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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medicine]몸의 공간적 영역성과 몸짓언어

  • 입력 2010.07.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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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가족이라는 용어는 부모형제와 같은 혈통을 지닌 사람들의 번식단위를 표시하는 용어이다. 따라서 가족의 공간적 영역인 가정이란 가족의 번식지임을 의미하는 것이며, 모든 사람에 있어서 가장 안정되고 행복한 공간적 영역이 바로 자기 집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생활한다 해도 일주 정도가 지나면 귀소(歸巢)본능이 발동되어 ‘집에 가고 싶어 죽겠다’는 말을 하게 되며 자기 집이야 말로 자기에게는 둘도 없이 소중한 공간적 영역임을 실감하게 되며 ‘sweet home’이라는 용어도 나오게 되었다.


자기 집이라는 공간에 있어도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침실이며 ‘둥지’의 역할을 한다. 누구나 침실에 들면 몸을 편히 쉴 수 있어 잠을 청하게 된다. 잠이란 아무 곳에서나 함부로 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걱정이 없고 몸에 불편함이 없어야 하며 만일 사람이 정상적인 생활에서 벗어난다면 잠은 잘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잠자리는 인간 최고의 공간적 안식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잠과 공간적 안식처의 관계를 환상적으로 표현한 화가가 있다.



모르간의 ‘달의 여신’


영국의 라파엘로 전파의 여류화가 모르간(Evelyn De Morgan 1855-1919)의 ‘달의 여신’ (1885)이라는 작품을 보면 이 그림에서 달은 은백색이거나 청백색의 불투명한 원반이 아니라 투명한 원으로 표현 되었으며, 그 저편에는 흰 구름이 지나가며 화면의 오른쪽 아래에는 밤의 정막 속에 산봉우리들이 잠들고 있다.


달 속에는 반라(半裸)의 달의 여신이 온몸이 밧줄로 묶인 채 참 들고 있다. 그 밧줄을 자세히 보면 묶였던 것이 조금씩 풀리고 있다. 이것은 달의 여신이 신의 세계에서 생활하며 낮 동안에 겪었던 온갖 희비애락의 일들로 마치 밧줄로 묶인 것과 같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기의 둥지인 달로 돌아와 잠을 청하자 묶였던 희비오락의 밧줄이 조금씩 풀려나간다는 것으로 달의 여신에게는 달이 잠을 청할 수 있는 유일한 둥지이며 공간적 영역임을 표현한 것이다. 이를 로맨틱한 라파엘로 전파의 환상적인 화풍으로 표현해 개인의 공간적 영역 성을 한 층 더 강조한 것이 되었다.



[1L]레핀의 ‘자포로지에 카자흐’


개인적 공간영역이 좁아지는 경우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요새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보게 되는 군중모임이나 항의 시위 데모의 경우를 보면 개인 단위로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군중이 많이 모이고 많아질수록 개인적 공간은 좁아지게 마련이고 이렇게 되면 감정이 격해져 충돌하기 쉬운 상태로 변하게 된다. 즉 대중적인 충돌로는 축구 경기가 끝난 후에 그 이기고 진 응원단들 간에 충돌로 유혈사태로까지 번지는 것을 보게 된다. 이렇게 개인공간이 좁아져 감정이 격해진 것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는 러시아의 실사주의 화가 레핀(Ilya Repin 1844-1930)의 작품으로‘자포로지에 카자흐’ (1880-91)를 들 수 있다. 자포로지에란 우크라이나의 카자흐 자치지역의 이름이다. 자포로지에 라는 이름은 ‘급류 넘어’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그만큼 공략하기 어려운 산간벽지의 요색이라는 뜻이 내포된다. 그래서 이곳에는 산적생활을 하면서 오스만 튀르크에 저항하는 카자흐들이 모여 살고 있었는데 이들에게 1675년 오스만 튀르크의 술탄 무하마드 4세가 ‘모든 저항을 포기하고 무조건 항복하라’는 최후통첩의 협박편지를 보내왔다. 이들 카자흐는 이런 편지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은 술탄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편지를 써 보내면서 굴하지 않고 싸울 것을 단호하게 천명하였다는 것이다.


그림은 답변을 쓰는 사람의 주변에 모여들면서 술탄의 위세와 막강한 무력 같은 것은 전혀 안중에도 없고 어떻게 하면 최대로 비웃고 조롱할 수 있을 것인가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어 어떤 의미에서는 마치 비웃음과 조롱의 경연대회를 벌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답변을 쓰는 사람을 중심으로 카자흐들이 모여들어 개인공간이 좁아들자 개개인의 감정은 더욱 격해져 그 비웃음과 조롱은 점점 더 심해지기 때문이다.


