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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medicine] 시각시대에 밀려나는 촉각의 몸짓언어

  • 입력 2010.02.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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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외부에서 얻는 정보의 약 70%는 시각을 통해서 얻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이 지닌 감각 중에서 시각이 이처럼 뛰어난 역할을 예로부터 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12세기까지 서구에서는 촉각우위의시대가 지속되었다. 그것은 귀족이나 농민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현세는 물론이고 내세에 있어서의 신의 구제를 받기 위해서는 성유물(聖遺物)이나 교회의 제단 및 기둥 또는 성상 등에 무엇보다도 손을 내밀어 접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이러한 성스러운 물건과의 접촉하면서의 기도로 자기의 소원은 성취 될 수 있으며, 구제력이 있기 때문에 병의 치유력도 지녔다고 생각되어 두통이 있으면 머리를, 배가 아프면 배를 성스러운 것과 접촉함으로서 나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제 이러한 성스러운 것과의 접촉을 표현한 그림이 있어 이를 보면서 설명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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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L]마르미온의 ‘산 트메르의 제단화’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화가 마르미온(Simon Marmion 1420/25~1489)의 작품 ‘산 트메르의 제단화’ (1454-58)이라는 그림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수도원 성당의 벽에 손을 대고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수도원 성당의 정문에서는 수도사들이 인사를 교환하고 있으며 열린 문의 안쪽에는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 제단화는 상 트메르 수도원 성당의 제단화로 그렸던 것인데 그 세 날개의 그림 중 좌측날개의 부분인 것이다.



이러한 성스러운 것과의 접촉이 신과 가까워지며 속죄의 길이라는 사고가 르네상스시대에 까지 전해져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에 ‘천지창조’ (1508~1512)라는 천정화를 그리면서 ‘아담의 탄생’이라는 소제목의 그림도 그렸다. 성서에는 흙으로 자신의 형상대로 빚은 아담에게 하느님이 생기를 불어넣어 아담이 탄생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 그림에서는 생기를 불어넣는 것을 하느님은 자신의 오른손 둘째손가락 끝으로 아담의 왼손 손가락 끝을 살짝 접촉하는 방식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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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간 아담은 누워있으며 반대편에서는 하느님이 천사들과 함께 나타나 손을 뻗치자 하느님의 생기가 아담의 손을 통해 전해져 사람이 된 아담은 자애로운 하느님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이렇게 손과 손의 접촉으로 지상의 아담과 천상의 하느님을 극적으로 대비시켜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를 절묘하게 설정해 놓았다.



리베라의 ‘성 아드레’


중세의 그리스도교의 교인들은 자기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스스로가 채찍으로 매를 때리고나 겨울이면 찬물 속에 들어가는 등의 고행을 하였으며 또 어떤 교인은 동물의 거친 털로 만든 속죄복(贖罪服)이라는 옷을 입어 피부를 상처투성이로 만드는 등의 촉각을 둔하게 하는 것이 자기의 몸을 신에게 바치는 유일한 속죄의 길이며 신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이라고 고집스럽게 믿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을 잘 표현한 그림이 있다.



스페인의 화가 리베라(Jusepe de Ribera 1591~1652)가 그린 ‘성 아드레’(1630~32)라는 작품을 보면 비록 노인의 몸이지만 고행을 일상화해온 성인이기에 몸은 마를 대로 말라 피골이 상접한데 가슴의 흉골과 늑골이 튀어나와 그 형태를 그대로 들어내고 있으며, 팔의 마른 피부는 축 늘어지고 손의 관절의 마디들은 마치 구슬모양으로 노출 돼 있어 이렇게 변한 몸의 모습으로 보아 온갖 고행을 다 하여온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몸은 비록 마를 대로 말랐지만 그 총기로 빛나는 눈은 사료 깊은 혜안이라는 점에서 그림의 주인공은 성인임을 표현하고 있으며 이 성인이 한 손에는 잡아 올린 물고기를 또 한 손으로는 자기의 상징인 X자형 십자가를 들고 있어 종교적인 감정을 환기 시키며 그림의 숭고함을 나타내고 있다.



유대교의 가장 인상 깊은 신앙의 상징물, ‘통곡의 벽’


이렇듯 중세 이전에 있어서는 피부의 촉각을 성스런 물건에 대거나 몸의 고행으로 촉각을 둔하게 하는 길이 신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이며 속죄의 유일한 길로 믿어 왔다. 이러한 관습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유대인의 성지 ‘통곡의 벽 (Western Wall)’에서 볼 수 있다.



