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interview]연극은 나의 인생, 산은 나의 스승

정형외과의사 백경열 원장의 ‘나의 꿈 나의 인생’

  • 입력 2009.04.01 00:00
  • 기자명 emddaily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에게 연극은 환희와 감동 그 자체“원래는 오페라 가수가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어려웠던 가정형편으로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죠. 그리고 오페라 가수를 하려면 키도 더 커야 했습니다. 디스크 가수의 길도 있었지만 그 역시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의료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치고 백정형외과 백경열 원장이라고 하면 이제 모를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하지만 그의 어렸을 적 꿈이 오페라 가수였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비록 큰 체격은 아니었지만 어릴 적부터 유난히 목청이 좋아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전국의 콩쿠르는 휩쓸고 다녔다. 그러다보니 오페라 가수를 꿈꾸게 된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어려웠던 가정형편, 결국 백 원장은 오페라 가수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선택한 길이 서울대학교의 섬유공학과, 일찍 작고한 아버지의 뒤를 잇고자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여의치 않았다. 지금이야 대한민국 최고의 수재들이 모인다는 의과대학이지만 당시만 해도 서울대 공과대학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때였다. 가정사정이 가정사정인만큼 단 한 번의 실패도 용납되지 않던 백 원장이었기에 결국 어머니의 권유로 의사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그렇게 백 원장은 무난히 의대생이 되었지만 마음속 무대에 대한 열정은 결코 식지 않았고, 대학에서 접하게 된 연극은 그를 새로운 인생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두 번 포기는 없다는 다짐이었을까, 그의 열정은 무섭게 타올랐다. 그리고 그 의지는 당시 전국의 대학교가 참가하는 제2회 문교부장관배 연극대회에서 김희창 작가의 ‘비석’이라는 작품으로 타 학교의 연극영화과도 제치고, 그것도 의대생들이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 후에도 연극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고, 한때는 의사가 아닌 연출가라는 타이틀로 더 잘 알려지기도 했다. “책이 작가의 사상을 경험하는 것이라면, 연극은 누군가의 삶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자신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여러 삶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가슴 뛰는 벅찬 감동입니다.” 그에게 연극은 아직까지도 환희요 감동이다. 그래서일까 아직까지도 기회가 될 때마다 직접 연출을 하는 연극에 대한 백 원장의 열정은 20대에 견주어도 조금도 변함이 없다. 정상의 나무는 높고 낮음을 자랑하지 않는다“산은 인생의 닮은꼴입니다. 산과 마찬가지로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아직 정상에 더 멀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발견하지 못하고 내려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미 정상을 밟고도 더 높은 정상을 찾아 헤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의사 가운데에서도 그런 모습을 자주 보곤 합니다.”연극이 삶의 동반자라면 산은 인생의 스승이라고 말하는 백경열 원장, 그에게 산사랑은 연극 못지않게 매우 특별하다. “산은 거짓이 없습니다. 자연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늘 마음속으로 준비하는 자에게 비경을 열어줍니다. 산 아래를 보면 키가 큰 나무부터 중간 크기, 그리고 작은 나무까지 각양각색으로 높고 낮음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정상에 다다르게 되면 어느새 나무들은 그 높이가 일정해져 서로 어울리고 또 다른 장관을 만들어 냅니다. 바로 이것이 높이 오를수록 겸허함을 배우게 되는 이치입니다.”대학시절 산악부에 가입하면서 산과 인연을 쌓아갔던 백 원장은 졸업 후 백두대간을 완주하고 서울시산악회의 창립멤버로 활동하면서 장거리 산행을 고안하고 활성화시켰다. 이후 2000년에는 대한의사산악회를 만들고 4대 회장을 직접 맡으며 의사들에게 산행을 묘미를 전파하는 전도사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또한 산은 그에게 자신의 의지를 가다듬고 새로운 도약을 약속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2000년 의권 쟁취운동 시 대한의사산악회 주관으로 등반대회를 열었는데, 이날 참석한 300여명의 회원과 수많은 등반객이 모인 자리에서 의권수호 선언문을 낭독하면서 의료계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결코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기도 했다. 