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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medicine]단순 속에 함축된 생명력의 몸짓언어

  • 입력 2010.08.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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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토우(土偶)는 대략 5~6세기에 만들어진 신라인들의 독특한 예술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마치 초등학생이 찰흙장난을 한 것처럼 서툴고 단순하게 보일 런지 몰라도, 그러나 그 적당한 단순함 속에는 분명 어떤 역동적인 몸짓언어가 함축되어 있어 돌리려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다시 다가서 자세히 살피면 6cm 내외의 작은 흙 인형이 결코 범상치 않은 자신감 넘치는 미학에 경탄을 금할 수 없게 된다.



단순함 속에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력, 대상의 특징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미적 감각, 얼굴 표정에 깃들어 있는 익살과 해학, 낭만과 여유 등. 신라토우는 한국 전통 미술에 있어 가장 대담하고 자신감 넘치는 캐릭터의 하나로써 어찌 보면 오늘의 지금과도 통할 수 있는 지극히 현대적인 미감이 감돈다.



토우는 토기에 장식물로 붙어 있는 것과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있는데 인물의 경우, 바지저고리 입고 상투 튼 남자, 주름치마에 저고리를 입은 여자, 사냥하거나 고기 잡는 사람, 춤추는 사람, 노 젖는 사람, 가야금, 비파, 피리 등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성행위를 하는 사람 등 신라인들의 일상적인 모습이 그 몸짓과 더불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신라토우는 그것이 신라인의 일상을 표현한 것이든, 적나한 성을 표현한 것이든 그리고 동물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든 간에 모두가 단순한데 그것은 기본적으로 손으로 흙을 쓱쓱 몇 번 주물러 만든 것이어서 6cm 내외의 작은 크기로 만들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에 이해가 간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단순하지 않다. 인물 토우를 보면, 손톱으로 쿡쿡 찍은 두 눈만으로도 감정이 잘 살아있다. 손톱으로 슬쩍 찍어 넣어 슬픔을 나타내고 눈과 입을 둥글게 파내서 기쁨을 표현한 것도 있다.



‘영감 얼굴’이라는 할아버지 토우는 또 다른 의미에서 익살과 해학이 담겨있다. 쓱쓱 주물러 만들어 눈과 입을 쓱 파놓고 수염 몇 가닥 슬쩍 그어 넣은 선 몇 개로 노인의 얼굴을 완성했다. 단순한 흙덩이 토우지만 노인의 푸근한 얼굴이 그대로 살아서 전해진다. 이처럼 신라토우에 살아 숨 쉬는 얼굴 표정은 1500여 년 전 신라인의 삶에 대한 밀착, 삶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 것이다.



신라토우는 결국 인간의 본능과 거친 현실을 순수와 영원의 마음으로 걸러낸 신라인들의 미적 산물인 셈이다. 별다른 꾸밈없이도 그들의 몸짓과 자세만으로도 의미 있는 몸짓언어를 담아내어 볼 때마다 감탄을 금할 수가 없게 한다. 이러한 것을 잘 나타낸 것이 ‘허리에 띠를 두른 남자’이다. 즉 눈을 크게 부라리고 입도 크게 벌려서 마치 호통 치는 듯한 표정에다 허리에는 굵은 끈을 감고 머리에 고깔모자를 쓰고 양손을 좌우로 힘껏 크게 벌리고 양다리도 좌우로 벌리고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모습은 허세를 부리는 몸짓을 한 것으로 현대 사회에서도 허세를 부리는 사람은 이런 자세와 몸짓을 한다.



신라토우에 나타난 신라인의 삶에 대한 애정은 익살과 해학으로 이어진다. 신라 토우엔 익살과 해학, 낭만과 유머가 가득한 것이 그들의 낙천적인 삶의 한 표현이다. 신라토우는 성기를 과장해 표현하거나, 남녀의 성행위를 감춤 없이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 많아 놀랍다.



힘껏 껴안고 있는 남녀, 한 몸이 되어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있는 남녀, 성기와 가슴이 지나치게 과장된 남녀 등, 그리고 자기의 장딴지보다 굵은 성기를 드러내놓고 있는 남성, 자신의 커다란 성기를 만지고 있는 남성, 팔을 받치고 누워 자신의 성기를 하늘로 쭉 들어내고 있는 남성, 커다란 가슴에 과장되게 깊이 패어진 음부를 드러내놓고 웃는 여성, 여기에 가랑이를 벌리고 고통스런 표정으로 출산하는 여성 다른 예술적인 방법으로 좀처럼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숨김없이 표현돼 있다.



