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Music Episode]돌 많고, 바람 많고, 여자 많은 섬, 제주가 들려주는 노래, ‘삼다도소식’

  • 입력 2010.11.01 00:00
  • 수정 2018.03.23 12:17
  • 기자명 emddaily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절)

삼다도라 제주에는 아가씨도 많은데

바다 물에 씻은 살결 옥같이 귀엽구나

미역을 따오리까 소라를 딸까

비바리 하소연이 물결 속에 꺼져가네

음 ~ ~ ~ ~ ~ ~ 물결에 꺼져가네

 

(2절)

삼다도라 제주에는 돌멩이도 많은데

발부리에 걷어채는 사람은 없다더냐

달빛이 새여 드는 연자방앗간

밤새워 들려오는 콧노래가 서럽구나

음 ~ ~ ~ ~ ~ ~ 콧노래 서럽구나

 

[1L]여가수 황금심이 부른 ‘삼다도 소식’은 제주도를 소재로 한 가요다. 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황금심 노래의 이 곡은 제주도민가라 할 만큼 제주사람들이 즐겨 부른다. 회식 때는 물론 고향을 떠나 사는 향우회 회원, 도민회 회원 등 출향인사들의 애창곡이다. 4분의 4박자 트로트로 노래를 부르다 보면 제주도가 그림처럼 다가온다. 삼다도는 제주도를 일컫는다.

‘삼다도 소식’은 1952년 제주도 군부대서 만들어졌다. 6·25전쟁 중 진중가요로도 태어난 것이다. 지금은 일반인들이 부르는 보통의 대중가요가 됐지만 뿌리를 파고들면 군인들을 위한 진중가요로 첫선을 보였다. 노래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군인들이 많이 불렀다. 하지만 노랫말 내용은 전쟁과 전혀 관련 없다. ‘6·25전쟁’이란 시대상황이 진중가요로 만들었을 뿐이다.

 

황정자 노래로 먼저 소개

노래가 취입된 1952년은 전쟁이 한창이었다. 그 무렵 제주엔 국군 제1훈련소가 있었다. 훈련소엔 군예대가 있어 노래, 만담, 쇼 등으로 훈련병들의 외로움과 고달픔을 달래줬다. 군예대는 작곡가 박시춘이 맡아 지휘했고 가수 남인수, 금사향 등 가요인들이 소속돼 있었다.

1·4후퇴 때 대전으로 내려온 음악인 박시춘 선생은 곧 이어 대구에서 제주도로 기지를 옮긴 제1훈련소 군예대장에 임명됐다. 대원은 가수 김봉명이 주관했던 해동악극단원들이었다. 여기에 유호, 김화랑, 남인수, 신카나리아, 금사향, 고화성, 김용대 등의 가수와 주선태, 구봉서, 김상렬, 김은하(남인수의 부인으로 무용가) 등 연예인들이 함께 활동했다.

이 때 ‘유호와 박시춘 콤비’가 만든 노래로 제주도를 거쳐 간 군인들의 향수를 자극, 인기 진중가요로 사랑받았다. 뭍(본토)과 달리 북한군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했던 제주도의 자유로운 일상과 특징을 그림처럼 잘 그려내 일반인들까지 좋아하는 가요가 됐다. ‘삼다도소식’은 원래 황정자 노래로 먼저 나왔으나 황금심이 불러 본격 알려졌다. ‘삼다도 소식’은 황금심이 부른 ‘처녀 총각 뽕따러 가세’ 등과 ‘남도 신(新)아리랑’ ‘무등산 처녀’와 함께 신민요풍이다.

