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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medicine] 눈물의 몸짓언어

  • 입력 2009.04.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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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누선(淚腺,눈물샘)과 그 부근에 산재하는 부누선(副淚腺)에서 분비되는 투명한 액체로서 눈알의 습기를 유지하여 그 활동을 원활하게 하며 노폐물을 제거하고 이물을 씻어내어 감염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하루에 분비되는 량은 1∼1.2mℓ이며 잠잘 때는 분비되지 않는다. 젊은 사람은 노인보다 분비량이 많고 여성이 남성보다 많다. 생후 3개월 이내의 신생아는 울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눈물이란 슬플 때나 혹은 두려울 때, 또는 감격했을 때나 기쁠 때 등과 같은 감정의 변화나 심한 통증과 같은 신체적 변화에 의해 마음이 약해지거나 감정이 격앙되었을 때 터져나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표정이며 몸짓언어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지니는 가치관, 종교적 신념, 가문의 전통 등 살아온 관습의 차에 따라 그 감정표현이나 의사소통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으며 또 그 해석에도 차가 생겨 눈물이 지니는 의미와 그 평가도 정반대가 될 수도 있다. 이제 한 사람을 놓고 눈물과 비웃음이라는 양극단적인 감정표현의 대립을 잘 표현한 그림이 있어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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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의 고통과 슬픔을 표현하는 눈물
러시아의 화가 수리코프(Vasily Surikov 1848~1916)의 ‘대귀족부인 모로조바(1887)’라는 그림을 보면 한 여인이 초라한 눈수레 위에 쇠사슬로 묶인 채 손을 하늘로 향해 치켜들고 자신의 행동이 신의 뜻에 따른 떳떳한 것이라는 확신에 찬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그림의 여주인공 모로조바는 종교 대분열 시 구교도 편에 섰던 대 귀족 프로코피 소코부닌의 딸이자 역시 특권 귀족인 모로조바의 부인으로 옛 신앙을 수호하려고 개혁에 완강히 저항하다 감옥에 끌려가는 장면을 실감 있게 표현한 것이다. 그림의 우측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슬퍼서 울먹이거나 눈물을 흘리고 있으며, 좌측에서는 비웃고 있는 대조를 이루고 있어 눈물의 의미와 그 평가도 정반대되는 장면을 잘 포착하여 역사적인 사실을 표현한 그림이다.
우는 표정에서 입이 네모지게 되는 것은 입술이 위와 아래로 당겨지기 때문이고, 흐느낄 때는 아래 입술이 굳게 조여져 움직이지 않게 된다. 그래서 턱의 근육이 작용해도 그 힘은 약하기 때문에 적은 힘으로 아래 입술을 떠받드는 결과가 되어 입술은 활모양으로 휘게 된다.
입술은 이완되어 아래턱은 처지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나와 떨어지고 눈썹은 입의 경사와 같은 모양으로 좌우로 경사지게 된다. 이러한 우는 표정을 잘 표현한 것이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가 그린 ‘울고 있는 여인(193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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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54)는 여섯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9개월 동안 앓고 나서 치유는 되었으나 우측 다리에 마비가 와서 가느다란 나뭇가지처럼 말라버렸다. 이렇게 불행을 딛고 자란 프리다 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운명에 시달림이 또 닥쳐왔다. 1925년 9월 17일 그녀가 타고 가던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사고로 스테인리스 손잡이가 그녀의 복부를 관통하여 척추와 골반에 골절이 야기되면서 자궁도 다쳤으며 우측 다리에는 11개소의 골절, 그리고 늑골과 쇄골에도 골절상을 입고 병원에 운반되었을 때 의사들은 고개를 흔들며 그녀는 살릴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수술은 일단 성공한 듯하였으나 1년도 채 못가서 통증이 재발되어 그녀의 생애를 통해 33회나 수술을 받게 되었으며 통증이 척추와 우측 다리에 남아 평생을 괴롭혔다.
