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들무새의 초상> 음모(陰毛) 디자이너

Pubic hair designer

  • 입력 2013.09.01 00:00
  • 수정 2019.07.26 11:12
  • 기자명 정정만(성칼럼니스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엠디저널]세상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하기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유행이나 풍습이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좀처럼 변화하기 어려운 예의, 도리, 상식의 기준도 정지되지 않고 하물며 인심까지도 변한다. 그래서 인습의 잔해로 흔적만 남아있는 미풍양속도 허다하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요구하는 보편적인 트렌드(trend)라고는 하지만 선뜻 이해하고 수용하기 어려운 기괴한 풍습도 생겨난다. 요새 일분 서구 국가에서 유행의 물결을 타기 시작한 음모(陰毛) 디자이너와 벌바 케어(vulva care)라는 직종이 바로 그것이다.

그냥 헤어(hair)디자이너가 아닌 성기 털 디자이너(pubic hair designer)말이다. 음모를 빗질하고 다듬고 잘라내어 맵시를 예쁘게 만들어 주거나 불결해지기 쉬운 여성 외음부 위생을 청결하게 유지시켜 주는 새로운 분야의 신종 사업이다. 면도질이나 왁싱(waxing)등 제모 수단을 동원하여 겨드랑이 털이나 비키니 라인(bikini line)밖으로 빠져 나온 음모를 제거하는 관행(慣行)은 이제 상식의 틀 안에 진입해있다.

액모(腋毛)와 음모(陰毛)는 여체의 부품 중에서 가장 비여성적인 자연물이며 여성의 아름다움에 반하는 혐오성 장식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평생 가리개로 은폐시킨 채 기껏해야 어둠과 밀실에서 겨우 모습을 드러내는 외딴 오지의 원시(原始) 성림(盛林)을 기를 쓰며 열성으로 치장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음모를 형형색색 염색하거나 하이라이팅(highlighting)하기도 하며 털의 분포를 특이한 형태로 만들기도 한다.

숫제 음모를 완전히 제거하여 민둥산을 만들거나 히틀러의 콧수염(Hitler moustache), 수직 띠 모양(landing strip), 하트형, V자형, 화살형 심지어는 자기 자신이나 애인 이름의 이니셜 등 다양한 모습의 음모를 디자인하여 연출한다. 뿐만 아니다. 가녀린 음순(陰脣)을 피어싱하여 쇠고리를 부착하거나 향수를 뿌리기도 한다. 벌어진 소음순(split beaver) 틈새로 보인 여성 성기를 거울에서 화폭으로 옮겨 담아 그린 성기 초상화도 있고 대중 앞에서 공공연하게 음모 패션쇼까지 열리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런 풍조는 기상천외의 첨단 발상이 아니다. 과거에도 특정 문화권에 소속된 여성들이 이미 음모를 다듬질하거나 제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과시나 현시(顯示)목적이 아니라 개인적 위생 상태를 청결하게 유지하는 수단이었다. 여성의 몸에서 만들어진 체액이나 월경 혈이 음모에 달라붙어 지저분해지지만 음모를 짧게 깎거나 제거하면 이와 같은 불편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페미니스트는 여성의 체모와 음모 제거를 제지한다. 여성의 음모는 풍만한 유방과 함께 육체적으로 성숙한 여성 정체성의 핵심이며 여성다움(womanhood)의 상징물이라는 것이다. 남성 지배적 규율에 의한 마초적 편견에서 비롯된 사회적 압력과 기대 때문에 여성 체모와 음모를 비여성적인 존재로 비하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오해에서 탈피하지 못한 여성이 체모나 음모를 제거함으로써 남성의 노예이기를 자청하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이런 발상은 남녀에 특이한 역할을 간과한 것이다. 체모나 음모 제거는 어디까지나 여성 자신의 결정에 의한 여성 자신의 몫이다.

‘Pudendum’은 ‘부끄러움’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어휘이며 외음부(外陰部; vulva)를 의미한다. 부끄러운 뼈, 치골(恥骨)과 치골을 보호하기 위해 지방 쿠션이 들어있는 불두덩(mons pubis; 비너스 언덕)이 pubis이며 pubis는 음모를 지칭한다. 한자어의 ‘치’(恥)도 부끄럽다는 뜻이다. 부끄러운 부위는 은폐시키는 것이 상식적 이치다. 그런대도 불구하고 치부를 단장하는 까닭은 노출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노출할 것인가? 하기야 21세기 미래 경향은 치부를 노출시켜 과시하는 시대로 접어들지도 모를 일이다.

‘Sex for one’ 저자인 베티닷슨(Betty Dodson)은 그녀의 저서에서 여자의 성 정체성을 자신의 성기애(性器愛)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닥에 거울을 깔아놓고 매일 들여다보며 여성 자신의 성기를 긍정적으로 관찰하고 자긍심을 키워 성적 억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의 음모는 성기 전면과 샅에 나있는 체모의 일부이다. 소녀 시절에는 솜털로 존재하다 12~14세가 되어 사춘기의 문을 들어서면 안드로젠이라는 남성 호르몬의 영향으로 음모 성장 속도가 급속해진다. 먼저 대음순의 가장 자리에 나타나기 시작하여 2년에 걸쳐 불두덩을 완전히 덮는다.

그 후 2~3년이면 관능으로 채색된 성숙한 음모로 정착한다. 그 모양과 분포, 조밀도는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다. 역삼각형, 다이아몬드형, 직사각형, 분산형, 타원형이 섹스에 의한 화상을 방지해주는 피부 보호 기능과 섬세한 벌바 조직을 보호하는 기능이 있다. 길이는 여성의 경우 평균 4cm, 남성은 5cm이며 흔히 고수머리이다. 음모의 발육이 불완전하여 털의 밀도가 아주 낮거나(빈모증) 없는(무모증) 여성도 드물지 않다.

한국 여성의 10~12%가 빈모증이나 무모증이다. 백판(白板) 여성과 관계하면 3년 재수 없다는 속설도 있다. 그래서 혼기를 앞둔 여성의 최대 고민거리가 된다. 이것 또한 근거 없는 편견이다. 모발 이식과 음모 가발을 이용하여 해결한다. 멀쩡한 털을 깎아내는가 하면 있을 것이 없다고 고민하는 이상한 풍습이 공존하는 인간 사회다.

배꼽티와 골반 바지, 게다가 배꼽 피어싱이라는 시대적 유행, 손발톱 관리나 발 관리라는 용어와 처음 부닥쳤을 때 느끼던 경악과 충격. 하지만 이것들이 일반적인 상식으로 정착한 후에는 처음 생각이 한낮 촌스러운 발상으로 주저앉고 만다. 음모를 다듬고 멋을 내는 분야도 가까운 미래에 관행화되어 모두 덤덤해질지 모른다. 그때는 아마 백주나 환하게 불 켜진 방 또는 중인 환시 하에 아랫도리를 뽐내며 오랄 섹스를 필수적으로 주문하는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엠디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