이처럼 백 원장에게 늘 스승이 되어주는 산, 하지만 그에게 가장 큰 가르침은 바로 늘 준비하는 자세와 인내심이다. “한 겨울 산에 올라보면 그 어디에도 봄이 올 것 같지 않은 겨울 공화국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땅에 귀를 기울여보면 땅 밑으로 봄이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개울가 얼음위로 덮인 눈을 걷어내면 그 아래로 봄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아무리 녹음 짙은 한여름이라도 산은 가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아닌 내일을 준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백 원장, 하지만 우리는 지금 산이 아닌 그의 모습에서 더 큰 것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할 일이면 내가 하고, 언젠가 할 일이면 지금 하자연극 무대 위에 연출가, 그리고 산과 호흡하는 산악인이지만 백경열 원장에는 그 누구보다 뜨거운 의사로서의 피가 흐른다. 백 원장이 영등포의사회 회장을 맡고 있던 2000년 당시 약가실거래가상환제로 의료분쟁이 터졌을 때 ‘투사가 될 것’을 가족들에게 알렸다. 그리고 2003년 영등포의사회장의 임기를 마치며 의료계의 주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백 원장은 2003년 영등포의사회장의 임기를 마치며 시민단체로의 이적을 택하지만 결국 대한의사협회의 요청으로 의협 공보이사의 직책을 맡게 된다. 그리고 2006년 임기를 마친 백 원장은 2007년부터 지금까지 대한정형외과개원의협의회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지금 협의회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은 시민단체와의 연계를 통해 존경받는 의료인으로서의 위상과 희생과 봉사로 사회에 기여하는 의료인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면 내가 하고, 언젠가 해야 할 일이면 지금 하고, 피하지 못할 일이라면 즐겁게 하자라는 생각으로 모든 일에 임하고 있습니다. 정형외과는 보험사와 연관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하지만 주위의 시선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기보다는 정직하게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했으니 진심이 통하게 되면 그만큼 사회는 한 발짝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바꾸고 싶다면 실천으로 보여주라고 말하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는 백 원장, 그 미소 속에는 백 마디의 웅변보다 강한 힘이 담겨있다. 그의 카리스마와 지도력을 높이 평가한 회원들이 앞으로 있을 의협회장 선거에 출마하라는 권유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그 말들을 끝까지 들을 필요도 없이 모두 일언지하에 거절했으니, 지도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5가지 덕목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말하는 5가지 덕목이란 첫째, 희생과 봉사정신이요 둘째는 정직, 그리고 셋째와 넷째는 몸과 의식의 건강과 지도력과 통솔력 등을 두루 갖춘 능력이며 마지막으로 다섯째는 바로 올바른 의식수준이라고 말 한다. “저는 스스로 평가하기에도 많이 모자란 사람입니다. 지도자는 단순히 몇몇의 의견을 대표하는 자리가 아니라 이 나라의 건강을 책임져야 할 무거운 자리입니다. 저 같은 사람의 역할은 큰 지도자들이 올바른 의견을 낼 수 있도록 바닥을 받쳐주는 것입니다.”과연 그 5가지 중에서 어떤 것이 부족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겸손함까지 갖춘 그를 통해 대한정형외과개원의협의회가 어떤 긍정적인 발전을 이뤄낼까하는 기대를 갖게 된다. “개인적으로 65세가 되어 정년을 하게 되면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고 싶습니다. 연극이나 산행, 그리고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와 같은 것들 말입니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는 백 원장. 하지만 백 원장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 사회와 의료계가 있는 한 과연 그에게 정년이 있을 수 있을까. 연극을 사랑하고 산에서 인생을 배운 의사 백경열,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이라고 고백하지만 우리가 그를 통해 배운 것은 연극과 산 그 이상이었다. 그런 그를 통해 앞으로의 의료계의 진정한 발전은 멀지 않았음을 기대해본다.[1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