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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tal clinic]죽음의 공포가 부른 병(病)

  • 입력 2010.08.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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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던 날 20대 후반의 남자가 나의 진료실을 찾아왔다. 중소기업에서 가스 안전 책임자로 있는 이 사람은 미혼이었고 보통의 몸집이었으나 얼굴이 긴장되어 있는 것이 근심, 걱정이 있어 보였다. 이 사람은 나에게 오기 전부터 5년 동안 종합병원 정신과에서도 약을 타먹고 약국에서도 약을 사먹는 등 치료를 계속했으나 약을 먹을 때만 괜찮고 약을 끊으면 다시 나빠져서 아무래도 근본적인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정신과를 찾은 것이다. 이 환자가 처음으로 정신과에 간 것은 5년 전쯤 모 대학병원에서 위암 진단을 받고 난 후 몇 개월이 지나서였는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자다가 갑자기 열이 나고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혀서 잠을 깼다. 바로 종합병원 응급실로 달려가서 신경안정제 주사를 맞고는 그 증세가 가라앉았으나 그 뒤로 여러 번 그런 증세가 나타나 응급실로 가서 주사를 맞곤 했다. 또한 이때부터 차를 타면 불안하고 답답하고 숨이 막혀 차를 잘 타지 못하였다. 그래서 모 종합병원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하였는데 주로 약물 중심의 치료를 받았다.

정말 암일까? 두려움과 공포의 나날들

이 환자는 시골에서 2남 3녀의 둘째로 태어났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워 시골에서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바로 서울로 올라와 22살까지 이 직업 저 직업을 전전하다가 22살에 우연히 검정고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1년 내내 고입검정고시·대입검정고시를 합격하고 대학에 가려고 대학입시학원에 다니던 중 속이 쓰려 집근처 개인병원에 2~3개월을 다녔지만 증상이 계속되어 모 대학병원에 갔다. 그 곳에서 처음에 위 X-ray를 찍었는데 보호자를 데려오라는 의사의 말에 필경 무슨 좋지 않은 병일 것 같은 예감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후 보름간을 입원하면서 위에 대한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위 내시경 검사만 5번을 받았다.

최종적으로 담당의사는 위암일 확률이 90%이상이나, 결핵이나 다른 병일 가능성도 있다고 하면서 확실한 것은 수술을 해봐야 알겠다며 강력하게 수술을 권유하였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앞이 캄캄하고 어떻게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병원에서 열이 나고 가슴이 뛰면서 숨이 멈춰 죽을 것 같고 미칠 것 같아 간호원실에 연락하였더니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그 뒤 입원해 있는 동안에 그런 증세는 없었다.

그 당시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걱정할까 알리지도 않았고 그때 ‘젊은 놈이 창피하게 남을 붙잡고 울 수도 없고 나 혼자 견디어야지’하는 생각에 자신의 괴로운 심정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담당의사의 강력한 권유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병명도 모르면서 무슨 수술을 하느냐는 주위 친척들의 이야기도 있었고 또 암이면 어차피 죽을병인데 고생스럽게 수술은 해서 뭐하겠냐는 자신의 생각과 아주 낮은 가능성이지만 결핵일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결핵약을 먹고 경과를 보겠다는 생각으로 그냥 퇴원을 하였다. 퇴원 후 결핵 약과 한약을 몇 개월 먹었다.

이때부터 항상 불안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의 나날이었다. 내일 모레면 죽지 않을까 하다가도 정말 암일까 하고 의심을 해보기도 하지만 결국은 ‘아니야 암이야, 나는 죽을 거야’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여러 번 들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대학입시도 치고 병역훈련도 받았다.

그런 걸 하면서 만사를 잊고 싶고 희망도 갖고 싶었다.

공포는 무의식 속에서 병이 되고

그러던 중 위암 진단 후 6개월쯤 되던 어느 날 밤, 자다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고 온몸이 긴장이 되어 정신을 주체할 수 없는 증상이 심해 종합병원 응급실에 가서 치료를 받았으며 그 뒤부터는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이 환자는 과연 내 병이 진짜 위암인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다른 종합병원에서 종합검사를 받았는데 뜻밖에도 결과는 위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전의 검사결과는 오진이라는 것이다. 이 뜻밖의 사실조차 환자는 믿어지지 않았으며 정신적으로 불안한 증상은 위암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안 후에도 계속되었다.

예전에는 활달한 성격이었으나 자신감이 없어지고 사람을 만나면 긴장이 되고 특히 처음 만나는 사람이나 직장 상사를 보면 얼굴이 붉어지고 안 그러려고 애쓰니 그것이 상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면담을 하는 동안도 자신이 괴로워했던 것, 느꼈던 것을 시원하게 털어 놓지 못하고 주저주저했고 그때 일을 이야기하려면 가슴이 답답해온다고 했다.

이 환자가 이런 증상을 갖게 된 일차 원인은 위암진단을 받은 후 생긴 죽음의 공포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차로 누적되어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어느 누구 누구에게도 자신의 괴롭고 불안한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으면서 애써 잊으려고만 했기 때문에 공포심이 어느새 환자의 무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위암진단이 오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죽음의 공포는 계속 환자의 무의식 속에 남아 병으로까지 진전이 된 것이다.

죽음, 있는 그대로 직면하고자 하는 마음가짐 중요해

이 환자의 경우에 있어서는 약물만으로는 완전한 치료가 불가능하며 환자 자신이 5년 전 위암진단을 받았을 때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느껴서 솔직히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 당시 환자가 회피하려 했던 죽음의 공포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표현하게 하면서 그것을 직면하며 극복해나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환자가 5년 전 위암 진단으로 입은 마음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게 되는 첫걸음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속성(성향) 중의 하나가 집착하는 것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뿌리가 깊고 근원적인 것은 생에 대한 집착일 것이다.

그것이 위협을 받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막연하면서도 심한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 사찰 등에 가면 기둥에 ‘생야일편부운기 사야일편부운멸(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이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사람들은 대부분 여기에 공감을 하며 “맞아! 생(生)과 사(死)는 한조각 구름이 모였다 사라지는 것처럼 덧없는 것이야.”하고 곧잘 이야기하면서도 막상 자신의 일로 닥치면 갑자기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는 아찔함만을 느끼게 된다.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절박한 심정 그 자체가 된다.

남의 암 진단과 남의 죽음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 말을 할 수 있지만 자신의 일이 되면 말문이 막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말의 문제가 아니다. 존재의 존립(存立)에 관계되는 문제이다. 나라는 존재가 그대로 보존되느냐, 없어지느냐의 문제다. 극심한 혼란의 와중에 놓이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여기서 그 혼란이 견디기 어려우니까 그냥 자신을 죽음과는 관계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싶어 한다. 심하면 죽음의 공포는 앞의 환자처럼 무의식 깊숙이 자리 잡고 여러 가지 증세를 일으키게 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크면서도 회피하기만 하면 그 공포와 불안은 커지기만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쉽게 죽음을 극복하는 것은 종교를 통해서이다. 예를 들면, 기독교에서는 부활과 영생을 믿음으로써 죽음을 극복하려고 하고,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죽음을 극복하고자 한다. 기타 어느 종교에서든 죽음을 극복하는 여러 가지 교설을 설하고 있다. 이러한 종교적 길과 그 외의 방법들도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일 수 있으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죽음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고자 하는 마음자세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