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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medicine]눈길로 대화하는 ‘모자상’

  • 입력 2008.12.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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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각자의 견해가 있겠지만 그래도 많은 의견이라면 아기를 정답게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동자를 꼽고 있다. 아기는 사람으로 태어나 최초로 만나는 이가 어머니요, 가장 기쁘고 감격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가 어머니요, 생명의 위험을 느꼈을 때 제일 먼저 부르게 되는 이름이 어머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자식을 보는 눈에는 이런 것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 인간으로서는 가장 자비로운 눈매와 다정한 눈길을 주며 특히 아기를 보는 어머니의 눈에는 흔들리지 않는 의지마저 담겨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이라는 것이다.

유태인들이 ‘지혜의 서’라고 자랑하는 탈무드에 이런 글이 있다.

“내 대신 너에게 너의 어머니를 보내노라. 나에게는 등이 없어서 너를 업어줄 어머니를 너에게 보냈고, 내게는 손이 없어서 너를 붙들어 주고 어루만져 줄 어머니를 네 곁에 보냈고, 너를 품어줄 가슴이 없어서 어린 너를 품어 줄 어머니를 네 곁에 보냈으며, 내게는 젖이 없어서 생명의 젖줄을 너에게 보냈노라.”

이렇듯 주가 아기를 이 땅에 보내실 때는 자기를 대신하여 사랑으로 돌보아 줄 어머니를 선택하여 태어나게 하였기에 어머니는 하나님의 대리자다. 따라서 어머니의 최대의 사명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녀를 잘 양육하는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성들에게 그러한 능력을 주셨다. 사춘기에 들어서면 어머니가 될 수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해 달거리를 하게 하였으며, 모성애의 상징인 모유와 관계되는 호르몬인 프로락틴(prolactin)을 남자보다 60%나 더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그래서 여성은 부드럽지만 강하다. 이러한 신체적인 능력과 더불어 남성들로서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흉내조자도 낼 수 없는 자식사랑의 뜨거운 마음을 주셨다.
그래서 어머니의 자식사랑은 인간으로서 행할 수 있는 최고의 마음씨이며 감동이라는 것을 높이 평가하는 철학이나 문학, 그리고 각종 예술작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회화에도 어머니의 자식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어린 아기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모자상(母子像)’을 그린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성모자상(聖母子像)’을 주제로 한 작품은 많이 있으나 그것에 대해서는 후술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일반인들에 대한 ‘모자상’에 대해서만 기술하기로 한다.
서양회화사를 조사하였던바 ‘모자상’을 실감 있게 가장 많이 그린 화가는 미국의 메리 카사트(Mary Cassatt 1861-1926)라는 여류화가로서 그녀는 미국태생이지만 인상파 그룹의 중요한 멤버로 파리에 주거지를 두고 작품 활동을 하였다. 그녀의 작품은 당대 유명한 화가였던 에드가 드가(Edgar Degas)의 관심을 끌게 되어 드가는 동료 인상파 화가의 전시회에 그녀를 초대할 정도로 매력적인 그림을 그린 화가였다. 카사트의 ‘모자상’의 작품 중에서 어머니와 아기사이에 눈길과 관계되는 것만을 추려보았더니 마치 탈무드에 나오는 주의 말씀을 실천에 옮기는 것 같은 그림들이 있어 소개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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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트의 ‘루이스의 아기 젖먹이기’(1898)는 루이스라는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인데, 아기는 젖을 빨면서 마치 자기의 생명을 이어갈 젖줄을 준 어머니는 평생의 은인이기에 감사한다는 듯이 어머니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어머니의 눈길은 보이지는 않으나 틀림없이 아기의 눈길과 눈맞춤을 하면서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무언의 대화가 서로의 눈매와 눈길로 오고 가는 장면을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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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트의 작품 ‘아기의 첫 애무’(1890)라는 그림은 아기는 어머니와 같이 있는 것이 자기의 가장 행복한 시간임을 어머니와의 눈맞춤으로 전하다 못해 이번에는 닿지 않은 손을 들어 어머니의 입과 턱을 어루만지면서 이 세상에 나서 어미에게 하는 최상의 애정표시인 애무(愛撫)를 하고 있다. 생각지도 않았던 아기의 애무능력에 감탄한 어머니는 아기의 발을 잡아 애무에 보답하고 있다. 아기의 눈길에는 힘을 주어 자기의 최대의 힘을 발휘했다는 것을 어미에게 고하고 있으며 어미는 아기의 첫 애무에 감탄의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다.





