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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Episode]서귀포시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다, ‘ 서귀포를 아시나요?’

  • 입력 2010.12.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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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R](1절)

밀감 향기 풍겨오는 가고 싶은 내 고향

칠백리 바다 건너 서귀포를 아시나요

동백꽃 송이처럼 예쁘게 핀 비바리들

콧노래도 흥겨운데 미역 따고 밀감 따는

그리운 내 고향 서귀포를 아시나요

(2절)

수평선에 돛단배가 그림 같은 내 고향

칠백리 바다 건너 서귀포를 아시나요

한라산 망아지들 한가로이 풀을 뜯고

굽이굽이 폭포마다 무지개가 아름다운

그리운 내 고향 서귀포를 아시나요

정태권 작사, 유성민 작곡, 조미미 노래의 ‘서귀포를 아시나요’는 서귀포시를 알리는 데 한 몫 한 가요다. 4분의 2박자 트로트 곡으로 멜로디가 흥겹다. 노랫말도 지역특징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밀감, 칠백리 바다, 비바리, 한라산, 망아지, 폭포 등의 가사가 노래 1절과 2절에 고루 나온다. 곡조를 잘 몰라도 이들 단어만 들어도 “아! 서귀포구나”하고 알 수 있게 해준다. 특히 ‘밀감향기~’로 시작되는 가사는 1960년대 초부터 시작된 감귤재배와 맞물리면서 그 무렵 상황을 홍보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금은 전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감귤이고 보면 이후 대량생산으로 이어지면서 유행가의 힘을 실감케 한다. 이 노래는 또 아이러니컬하게도 작사가, 작곡가, 가수가 모두 제주출신이 아니란 점에서도 이채롭다.

무전여행으로 제주 찾은 정태권 씨 작사

노래가 태어난 건 3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 고교를 졸업한 작사가 정태권 씨(58)가 그해 8월 친구들과 무전여행을 떠났다. 유난히도 덥던 여름 부모님 몰래 여행을 시작한 정씨는 대천, 목포를 거쳐 해질녘에 생전 처음 제주항에 닿았다. 그는 절경에 빠져들어 보고 느낀 것을 메모했다. 5일 간의 제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뭣인가 제주의 아름다움을 나타내지 않곤 못 견딜 것 같았다. 감회에 젖어 시상(詩想)을 떠올리던 중 ‘서귀포를 아시나요’란 제목이 떠올라 곧바로 노랫말을 만들었다. 1971년 봄에 작사를 한 것이다.

작사를 마친 정씨는 신세기레코드 시절 ‘가버린 영아’ ‘여인의 눈물’ 등 히트작가로 명성을 날리던 중 오아시스레코드사 전속작곡가로 옮겨간 유성민 씨를 만났다. 작곡을 의뢰하고 오아시스 전속가수였던 조미미를 만나 노래로 꽃을 피웠다.

‘서귀포를 아시나요’는 1974년 크게 히트하며 각 방송국 인기차트 1위를 잇달아 3~4주씩 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 때 음반판매량이 10만~20만장만 기록해도 대성공이라 했을 때 100만장에 이르러 가요사를 새로 썼다. 지금도 제주도민들은 물론 국민들 귀에 익은 가요로 제주도 대표 노래가 되다시피 했다.

‘서귀포를 아시나요’가 널리 알려지면서 정씨는 “고향이 제주도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제주도를 너무나 잘 나타냈다는 얘기다. 노래는 2008년 12월 6일 ‘서귀포 칠십리 시(詩)공원’에 노래비가 세워지며 제주도민들 가슴 속에 영원히 자리하게 됐다. 한라산을 마주한 서귀포시 서홍동에 자리한 공원은 천지연폭포 절벽 위 산책로(600m)를 따라 만들어졌다.

