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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tal clinic - 마음치료 이야기] 앙굴리마라 이야기

공감共感 - 두 번째 이야기

  • 입력 2011.02.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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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힘든 대상도 파고 들어갈 빈틈이 있습니다. 붓다가 그 당시 수백 명을 죽인 살인자 앙굴리마라를 찾아가 교화한 것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앙굴리마라의 경』(맛지마 니까야 제3권 492~496쪽)에 보면 붓다 당시에 꼬살라 국에 앙굴리마라라는 살인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잘못된 종교적 신념으로 사람을 죽여 죽은 사람의 손가락으로 화환을 만들었습니다. 앙굴리마라라는 이름도 손가락으로 만든 화환이라는 뜻입니다.

나라에 지금으로 치면 계엄령이 내렸지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벌벌 떨었고 앙굴리마라가 있는 곳에서는 낮에도 수십 명씩 무리를 지어서 거리를 지나곤 했습니다. 경전의 주석서에 의하면 앙굴리마라는 목표하는 천 개의 손가락 중 999개의 손가락을 얻고 난 뒤 마지막 손가락 하나를 채우기 위해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붓다가 탁발을 마치고 식사를 한 후에 앙굴리마라가 있는 곳으로 찾아갑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행자여, 이 길로 가지 마십시오. 이 길에는 앙굴리마라라는 살인자가 있습니다. 그는 잔인하여 손에 피를 묻히고 살육을 일삼고 생명에 대한 자비가 없습니다. 그는 마을과 도시와 지방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그는 사람을 죽여서 손가락으로 화환을 만들고 있습니다. 수행자여, 이 길을 열사람, 스무 사람, 서른 사람, 마흔 사람, 쉰 사람이 모여서 가도, 오히려 그들은 살인자인 앙굴리마라의 손아귀에 놓일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붓다는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앙굴리마라는 붓다가 멀리서 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붓다를 보면서 다음과 같이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참으로 이전에 없었던 일이다. 이 길을 열사람, 스무 사람, 서른 사람, 마흔 사람, 쉰 사람이 모이고 모여서 가도, 오히려 그들은 나의 손아귀에 놓인다. 그런데 이 수행자는 혼자서 동료도 없이, 생각건대 운명에 이끌린 듯이 오고 있다. 내가 어찌 이 수행자의 목숨을 빼앗지 않겠는가.’

앙굴리마라는 칼과 방패를 잡고 활과 화살을 메고 붓다를 바싹 쫓아갔습니다. 그때 붓다는 신통력을 발휘하여 앙굴리마라가 온 힘을 다해 달려도 보통걸음으로 걷고 있는 붓다를 따라잡을 수 없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앙굴리마라에게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참으로 이전에 없었던 일이다. 나는 일찍이 질주하는 코끼리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나는 일찍이 질주하는 말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온힘을 다해 달려도 보통걸음으로 걷고 있는 이 수행자를 따라 잡을 수 없다.’

일체의 살아있는 것에 폭력을 멈추었으므로

나는 멈추었고, 그대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멈추어서 붓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수행자여, 멈추어라. 수행자여, 멈추어라.”

이에 붓다는 “앙굴리마라여, 나는 멈추었다. 너도 멈추어라”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앙굴리마라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습니다.

‘이 수행자는 석가족의 아들로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주장하는 자다. 그런데 이 수행자는 자신은 걸으면서 <나는 멈추었다. 앙굴리마라여, 너도 멈추어라>라고 말한다. 내가 이 수행자에게 그것에 대하여 물어보면 어떨까.’

그래서 앙굴리마라는 붓다에게 시로써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수행자여, 그대는 가면서 ‘나는 멈추었다’고 말하고 멈춘 나에게 ‘그대도 멈추어라’고 말한다. 수행자여, 나는 그대에게 그 의미를 묻는다. 어찌하여 그대는 멈추었고 나는 멈추지 않았는가.”

“앙굴리마라여, 나는 언제나 일체의 살아있는 존재에 폭력을 멈추고 있다. 그러나 그대는 살아있는 생명에 자제함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멈추었고 그대는 멈추지 않았다.”

이 말을 듣고 앙굴리마라는 “오, 드디어 이 수행자가 위대한 선인으로 나를 위해 이 커다란 숲에 나타나셨네. 나에게 진리를 가르쳐 준 그대의 시를 듣고 나는 참으로 영원히 악함을 버렸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붓다에게 귀의하여 제자가 되었습니다.