[3L]
카사트의 ‘졸리는 아기’(1910)라는 작품을 보면 아기는 배불리 먹고 어머니와 눈맞춤하며 실컷 놀다가 이제는 기진맥진해져 잠이 온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 얼굴을 어머니의 어깨에 파묻고 잠에 들기 시작한다.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도 피곤하다. 그러나 아기가 완전히 잠들어 잠자리에 눕힐 때 까지는 움직이지도 않아 아기를 안심하고 잠들게 하기위해 침묵을 지킨다. 어머니의 눈길은 피곤한 듯이 눈매에 힘이 없다. 그러면서도 눈길을 밑으로 주고 무엇인가 생각에 골몰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아기를 좀 더 편안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할 것인가를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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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트의 작품 ‘안의 아기와의 볼맞춤’(1897)을 보면 안이라는 어머니는 아기와 볼맞춤을 하고 있다. 아기가 너무 귀엽고 소중해 눈맞춤만으로는 성이차지 않았던지 아기를 번쩍 들고는 아기의 볼에다 자기의 볼을 갖다 대고 있다. 아기도 싫지 않은 듯이 가만히 어머니의 볼맞춤에 응하고 있다. 볼맞춤 때문에 턱이 들려서인지 아기와 어머니의 눈의 방향은 모두다 위를 향하고 있으나 눈길은 아기도 어머니도 밑으로 떨구고 있어 무엇을 보는 눈길이 아니라 무엇을 감상하는 눈길이다. 즉 아기와 어머니는 피부와 피부의 접촉에 의해서 눈길로는 나눌 수 없었던 정서적인 애정을 나누고 있다.



[5L]
카사트의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1900)를 보면 아기가 잠에서 막 깨어났는지 어머니의 품을 떠나지 않으려고 고개를 어머니의 어깨에 떨구고 움직이려 하지 않아 아기의 오른손이 어머니의 옷을 잡고 놓질 않는다. 어머니와 아기의 눈길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으나 어머니는 아기의 뒷머리에 얼굴을 대고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모습이다. 아기의 눈길은 휴식을 취하는 눈치지만 어머니의 눈길은 무엇을 응시하며 힘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기에게 힘내라고 활발한 응원을 주고 있는 듯하다.
카사트의 ‘녹색배경의 모자상’ (1897)은 아기와 어머니가 어떤 대상물을 같이 보고 있다. 눈길을 얼핏 보면 어머니와 아기의 눈길의 방향이 다른 것 같지만 그것은 눈높이와 시각(視角)의 차에서 오는 것이며 눈길을 연장하면 초점은 같은 사물에 두어 공시(共視 viewing together)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기는 자기로서는 처음 보는 것이어서 낯설어 다소 당황하는 듯 손을 입에다 갖다 대고 약간 흥분된 듯한 눈매다. 어머니의 눈매로 보아 이런 것을 아기에게 어떻게 설명을 할 것인가의 생각에 잠기는 듯 손을 턱에다 대고 있지만 앞으로도 이런 것은 자주 보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 해 주어야겠다는 듯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다.
카사트의 ‘사과를 잡으려는 아이’ (1893)의 그림을 보면 아기와 어머니는 나무에 달린 사과를 보고 있는데 아기가 이것을 잡으려하지만 손이 미치지 않자 어머니가 나뭇가지를 휘어잡아 사과가 아기 손에 쉬 잡힐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이 그림의 경우는 아기와 어머니가 보는 대상물이 사과라는 것이 뚜렷이 그림에 나타나 있어 두 사람의 눈길과 눈매는 같은 모양으로 눈을 크게 뜨고 공동 작업을 하는데 의견이 일치되어 눈길의 흔들림이 없다. 이번에는 서로의 눈길을 나누지 않고도 대상물이 보이는 것을 공시하며 대화가 오고 가고해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이렇듯 아기와 어머니는 눈 맞춤과 몸의 접촉과 공시 등의 무언의 언어로서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잘 표현한 작품들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