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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칼잡이 의사들의 고뇌

  • 입력 2011.03.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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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고는 그래도 바다 속에서 몰래 저질러서인지, 이상한 사람들의 못된 유언비언 때문인지 타성에 젖은 국민들은 몇 달 동안만 끌탕이더니 지나가버립니다. 그런데 연평도의 포성은 우선 TV 화면이 포연과 불길로 뒤덮이다보니 온 백성들 이제야 화들짝 놀랍니다.놀라면 뭐하나요! 그 뒤에 벌어진 일도 역시 그게 그거입니다. 지터지고 짹 한 번 날려 보지 못합니다. 그 처절했던 6.25를 격은 세대들은 아예 화병들이 납니다. 하필이면 저도 해군군의관으로 해병대를 거쳤으니 두 번이나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어서 화가 치밀고 속이 뒤틀립니다.
학연, 지연이 있듯이 우리나라에서는 군대 인연도 끊을 수 없습니다. 자연히 제 진료실 앞에는 해군 해병대 출신 노년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모두가 한마디씩 던집니다. 속상해 미치겠답니다. 천안함, 연평도 이야기만 나오면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난답니다.
어떤 환자는 이런 말도 합니다. 다시 해병대가서 수색대로 지원해 “저놈아들! 한방씩 멕이뿌면 좋겠다”고 합니다. 단순한 늙은이의 망령이 아닙니다. 모두들 씩씩거립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새해 들어 열병에 시달리던 백성들에게 얼음냉수 같은 시원한 소식이 날아듭니다. 우리의 용맹한 네이비 실(해군특수부대)들이 이름도 멋진 ‘아데만의 여명’이란 작전으로 삼호 주얼리호의 해적들을 신나게 뭉개 버리고 우리 선원들을 몽땅 구해냈답니다.
해군제독출신의 친구 겸 환자가 평소와 달리 환한 얼굴로 들어옵니다.
“권박! 니 봤제! 우리 아이들 최고 아이가!”
칠순노인이 현역 현임하사 같이 떠들어댑니다.
이상한 것은 업이 칼잡이 의사인 제 시선은 자꾸 한곳으로만 갑니다. 이번 작전의 진정한 영웅은 뭐니 뭐니 해도 그 살벌한 상황에서 작전하기 좋도록 배를 몬 선장입니다. 말 그대로 그는 캡틴입니다.
호사다마인지 운세가 꼬였는지 하필 선장이 심하게 다쳤답니다. 그것도 다발성 총상, 골절, 내출혈……. 아무래도 심상치 않습니다. 더구나 오만이라는 나라의 의료 수준을 믿기도 어렵습니다. 모든 미디어가 신나는 이야기로 도배가 되는 어느 날 가장 듣기 싫은 ‘패혈증’이라는 단어가 뜨더니 무지무지 겁을 주는 혈액응고 장애, DIC(Disseminated Intravascular Coagulation, 범발성 혈액응고이상) 같은 자막들이 지나갑니다. 칼잡이 의사들이라면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상황입니다.
외상이던 수술에 의한 상처이던 세균의 침범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광범위 항생제라도 모든 균들을 억제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외상의 경우 다친 곳이 청정지역도 아니고 세균들이 들끓는 곳이니 역부족일수 밖에 없습니다. 상처 난 부위에 달라붙어 환자의 체력감소로 면역력이 약한 틈을 타 전신으로 퍼져갑니다. 온몸을 도는 핏속에 세균들이 돌아다니니 세균들의 독소에 의해 혈액에도 이상증세가 오는데 특히 혈액응고를 돕는 혈소판이 감소하게 됩니다. 웬만한 상처의 출혈이면 3~4분이면 혈액의 응고로 출혈이 멎는데 이것은 바로 혈소판 때문입니다.
석 선장은 내장을 비롯해 여기저기 총알이 박힌 데다 뼈까지 다쳤으니 출혈이 멎지 않으면 끔찍한 상황이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균의 독소들은 신장까지 쳐들어가 소변의 배설 기능까지 막아 신부전을 일으킵니다. 외과 의사들이라면 꿈자리까지 뒤숭숭한 상황입니다.
드디어 한국의 명의들이 달려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아니고 ‘석 선장 구하기’ 작전 회의를 열고 조국에 옮기기로 합니다. 목숨이 경각인데 수천 킬로의 후송이 큰 문제입니다. 이번에는 정부도 모처럼 제 몫을 합니다. 에어 앰뷸런스를 구해줍니다. 무사히 서울공항에 도착합니다. 들것에 실려 내려오는 선장에게 온 국민의 시선이 쏠립니다. 모여드는 카메라의 조명이 대낮같습니다. 그런데 유난히 눈에 띄는 장면이 있습니다. 기자들에 둘러싸인 주치의를 봅니다. 진짜 사나이를 봅니다. 결의에 찬 눈길을 봅니다. “옥쇄하는 기분으로 선장님을 살려내겠습니다.”
가슴이 울컥해집니다. 자랑스러운 한국의 칼잡이입니다. 그는 바로 아주의대 외상의학과 이국종 교수입니다.
어제 저녁 어느 모임에서 아주의료원 전 원장과 이 교수의 주례를 맡았던 연세의대 교수와 함께 식사를 합니다. 좌중의 주문과 질문이 하나입니다.
석 선장! 살려야 되요! 살릴 수 있어요?
삽니다! 아주의대 전 원장의 확신에 찬 대답입니다. 그 친구 해냅니다! 주례를 맡았던 교수가 덧붙입니다.
3주일째 집에도 못 갔답니다. 하루에 3시간도 못 잔답니다. 기진맥진이랍니다. 그래도 기가 살아 넘친답니다.
이 교수같이 당찬 의사들이 있는 한 누가 뭐래도 한국의 의료계는 싱싱합니다.
석 선장님 무조건 사셔야합니다. 온 국민의 기원도 기원이지만 저 자랑스러운 이국종 교수! 옥쇄하면 안 되잖아요!
필자는 한국전립선관리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