통곡의 벽이란 예루살렘 서쪽에 있는 신전(神殿)의 성벽을 말하는데, 유대인들은 여기서 기도하고, 옛날을 회상하면서 통곡한다는 곡벽(哭壁)이다. 이 성벽은 헤롯왕(BC 37∼BC 4)이 예루살렘 신전을 증개축할 때 쌓은 신전의 서쪽 옹벽의 일부가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이다. 벽의 지상부분은 길이 약 50m, 높이 약 20m로 모두 43단의 석축 가운데 현재 하부의 15단은 아직 매몰된 채로 있다.


로마에 대한 절망적인 반란(132∼135)이 비극으로 끝난 뒤 유대인은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러다가 4세기에 이르러서야 그들은 1년에 한 번 즉 신전이 파괴된 날로 전해지는 아브 월(Ab월: 유대력 5월) 9일, 하루만 출입이 허용되어 허물어진 신전을 찾아가 신전의 소실과 나라의 멸망을 슬퍼하고 애통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나중에 신전 터에 이슬람 성소(聖所)가 건설되어 통곡의 장소는 서쪽 벽으로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48년 예루살렘이 이스라엘과 요르단으로 분할되면서 이 성벽은 요르단 측에 속하게 되였으나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구 시가지를 점령하여 ‘통곡의 벽’을 장악하였다. 이 벽은 유대교의 가장 인상 깊은 신앙의 상징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은 이곳에 와 기도와 통곡을 하는 것인데, 그 모습을 담은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손을 벽에다 대고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촉각의 시대 지나 이제는 시각우위시대 도립


이러한 촉각의 전성시대는 지나고 지금은 바야흐로 시각우위시대에 도립되고 있다. 그 중요한 계기는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라디오를 위시한 다른 방법에 의한 정보습득은 뒷전으로 밀리고 즉시성을 무기로 하는 텔레비전은 순시 간에 전 세계적으로 보급되었다. 따라서 오늘날의 대중은 시각을 만족시키면 다른 감각의 욕구는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컴퓨터의 등장이다. 컴퓨터도 텔레비전과 같이 공공의 정보를 시각을 통해 일방적으로 얻는 정보기기이었던 것이 인터넷으로 연결됨으로서 텔레비전으로는 할 수 없었던 개인의 정보의 교환도 가능하게 됨으로 폭발작인 인기리에 급속히 보급되어 시각이 다른 감각을 압도하는 시각시대가 된 것이다.


이렇게 컴퓨터를 통한 시각시대가 된 것을 실감하게 하는 것은 과거에는 옷이나 내의를 살 때는 직접 현물을 보고 이를 손으로 만져보아 감촉이 좋은 것을 골라서 샀다. 그러나 인터넷 주문으로는 그 감촉은 실감할 수 없기 때문에 색상과 사이즈만 맞으면 감촉은 다소 떨어진다 해도 하는 수 없이 입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고, 또 건물이 현대화 되면서 집중냉난방이 보급되어 실온을 쾌적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됨으로서 피부촉감의 중요한 기능의 하나인 체온조절기능은 점점 저하되고 있다.


특히 미술전시회나 각종 상품의 전시장에는 ‘손을 대지 마시오!’ 라는 표찰이 붙어있어 눈으로 보는 것만 허용되고 손으로 만져보는 촉각은 사용하여서는 안 되는 공공연한 룰이 되어 버렸다.



촉각은 생명 유지의 중요한 에너지, 망각해서는 안돼


이렇듯 시각의 의한 정보의 가치가 상승됨에 따라 촉각의 기능은 점점 퇴보된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특히 시각, 미각, 청각, 후각 등의 감각을 자유자재로 만족시킬 수 있는 문화선진국에 갈수록 사람들은 촉감기아(觸感饑餓)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촉감에 의해서 우러나는 애정이나 친밀감 그리고 기분 좋은 감은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생명유지의 중요한 에너지인데 이것이 망각되고 뒷전으로 밀려나는 현대라는 사회에서 촉각기능을 무시하고 시각에만 만족하는 삶을 계속해도 될 것인가를 냉정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소위 문화병, 성인병, 스트레스에 의한 정신병 등의 증가는 바야흐로 촉감을 무시하고 시각에만 충실한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일종의 병폐라고 지적하는 것이 시각시대에 밀려나는 촉감의 몸짓언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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