화가는 이러한 각개인의 개인공간의 변화와 이에 따르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생동감이 넘치면서도 다채롭게 표현하였다. 이런 안목과 묘사력이야말로 옛 이야기를 과거에 머물게 하지 않고 현실로 인도하여 우리들 눈앞에 생생하게 복원시키는 힘이 아닌가 싶다.



[2L]스프란게르의 ‘살마키스와 헤르마프로디토스’


그리스신화에는 사람과 사람의 공간영역이 없어지면서 남녀가 하나로 합쳐져 양성을 지닌 어지자지가 되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헤르마프로디토스 (Hermaphroditos)는 올림포스의 12신 중 Hermes와 Aphrodite사이에서 태어났다 해서 양친의 이름을 함께 붙였으며 여신의 이름의 어미를 남성화시켜서 붙인 합성어이다. 어지자지란 반음양 (半陰陽, hermaphrotism)의 우리말로써 한사람의 몸 안에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모두 갖고 있는 것을 말하며 이런 사람을 반음양자 (hermaphrodite)라고 하는데 이것은 일종의 신체 기형이다.


연애하기를 좋아하는 님프들이 이 미모의 소년 헤르마프로디토스를 그냥 둘 리가 없었고, 그중에서도 특히 살마키스라는 님프가 열렬하게 그를 사모하여 몇 번인가 사랑을 고백했건만 소년의 귀에는 마이동풍이었다.


어떤 날 헤르마프로디토스가 샘물이 괴인 웅덩이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데, 느닷없이 살마키스가 뛰어 들어왔다. 살마키스는 샘물에 익숙한 님프인지라 그녀의 헤엄은 천재적으로 잘 하는 수영이어서 도망치려는 소년의 몸통을 부둥켜안고서 놓지 않았다. 짝사랑하는 살마키스의 지긋지긋한 구애에 진절머리가 난 소년은 양친에게 살려달라고 구원을 청했고, 살마키스는 그대로 붙은 채 영원히 떨어지지 않도록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었다.


항상 여자만을 사랑하는 신은 여성의 소원만을 들어주어 이 두 사람이 영원히 떨어지지 않도록 양성(兩性)의 일치, 즉 일신양성(一身兩性)을 만들어 버렸다. 이 이후로는 이 샘물에 들어가는 남자는 샘물에서 나올 때는 반신만이 남성을 유지하는 몸이 되었고, 여성의 경우는 성별을 잃어버린 제3의 성인 존재로 되어 버렸다하니, 여심(女心)의 집념은 무섭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헤르마프로디토스를 기원전 4세기의 조각에서는 그를 유방이 큰 미청년으로 표현 하였으나, 후세에서는 페니스가 달린 미녀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프랑들의 화가 스프란게르 (Bartholomaeus Spranger 1546-1611)가 그린 ‘살마키스와 헤르마프로디토스’(1581)는 샘가에 앉아 있는 소년을 유혹하기 위해 자기의 옷을 벗으면서 육체미를 자랑하는 살마키스로서 화가는 나체의 아름다움에 중점을 두고 있어 유혹에도 소년의 무감각성을 나타내고 있다.



포류크레스 작 추정 ‘잠자는 헤르마프로디토스’


조각 작품 ‘잠자는 헤르마프로디토스’를 보면 엎드려서 우측 팔을 구부려 베개 삼고 얼굴만을 이쪽을 향하고 잠들어있다. 얼굴의 모습은 영락없는 잠자는 소녀이며 등에서 허리에 연결되는 몸매는 이 작품이 여성이라는 것을 틀림없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반대편에서 보면 깜짝 놀라게 된다. 왜냐하면 여성의 상징인 유방이 있는데 밑을 보면 남성의 상징인 페니스가 있기 때문이다.


이 조각상을 보면서 깊이 생각하게 하는 것은 현재 지구상의 생물이 생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점차 어지자지 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전의 신문보도에 경상도의 한 저수지에서 사는 숫물고기에서 암컷 조직이 발견되고, 섬진강의 암 개구리에서 수컷 조직이 발견되었으며, 노르웨이 북국에는 암수 성기능을 갖춘 곰 새끼가 급증하고 있다는 보도이고 보면 이것은 환경 호르몬이 동물들을 양성화(兩性化)시키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런 사태가 지속된다면 사람도 환경 호르몬에 의해 어지자지로 변화될 가능성이 농후한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또 지구의 유성 문화(有性文化)는 중성 문화로 변해 유니섹스 (uni sex)문화로 바뀌고 있다. 옷도 신발도 모자도 남녀의 구별이 없는 것이 최첨단의 유행으로 되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 어지자지는 선천적으로 유전되는 기형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만들어지는 최첨단의 문화인으로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싶은데 그것은 몸의 공간문화와 관련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