공원엔 작사가 중심으로 오민우의 ‘내 고향 서귀포’, 정두수의 ‘서귀포 바닷가’ 등의 노래비와 함께 길손들을 맞고 있다. 서귀포를 소재로 한 유명시인들 작품 13편과 노래 3편이 자연석에 새겨져 있다. 여러 모양과 빛깔의 돌에 작가나 유족들 필체로 새겨져 눈길을 끈다.

파주시 월롱면 덕은1리에서 태어난 정태권 씨는 월롱초교(27회), 문산중(19회), 문산종고(26회. 현 문산제일고)를 나왔다. 그가 가요작가가 된 건 우연한 계기에서다. 고교 2학년 때(1968년) 한국일보 기자 정홍택씨가 진행하던 라디오 동양방송(TBC)의 ‘신 가요 박람회’란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원고를 보낸 게 계기가 됐다. 이 프로그램은 아마추어작가들이 노랫말을 써서 보내면 기성작곡가가 곡을 붙여 가수들에게 부르게 한 것이다. 정씨는 뒷날 자신의 데뷔곡인 ‘앵두꽃 아가씨’와 ‘산도라지’가 이 프로에서 당선되는 행운을 얻었다. 이 곡들은 모두 작곡가 김학송 씨가 작곡, 정훈희 씨와 이영희 씨가 불러 히트했다.

이후 당대 최고 작사가였던 정두수씨로부터 작품 활동 제의를 받고 문화생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1971년 2월 1일 한국음반저작권협회와 한국연예인협회에 가입, 본격 작사가 길을 걷게 된다. 대표작은 ‘서귀포를 아시나요’와 ‘사랑하는 사람아’(민승아) ‘당신의 마음 다준다 해도’(장민) 등이 있다.

그는 요즘도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2005년 ‘도라산 가는 열차’를 작사한 그는 최근 ‘용산골이 좋아요’(문소윤) ‘언제가나 내 고향’ 등 어릴 적 뛰놀던 용산골(덕은1리)을 떠올리며 작품 배경을 삼았다. ‘군불을 때면 연기조차 빠져나가지 못 한다’는 용산골에서 자라 감성적 내면의 세계를 누구보다 깊게 갖고 있었던 그는 “고향 파주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발표하고 싶다”고 말한다. 월롱면주민자치위원을 맡고 있는 그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땅을 내놓기도 했다. 월롱면에서 집 없이 홀로 사는 어르신 등의 집 지어주기사업인 ‘사랑의 둥지’사업을 위해서다. 공사를 거친 그곳엔 아늑한 집들이 지어져 있다. 가족은 부인 김희자 여사(58. 덕은1리 부녀회장)와의 사이에 결혼한 자녀 1남1녀를 두고 있다.

조미미, 1966년 데뷔 바다관련 노래 많이 불러

노래를 부른 조미미(63·본명 조미자)도 얘기가 많은 가요인이다. 동아방송(DBS)이 1964년에 만든 ‘가요백일장’ 노래자랑프로그램 출신 가수다. 이때 제1기로 김세레나, 김부자와 함께 뽑혀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 1970년 ‘바다가 육지라면’을 불러 트로트 가수로 큰 자취를 남긴 그는 바다와 관련된 노래를 많이 불렀다. 1966년 가요계에 데뷔, ‘강화도 처녀’ ‘내 고향 몽산포’ 등을 불러 이름을 알렸다. 1969년 ‘서산 갯마을’이 크게 히트해 스타덤에 올랐다. ‘먼데서 오신 손님’ ‘단골손님’ ‘선생님’ ‘연락선’ 등 여러 히트곡들을 불렀다. 1972년 발표한 ‘단골손님’은 이듬해 세상을 떠난 이인권 선생이 작곡한 마지막 히트곡으로 유명하다.

1947년 1월 17일 전남 영광에서 태어나 목포여고를 나온 조미미는 1965년 ‘떠나온 목포항’을 취입, 가요계에 첫발을 디뎠다. 자신의 히트곡 외에도 옛 가요들을 리바이벌해 불러 은방울자매와 쌍벽을 이룰 만큼 많은 음반을 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