재미나는 건 이 노래 첫 소절 ‘삼다도라 제주에는 아가씨도 많은데~’란 대목이다. 노래가 나올 때만 해도 돌, 바람, 여자가 많아 제주도를 ‘삼다도(三多島)’라 불렀으나 지금은 다르다. 지난해 ‘여다(女多)’ 현상이 처음 깨쳤다. 제주특별자치도가 2009년 2월 9일 발표한 ‘2008년도 주민등록인구 통계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12월말 제주도 인구는 56만5519명. 남자 28만2937명(50.03%), 여자 28만2582명(49.97%)으로 남자가 355명 더 많았다. 제주도의 남자인구가 여자보다 많게 집계된 건 1992년 통계를 작성한 후 처음이다. 제주도는 섬의 특성상 바다사고로 숨질 가능성이 여자보다 남자가 높다. ‘여다의 섬’을 감안하면 성 비율이 뒤바뀐 건 유사 이래 최초다. 해방 후 우리 정부가 처음 했던 1949년 인구조사 때 남자 11만4759명(45.08%), 여자 13만9830명(54.92%)으로 여자가 훨씬 많다. 제주도 관계자는 “남아선호 현상이 이어지면서 2007년 여자가 남자보다 236명이 더 많았던 마지막 ‘여다’ 현상이 깨졌다”고 말했다. 그 때 100세 이상 제주도민은 남자 2명, 여자 62명이다.

‘삼다도소식’에서 노래를 부른 가수 황금심(본명 황금동, 1921년생)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을 만큼 그는 가요계 큰 별이다. 1930년대 일제시대부터 1960년대까지 활동한 대표적 트로트여가수로 목소리가 워낙 고와 ‘꾀꼬리 여왕’으로 불렸다. 이난영, 신카나리아, 장세정 등 당대 톱 여가수들과 트로트여가수 1세대를 이끌었다. 미성으로 서민들의 애환을 구성지게 노래했고 특히 신민요를 잘 불러 ‘민요의 여왕’으로도 불렸다. 그가 가수가 된 건 12살 때인 1934년. 동네서 그녀의 노래 소리를 들은 레코드판매원 소개로 OK레코드에서 판을 내면서다. 데뷔곡은 ‘외로운 가로등’, 이 곡은 그 무렵 별로 없던 블루스스타일이었다. 1999년 인기를 끌었던 MBC드라마 ‘왕초’에 삽입돼 신세대들 귀에도 익은 곡이 됐다.

그는 1938년 빅타레코드사로 옮겨 발표한 ‘알뜰한 당신’이 히트하며 단숨에 가요계 정상에 올랐다. 이 곡은 여성이 남자에게 애정을 나타낸 노래로 화제였다. 대부분의 가수들처럼 광복을 앞뒤로 조선악극단을 통해 악극무대에서 맹활약했다. 그와 함께 김승호, 허장강, 배삼룡, 최남현 씨 등이 악극 1세대다. 그는 ‘삼다도 소식’, 1957년 ‘처녀 총각 뽕따러 가세’, 1958년 ‘한양낭군’, 1959년 ‘장희빈’ 등 히트곡들을 쏟아냈다. 1962년 ‘성화가 났네’, 1963년 ‘햇빛 없는 그림자’도 그의 인기곡에서 빼놓을 수 없다. 

 

고복수-황금심 국내 첫 스타부부

그의 남편은 ‘타향살이’로 유명한 고복수씨(1972년 타계). 고복수-황금심 커플은 남녀정상이 결합한 최초의 스타부부로 눈길을 모았다. 황금심은 그러나 남편과 사별한 뒤 생계를 위해 밤무대를 뛰는 등 힘든 나날을 보냈다. 1997년 사업에 실패, 파킨슨병으로 쓰러졌다. 그의 투병기는 1999년 KBS 2TV ‘영상기록 24시’에서 방송돼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하지만 병세가 나아지지 않아 2001년 7월 30일 79세의 나이로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고인은 가수활동을 하면서도 헌신적 내조로 유명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홀로 3남2녀를 훌륭히 키워 1992년 문화훈장 옥관장을 받았다. 남편은 물론 집안전체가 음악인들이다. 장남 고영준 씨는 현역가수로 뛰고 있고 막내 고병준 씨(작고)는 음악프로듀서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