가 왜 이런 상태에 빠지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상담을 통해 깨달아야 된다. 셋째, 가족은 환자가 약을 잘 먹도록 잘 보살피면서 환자를 이해하고 환자가 현실로 되돌아와 적응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이 환자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종교적인 문제 같지만 실제는 현실에서 부닥친 문제를 잘 극복하지 못해 종교로 달아나 거기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문제의 해결은 현실을 되찾음으로써 된다.현실을 바로 보는 것, 현실에 맞게 살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정신병이 생길 이유가 없다. 정신과 환자를 볼 때 나는 항상 보는 것이 ‘환자가 자신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이다. ‘환자가 얼마나 현실에 맞게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정신건강은 좋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노이로제(신경증)와 정신병을 정의해 보면 노이로제는 현실 감각은 있는데 현실에 맞지 않게 생각하고 행동하다 보니 현실과 충동이 있어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괴로운 상태이고 정신병은 현실이 아예 실종되고 환상이나 망상으로 대체된 상태이다. 그래서 현실하고는 동떨어지게 살다보니 더욱더 현실에서 낙오가 되고 그러다 보니 더욱 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병으로 빠져 드는 악순환이 있게 된다. 현실극복, 올바른 종교적 태도 중요내가 상담했던 20대 초반의 여자 환자는 별다른 신체적인 병 없이 무기력하고 힘이 하나도 없고 몸이 아픈데 병원을 가도 낫지 않자 하도 답답하여 점을 쳤더니 신(神)이 내리는 신병(神病)이라고 하며 굿을 하라고 하였다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이 싫어서 하지 않았고 그 후에도 소위 ‘신병’이라고 하는 것이 일 년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한다.필자와 상담하는 과정에서 환자 스스로 깨달은 것은 신병이라고 하는 것을 앓을 때 항상 현실적으로 처리하기 힘든 일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괴로워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이 환자는 다시 어려운 일을 당할 때는 피하지 않고 직면하여 그 일을 해결했다. 한 차례 그런 경험을 한 후에 신병이라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이러한 적극적인 현실 극복의 문제와 함께 앞서 말한 환자의 경우에는 올바른 종교적인 태도도 중요하다. 이 남자 환자의 경우 자신이 갖고 있는 개인적인 문제 때문인지 불교경전 중에서도 화엄경에 나오는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으로 장엄된 부분만을 중시하였는데 이러한 편협한 시각은 올바른 종교적인 태도가 못 된다. 모든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종교도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야 한다. 불교와 같이 진리를 추구하는 종교는 특히 그렇다. 아주 특출한 사람이 아니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서 공부하여야 원만하고 높은 경지로 올라갈 수 있다.필자의 생각으로 현실의 올바른 관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부처님도 현실을 중시하고 인간의 착한 의지를 가장 중시하였다. 현실에 대한 올바른 관찰과 그에 입각한 실천을 중시한 경전을 중심으로 불교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