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남진의 출세곡 ‘울려고 내가 왔나’

  • 입력 2014.01.23 20:00
  • 기자명 emddaily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울려고 내가 왔나 누굴 찾아 여~기 왔나
낯 설은 타향 땅에 내가 왜 왔나
하늘마저 나를 울려 궂은비는 내리고
무정할 사 옛 사람~아
그대 찾아 천리 길을 울려고 내가~왔나
그 누구 찾아 왔나 영산강아 말~해 다오
반겨줄 그 사람은 마음이 변해
아쉬웠던 내~사랑 찬 서리에 시드나
그렇지만 믿고 싶~어
보고프면 또 오리라 울면서 찾아~오리

김중순 작사, 김영광 작곡, 남진(본명 김남진·65) 노래의 ‘울려고 내가 왔나’는 음반이 나온 지 올해로 45년째 되는 대중가요다. 이 노래는 가수 남진이 1965년 가을에 취입, 이듬해 음반으로 발표한 그의 출세작이다. 남진은 이 노래가 히트해 하루아침에 인기가수로 떴다.

‘울려고 내가 왔나’는 1967년 같은 제목의 영화(감독 강범구) 주제가로 만들어졌다. 특히 노래를 부른 남진(동진 역)과 그 때 인기스타였던 남정임(신자 역)이 주연배우로 나와 눈길을 끈다. 트위스트 김(만고 역), 김광수, 강미애, 주증녀 등 유명 출연진들도 영화의 무게를 더했다. 

영화는 노랫말을 떠올리게 하는 남녀사랑의 멜로물이다. 남진은 영화 속에서 노래를 부른다. 영화에서 동진은 어릴 때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오 영감 집에서 자란다. 성인이 돼선 서울서 공장을 다니고 있었다. 그런 동진에겐 고향인 오릿마을에 살 때부터 사랑을 키워온 애인 신자가 있고 그녀는 서울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오 영감 아들이자 동진, 신자의 고향마을 벗인 민태 또한 서울에 올라와 있었다. 민태는 대학에서 퇴학당한 뒤 건달로 지냈다. 어려서부터 신자를 좋아했던 민태는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덮쳤다. 그리고 집을 옮겨버려 동진이 신자를 찾지 못하게 만들었다.

매일 노래만 부르고 음악생각에 빠져 있다는 이유로 해고된 동진은 단짝친구와 아코디언, 기타를 장만해 명동과 무교동 근처 바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동진은 유명한 작곡가를 만나 레코드취입까지 하게 되고 유명해진다. 그렇게 동진은 가수로선 성공하지만 신자를 민태에게 빼앗겨 괴로워한다. 그리고 오릿마을에서 함께 자라 서울서 바걸 생활을 하는 양희에게 청혼하며 마음을 의지하려고 한다.

한편 양희는 크레멘탈이란 바의 마담 로즈가 동진의 어머니란 사실을 알고 두 사람을 극적으로 만나게 해준다. 동진은 자신이 어머니란 사실은 밝히지 않으며 ‘열렬한 팬’이라고만 말하는 그녀에게 히트곡인 ‘울려고 내가 왔나’와 ‘어머니의 얼굴’을 불러준다. 노래를 들은 로즈는 눈물을 흘리지만 동진에게 사실을 끝내 말하지 않고 조용히 떠날 준비를 한다는 내용이다. 아들은 두 곡의 노래를 부르고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취중에 나이트클럽서 노래 부르다 가수로 연결 

어릴 때 배우가 꿈이었던 남진은 고교 3학년 때부터 서울 충무로 영화가를 기웃거렸다. 어느 날 나이트클럽에서 취중에 마이크를 잡았다가 그 자리에서 샹송가수이자 작곡가인 한동훈 씨를 소개 받았다. 그런 인연으로 1964년 가을 한동훈 작사·작곡 ‘서울 플레이보이’, ‘쓸쓸한 크리스마스’를 취입, 자비로 음반을 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크게 노한 남진의 아버지는 그를 불러 1년간 금족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는 몰래 서울로 가서 서라벌예술대(현재 중앙대 예술대)에 등록해놓고 다시 고향 목포로 내려갔다. 1년 뒤 한양대 연극영화과로 옮긴 그는 다시 충무로 일대를 쏘아 다니고 가요계를 들락거렸다. 그러다 우연히 영화감독 문여송, 작곡가 김영광 씨를 만나 가수가 됐다. 대학 1학년 때 일로 1968년엔 ‘대학 일학년’이란 노래도 취입했다.

1965년 1집 앨범 ‘서울 플레이보이’로 데뷔한 남진은 ‘울려고 내가 왔나’, 이듬해 ‘가슴 아프게’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우리나라 가요계를 대표하는 남성가수로 자리 잡았다. ‘영원한 젊은 오빠’ 남진, 나훈아와 라이벌로 활동

그는 한동안 부산출신의 나훈아와 라이벌 구도를 이뤘다. 서민과 귀족, 듣는 음악과 보는 음악이란 두 가수의 차이에서 대중은 더욱 열광했다. 남진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라이벌이나 팬클럽 같은 문화도 나훈아와의 경쟁관계에서 시작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가수왕을 발표할 때 못 받은 (가수의) 팬들은 대성통곡했다”면서 “나훈아 씨와 경쟁관계가 거세지자 팬클럽이니 라이벌 같은 용어가 그때 생기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남진은 인기정상이던 1968년 해병대에 자원입대, 베트남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님과 함께’, ‘울려고 내가 왔나’, ‘미워도 다시 한 번’, ‘그대여 변치 마오’, ‘빈 잔’, ‘둥지’ 등 수많은 히트곡으로 사랑 받았다.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그는 춤추는 가수가 없었던 시절 춤을 추면서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란 별명을 얻었다. 낮게 깔리는 중저음의 톤과 ‘님과 함께’에서 처음 선보인 춤, 영화배우로도 이름을 날린 이력이 꼭 엘비스 프레슬리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2000년 한국연예협회 이사장, 2007년 대한가수협회 초대회장을 지내며 연예계 저변확대를 위해 뛰기도 했다. 1977년 첫 남편(유주용)과 이혼한 가수 윤복희(윤항기 가수·목사 여동생)와의 깜짝 결혼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몇 년 뒤 둘은 갈라섰다.

올해로 가요계 생활 45년을 맞은 남진은 오는 3월 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데뷔 45주년 기념공연(‘남진 콘서트―님과 함께 45년’)을 갖는다. 그의 세종문화회관 공연은 1971년 세종문화회관 전신인 시민회관 리사이틀 후 처음이어서 의미가 깊다. 남성미를 자랑하는 조각 같은 외모로 뭇 여성들 가슴을 뒤흔들었던 ‘영원한 젊은 오빠’ 남진은 서울공연에 이어 전국음악투어에도 나설 예정이다.
 
왕성상(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