[1L]그 중에서 ‘성적 특징이 강조된 토우, 남자’라는 토우를 보면 가랑이를 벌리고 앉아 만세를 부르는 남성을 형상화한 토우가 눈에 띈다. 그의 성기는 자신의 다리 굵기만 하다. 뾰족하고 탱탱한 성기가 그야말로 과장의 극치다. 넉살좋게 웃고 있는 이 남성은 마치 자신의 성기가 세상에서 가장 큰 것임을 확인하고 흥에 겨워 만세를 부르고 있는데 이 몸짓언어에서 연상되는 것이 어린 사내아이들이 저희들끼리 누구 것이 더 큰지를 놓고 장난치고는 만세를 부르는 것 같아 능청스러운 면이 있으나 밝은 표정이다.



또 ‘성적 특징이 강조된 토우, 여자’라는 토우를 보면 유방이 크게 강조되었고 성기를 크게 묘사하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을 크게 벌린 모습에 왼팔을 들고 오른팔을 내려서 배를 향하고 있다. 참으로 속된 것일 수 있겠으나 이 토우를 보면 속되거나 외설스럽다기보다는 천진난만하다 하겠으며, 주인공의 얼굴을 보면 더욱 그렇다.



신라토우의 가장 큰 특징은 뜨겁고 대담한 성의 표현이다. 온 몸으로 뜨겁게 사랑을 나누는 남녀상은 단연 압권이다. 그중에서 ‘성교중인 남녀’라는 토우를 보면 남녀가 껴안고 누운 자세에서 두 사람의 하체는 밀착되어 있으나 상체는 떨어져 있다. 더 놀라운 몸짓의 표현은 누어있는 여자의 머리는 납작한 편두(偏頭)로 표현 되었으며 잔등에서 목 그리고 머리에 거쳐 마치 활처럼 휜 소위 후궁반장(後弓反張)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즉 여인은 극도의 쾌감을 느껴 오르가슴에 달한 몸짓언어가 숨김없이 표현 되었다.



이것은 은밀한 인간의 성행위이지만 소박하고 단순한 토우를 통해 허심탄회하고 꾸밈이 없는 노골적인 표현으로 세밀한 관찰이나 경험에서 나온 신라인의 인간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대담한 성의 표현이 어떻게 인간적이고 허심탄회할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은 바로 신라토우에는 진정한 미학과 매력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즉 토우에 나타난 성은 그들의 건강한 쾌락이었으며, 그것은 솔직한 삶의 표현이었기에 외설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2L]신라토우는 이처럼 한국전통에 있어 가장 강렬한 에로티시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절제와 감춤의 미학에 익숙한 우리에게 신라토우의 에로티시즘은 하나의 파격이자 충격이다. 외설을 초월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신라토우가 단순히 본능적 사랑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좀처럼 표현하기 어려운 출산의 장면도 신라토우에서는 적나하게 표현되고 있다.



‘출산중인 여인’이라는 토우를 보면 임신한 여인이 배를 만지고 있고 성기는 크게 벌어져 있어서 출산이 임박한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며, 또 하나의 ‘출산중인 여인’은 유방을 강조한 한편 음부와 눈 및 입을 각각 확장하거나 크게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진통이 극에 달해 출산이 시작된 것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신라 토우엔 영생(永生)에 대한 절절한 기원이 담겨 있다. 이는 토우가 주로 무덤의 부장품이었다는 사실에서 쉽게 드러난다. 성의 결합은 새 생명의 탄생이며 이는 곧 죽은 이의 부활을 의미한다. 신라인은 이렇게 부활과 자손의 번창, 즉 영생과 다산(多産)이라는 기원을 담아 의식을 치르듯 흙을 빚었던 것이다. 당시 신라인에게 토우를 만드는 것은 성스러운 제의(祭儀)의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외설이 끼어들 틈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 토우 가운데도 서양의 피에타(pieta) 작품과 같은 것이 있다. ‘주검 앞에서 슬퍼하는 여인’이라는 토우는 죽은 사람 앞에 끓어 앉아 슬퍼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다. 죽은 사람의 얼굴에는 천이 덮여 있으며, 슬퍼하는 인물은 아마도 자식을 잃었거나 남편과 사별한 여인의 비통해 하는 모습이다. 얼굴의 표정은 토우이기 때문에 표현되지 않았으나 고개를 떨 그고 양 손은 시신에 대고 있는 몸짓언어로서 비통함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