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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tal clinic]‘평생 어린이’ 만드는 과보호 병폐

  • 입력 2009.04.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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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언뜻 보아 풍채가 좋고 점잖아 보이는 초로(初老)의 신사 한 분이 진료실을 찾아왔다. 장성한 자식에게 사업을 맡기고 자식의 일을 좀 봐주는 소일거리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이 신사 분은 10여 년 전부터 골이 저릿저릿하고 머릿속이 맑지 않고 아프며 골이 아플 때는 속도 니글니글 거리는 등 여러 가지 증세가 있었다. 또한 귀에서 찡~쌕~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어떤 일에 골몰할 때는 없어지곤 하였다. 잠이 깊지 못하고 뒤척거리는 날들이 많다고 한다.부모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의 부족이러한 증상이 시작된 것은 12년 전에 환자의 모친이 88세의 고령으로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였고, 그로부터 2년 후 환자의 부친마저 돌아가신 뒤에 더 심해졌다. 처음 환자의 모친이 돌아가셨을 때 환자는 같이 따라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고, 자신의 사업관계로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것이 그렇게 애통할 수가 없었으며,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다.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듯 허전하였지만 아직 살아계신 환자의 부친께 더욱 지극한 효도를 하며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환자의 부친이 추운 겨울날 환자의 일을 좀 도와주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대퇴부 골절이 생겼는데 그 후 돌아가실 때까지 2년간 극진하게 간호를 하였다. 그러다가 공교롭게도 환자 자신이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게 되어 아버지를 간호하지 못하게 되자 환자의 부친이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시게 되었다. 환자는 아버지를 잘 돌봐드리지 못해 돌아가셨다는 자책감이 자꾸 들어 울기도 많이 울었다.그 후로는 부모가 없는 집에 들어가기도 싫게 되었다. 마치 어린아이로 다시 돌아간 듯하였다. 보고 싶은 마음과 자기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자책감으로 마음이 미어질 듯하였다. 하루라도 부모님 생각을 안 한 적이 없었고 부모가 너무 보고 싶어질 때는 산소를 찾아 마음을 달래었다. 제일 섭섭하고 화나는 것은 가족들이 부모 사진을 떼어내고 손자 사진 따위를 대신 붙여 놓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도 자기 심정을 이해해줄 것 같지 않아 말도 하지 못하였다. 물론 산소도 몰래 갔다 오곤 하였다.전에는 그 지역 유지로서 사업도 열심히 하고 사회활동도 많이 하였지만 날이 갈수록 마음이 더 허전해지고 생활리듬도 깨어지면서 가족도 친구도 돈도 사회활동도 다 싫어졌다. 최근에 와서는 하루하루가 낙이라곤 없는 그런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신경정신과를 잠시 다녀보았으나 별로 효과를 보지 못했다. 머리 아픈 것이 혹시 머리에 이상이 있어 그런 것은 아닌가 하여 X선 검사와 컴퓨터 뇌촬영도 해보았지만 이상이 없었다. 이런 얘기들은 가족은 물론이고 아주 가까운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괜히 창피스럽기도 하고 또 말해보았자 이해해주지도 않을 것 같아서였다. 마치 자기 자신이 어미 잃은 불쌍한 강아지 신세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이 환자의 모친은 40이 넘어 재가를 한 후 이 환자 하나만을 낳았다. 이복형제가 많이 있었지만 이때 환자의 부친도 거의 50이 다 되어 늦게 본 자식이라 부모의 애정과 관심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으며, 22살에 결혼할 때까지 단 하루도 부모와 떨어져 잔 적이 없었을 정도였다. 부모도 환자에게 극진하였고 환자도 부모에게 잘했다. 자신도 자식을 낳고 살았지만 부모 앞에서는 마음은 항상 어린애였다.면담하고 있는 동안에도 노년기에 접어든 환자 입에서 서슴지 않고 ‘엄마, 아빠’라는 말이 나왔으며 환자의 몸과 마음이 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환자는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부모와 떨어져본 적이 없었고 또한 떨어졌을 때에 대한 대비도 전혀 없었다. 이 점에 환갑에 가까운 이 환자가 병이 나게 된 근본원인이 된 것이다. 부모가 없더라도 혼자 살아갈 수 있게 부모가 배려를 해주었어야 했는데 그게 전혀 없었던 것이다.홀로 설 수 있는 정서적 훈련 필요해아이를 키울 때 부모는 어린아이의 신체적인 발육과 정신적인 성숙의 정도에 따라 적당한 시기에 욕망을 좌절시키는 요구를 점진적으로 가해야 한다. 이것은 장래에 험한 세파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저항력을 기르기 위한 심리적 예방주사가 된다.어린이는 자신에게 부과된 좌절에 따르는 감정과 갈등을 극복함으로써 자신의 문제를 처리하고 자기도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단, 이렇게 할 때 어린이와 부모 사이에 기본적인 사랑의 유대 속에서 해야만 한다.아이를 키울 때 부모가 꼭 지켜야 할 기본적인 태도 몇 가지만을 보면 우선 애정을 너무 쏟아도 좋지 않고 애정이 결핍되어도 안 된다. 너무 보호를 해서 아이에게 자기 힘을 시험해 볼 기회를 주지 않고 난관을 극복할 경험을 주지 않아도 안 된다. 다음으로 부모가 자녀 양육에 있어 모순되는 태도를 취해선 안 되며 부모의 노선이 같아야 한다. 또한 가정 내에 자녀가 견디기 어려운 불화, 갈등, 긴장이 있어서도 안 된다.앞의 환자의 경우 문제점은 부모가 너무나 과도한 애정을 쏟기만 했지 자식이 혼자 설 수 있는 정서적 훈련을 시키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자기 자식이 예쁘지 않고 소중하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냐만 그렇다고 적당한 절제를 하지 않는다면 앞의 경우에서처럼 커서도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 될 것이다.최근에 평균 자녀수가 한두 명으로 줄어들면서 부모의 과도한 애정과 보호의 경향이 많아지는데, 귀한 자식일수록 ‘홀로서기’를 가르쳐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