[1L]공감훈련

앞의 경우에서 전개된 상황은 극단적이지만 아무리 힘든 대상도 파고 들어갈 빈틈이 있다는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사람과 부딪칠 때 두려워서 피하거나 방어적이 되어 상대를 자극하기보다는, 비록 입장은 다르지만 상대를 존중하고 자극하지 않고 상대와 공존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다면 상대와 같이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중요한 공감을 어떻게 훈련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나의 경우는 처음 정신치료자가 되기 위해 교육 분석을 받을 때부터 공감의 중요성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공감 훈련을 했습니다. 지하철을 타면 앞에 앉은, 모르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을까 하고 지켜보려고 했습니다. 나를 멈추고 그 사람이 되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사람이 짖는 표정이 있으면 거기에 마음이 묻어져 있다고 보고 그 마음이 되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지하철뿐만 아니라 어디서든 사람을 보면 그렇게 했습니다. 당연히 진료실에서도 그랬습니다. 진료실에서는 환자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하나하나 모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공감 훈련을 통해 사람을 대하면 그 사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확히 알지는 모르지만 그 사람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추측하고 판단하는 것은 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라도 그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면 그것을 소중히 하고 자세히 듣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에서 하는 소리를 들으려고 온 신경이 다 가 있기도 합니다. 그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 것은 표정이든 말이든 행동이든 놓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한 말이든 잘 기억하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을 알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이 빠릅니다.

사람을 만날 때 사회적 직위나 위치나 은연중에 가지는 선입견보다는 그 사람의 마음과 만납니다. 예를 들어 종교 지도자나 지위가 높은 사람을 만날 때 그런 지위나 지위에 대해 가지는 기대심리보다는 지금이 자리에서 만나는 그 사람의 마음과 만나게 됩니다. 누구를 만나든 당당해지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게 합니다.

공감에 기반을 둔 인간관계는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그런 만큼 갈등이 적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억지를 부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겸손해집니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 자만에 빠집니다. 누구를 봐도 무엇을 봐도 우리는 모릅니다. 그래서 알려고 할 뿐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자연히 겸손해지고 누구를 봐도 존중하는 마음이 듭니다. 사람과의 갈등과 충돌이 줄게 됩니다.

이런 훈련을 자꾸 하면 이런 쪽으로 우리 속에 시스템이 생깁니다.

그런 쪽으로 감각이 발달하게 됩니다. 공감 능력이 생기면 생길수록 살아가면서 편해지고 행복해지고 주위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재산이 됩니다.

21세기 문맹의 의미는

서로 공감하지 못하는 것

우리가 공감의 중요성을 알고 훈련하여 어느 정도 우리 것이 되면 가족이나 주위 사람에게 알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좀 더 나은 사회 속에서 살게 됩니다.

자식에게 공감을 가르쳐 주는 경우를 보겠습니다. 먼저 부모가 아이에게 공감하고 공감적 반응이 쌓이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공감에 대해 익숙하게 됩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감정이 어떠할 것인지 물어보고 그것을 헤아리도록 하고 그것에 대해 같이 이야기합니다. 필요한 경우 부모가 대상이 되어 아이에게 부모의 마음이 어떤지 물어보게 하고 직접 그 답을 아이에게 해 주면 아이의 공감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애완동물이나 심지어는 식물이 어떤 상태인지에 대해 공감하려는 노력을 아이와 같이 학교공부 하듯이 한다면 공감 능력이 크게 향상될 수도 있습니다. 공감 능력은 노력으로 얼마든지 개발될 수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학기술의 발달로 교통수단이 발달하여 세계는 이제 왕래가 잦아지고 서로 만날 일이 많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제 우리는 세계시민입니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문화까지 공감해야 합니다. 다른 나라와 공감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 못할 경우, 가족이나 이웃, 직장동료 사이에 생길 수 있는 갈등이나 분쟁보다 그 영향이 훨씬 클 수 있습니다. 티베트 망명정부의 정치적·종교적 지도자이고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달라이 라마와 심리학자, 과학자와의 대화를 주관하는 단체인 ‘마음과 생명연구소(The Mind and Life Institute)'에서 2009년 10월 미국 워싱턴에서 진행한 학술대회 주제도 ‘세계 시민을 어떻게 공감 능력과 자비심이 있는 사람으로 교육할 것인가’였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공감이 중요한 때입니다. 그래서 ‘21세기의 문맹은 공감이 안 되는 것이다’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공감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