프리다는 대부분의 그림에 자신을 모델로 하는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그녀의 ‘골절된 척추’(1944)라는 작품은 자기의 수술과정에서 겪은 모진 고통을 표현하고자 했다. 자신의 알몸에 못이 박힌 것으로 절박한 고통을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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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가 척추를 세로로 두 갈레로 나누어지고 그 갈라진 사이로 쇠파이프의 묶음이 박혀 있고, 갑옷 같은 코르셋이 파괴된 몸을 지탱하고 있다. 몸에는 무수히 박힌 못으로 그 아픔을 나타냈는데 이렇게 몸의 아픔을 표현한 작품은 아마도 이 그림 이외에는 보기 어려울 것이다. 또 눈에서는 빗방울처럼 떨어지는 눈물을 통해 몸의 아픔뿐만이 아니라 마음의 슬픔마저 표현하였다.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가장 진실한 표현이기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도 그 눈물에서 흐르는 순수함과 진실함을 느끼게 되고 자신의 마음에 이 진실과 순수의 감정이 촉발된다. 그리하여 눈물을 보고 자신도 눈물을 흘리게 되는데 눈물을 통하여 마음이 정화되고 치유되는 현상이 일어나며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쳐 치유되는 몸짓언어이다. 따라서 눈물은 인간의 몸짓언어 중에서 가장 순수하고 정직하며 진실한 표현이며 능력이라 할 수 있다.

그림에 나타난 웃는 듯 우는 얼굴과 우는 듯 웃는 얼굴
얄궂게도 우는 얼굴과 웃는 얼굴이 혼동되어 보이는 경우가 있다. 어린이의 경우 우는가 싶으면 곧 웃는 표정으로 되는 것을 보며 어른들에 있어서도 우는 웃음 또는 웃는 울음의 표정을 보이는 겨우도 있다. 이렇듯 두 표정은 다른 점보다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즉 위 입술의 모양이나 입가에 생기는 ( )―괄호형의 주름 그리고 부푸는 볼의 모양은 양자 모두에서 보게 된다. 이렇게 우는 것인지 아니면 웃는 것인지가 구별되지 않은 것은 너무나 기쁘거나 너무나 슬플 때에 그 양자의 구별이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즉 웃을 때는 얼굴의 하반부의 근육의 작용이 강한 반면에 슬퍼 울 때는 상반부의 근육이 강하게 작용하면서 눈물이라는 분비작용을 동반하게 된다. 이렇게 눈물을 흘리는 것이 쾌자극(快刺戟)이 되어 슬픈 감정을 다소 완화 시키게 된다.
이와 같은 웃음과 울음의 관계를 조각으로 잘 표현한 작가가 있다. 미국의 조각가 라이트(Deran Wright)가 조각한 ‘좌 뇌와 우 뇌의 대화’(1995)라는 작품을 보면 사람의 좌우 뇌 반구에 웃는 얼굴과 우는 얼굴을 조각하였는데, 웃는 것과 우는 표정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차는 눈에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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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울 때의 표정은 주로 얼굴의 상반부의 근육이 강하게 작용하는 데 비해 웃는 표정에서는 얼굴의 하반부의 근육이 강하게 작용하니까 이를 손으로 가리고 있다. 또 이러한 표정은 뇌에 의해서 지배되는데 두 표정이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좀 아쉽다면 두 표정은 눈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러나 이러한 아쉬움을 떨쳐주는 작품이 있다. 화가 헤메센(Sanders van Hemessen 1500~66)이 그린 ‘우는 신부(1540)’라는 그림을 보면 한 중년의 남성인지 여성인지 잘 구별이 가지 않은 사람이 얼굴의 표정만으로는 우는 것인지 아니면 웃는 것인지 잘 구별이 가지 않는다. 즉 이 그림의 주인공은 여성으로 나이 40이 넘어서 신랑을 만나 결혼하게 된 신부이다. 신부는 너무나 감계무량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데 그 표정이 우는 것인지 아니면 웃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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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마음을 정화시키는 몸짓언어
인간은 속성상 눈물을 마음의 상태와 상관없이 억지로 짜내기는 어렵기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는 것에는 거짓이 없고 정직하다. 그러므로 눈물은 인간의 표현 가운데 가장 진실하고 정직한 마음의 표징이요, 순수한 몸짓언어이다. 인간은 눈물을 흘릴 때에 마음이 순수해지고 진실해지기에 눈물이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이고 눈물은 인간을 순수한 상태로 이끌어가며 눈물을 흘리는 시간을 순수하고 진실한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시킨다. 또 동시에 눈물을 흐리는 것을 보는 사람에게 그 순수성과 진실성이 전해져 마음을 정화하는 작용을 하는 몸짓언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