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art&medicine]달의 성적 상징성과 여성

  • 입력 2011.12.01 00:00
  • 기자명 emddaily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L]그림 1. 발라동 작: ‘버려진 인형’ (1921) 워싱턴, 국립여성미술관

달의 전설과 신화가운데 그 성적 상징성에 대해 어떤 것은 여성으로 또 때로는 남성이나 양성구유적(兩性具有的)인 것으로 표현하는 등 여러 가지이다. 즉 달을 이렇게 다양하게 표현하는 이면에는 초승달을 남성의 상징으로 보고 보름달을 여성의 상징으로 보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선사시대로부터 인류는 다산(多産)을 소원해 왔는데 그것은 종족번식이라는 염원도 있겠지만 모자라는 노동력을 보충한다는 의미가 더 절실하였다. 그래서 다산이라는 문제는 언제나 여성이 안아야하는 숙제로 되기 때문에 여성들은 밤하늘의 달을 향하여 다산이라는 소원을 기원하여 주술적인 효과를 바랬다. 따라서 달은 여인들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영적인 존재로 숭배의 대상인 동시에 사모하는 대상이기도 하였다.

달은 월경이라는 다달이 있는 여성의 출혈을 야기 시키는 신비로운 존재이며 임신과 출산을 주도하는 초능력을 지닌 존재라는 생각에서 한걸음 더 나가 이른바 다달이 있는 출혈은 달이 여성을 능욕하여 이루어지는 일종의 ‘정신적인 파과(破瓜)’로 생각하게 되었다. 정신적 파과는 무의식의 원형적인 지혜가 포함되는 여성에 있어서 결정적인 운명의 수간으로 즉 월경으로 인해 자연의 존재이던 소녀가 생산능력을 지니는 성숙된 여성으로 탈바꿈하는 것으로, 초기의 인류는 달로부터 여성으로 될 수 있는 기능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이 곧 월경이라 생각하였다. 따라서 남녀사이에 이루어지는 실제적인 파과는 정신적 파과가 있은 후의 2차적인 것으로 생각 하였다.

이러한 취지와 상황을 잘 표현한 그림이 있어 살펴보기로 한다. 프랑스의 여류화가 발라돈(Suzanne Valadon 1865~1938)의 작품 ‘버려진 인형(1921)’을 보면 화가에게는 딸이 없었다. 따라서 이 그림은 자기의 경험을 그린 것으로 생각 된다. 즉 한 소녀가 나체의 상태로 침대 위에 앉아서 무엇인가에 놀란 듯이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손거울을 보고 있으며,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이 소녀의 뒤에서 수건으로 몸을 가려주며 달래고 있다. 몸의 상태로 보아서는 성숙된 여인으로의 모습을 다 갖추고 있으나 머리에 커다란 리본을 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어린 소녀임에 틀림이 없다. 침대 밑에 버려진 인형으로 소녀는 이제는 인형을 갖고 노는 어린이에서 거울을 보며 모양을 내는 성적으로 성숙된 여인으로 변한 것을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생각지도 않았던 정신적인 파과인 출혈, 즉 초경(初經)으로 인해 어린이에서 성숙한 여인으로 변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이렇듯 예 사람들은 초경을 정신적인 파과로 이를 당하는 본인으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지만 여자의 일생을 경험한 어머니로서는 반가운 일로 딸을 달래주며 납득시키건 한다는 것을 잘 표현한 그림이라 하겠다.

정신적인 파과로써의 월경은 문화적 가치나 가치전환에 구해되지 않고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여성의 생활에 관여하여 왔다. 즉 남녀 간의 성교는 눈에 보이는 형태이지만 반드시 수태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며, 정신적 파과인 월경의 개시는 수태의 가능성의 상징이며, 월경의 중단이나 폐지는 생식능력의 종료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것을 미개인들의 지능으로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것이었다. 따라서 생식이나 다산성은 사람간의 성교와는 관계되지 않고 오로지 달의 능력에 의한 것으로 여기고 달은 여인의 소망을 들어주는 숭배의 대상으로 여겼던 것이다.
[2L]그림 2. 폴록 작: ‘달과 여인’ (1942) 뉴욕, 굿게인하임 미술관



월경과 수태를 조절하는 달이 여성에 수정한다는 것은 순전히 심리적인 것으로 현실의 남성과의 성교나 월경, 임신, 출산이라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경험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성의 성생활에 있어서의 기본적인 상황은 성에 대한 여성의 외적체험은 지상의 인격자로서의 남성과 결부되지만 내적인 체험은 멀리서 투영되는 비개인적(非個人的)이며 초인간적인 달의 능력에 의한 것으로 생각하였으며 이런 생각이 현대여성에 있어서도 노이로제의 기본심리로 작용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달은 여성들의 내적파과가 행하여지는 여성들의 주인으로 여겨졌다. 이렇듯 여성의 달에 대한 귀속은 전형적인 신비에서 출발된 한 예라 할 수 있다. 즉 달과의 무의식적인 일체감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구상의 대지에는 태양의 빛과 인력으로 인한 힘을 받아들이는 것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있다. 즉 대지는 비를 수용하지만 바위는 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은 비가 대지에는 필요하지만 바위에는 하등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달의 인력과 빛이 인체에 작용할 때도 그 작용을 받아들이는 몸의 어떤 부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여성의 자궁이라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자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이 말하기를 여성이 정서적으로 몰두하는 남성을 아니무스(animus)라 하는데 달은 여성이 지니는 무의식적인 남성적 요소인 아니무스계의 원형적 중심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영혼의 심상은 지식, 진실, 의미 등을 추구하는 로고스(이성)의 성격을 띠며 종종 공기와 불의 이미지로 나타난다고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달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러한 융 박사의 생각을 작품으로 잘 표현한 화가가 있다. 미국의 화가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은 어려서부터 반항정신이 강하였으며 화가가 되고나서도 나름대로의 몸을 던져서 그림을 그리는 소위 action painting을 창안하는 등 독득한 화가였다. 술을 좋아한 나머지 결국은 알코올 의존증으로 정신과 의사의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그 때 정신과 의사는 융의 숭배자로 분석 치료의 일환으로 그림을 그리는 치료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자기의 무의식을 표현하는 것이 주축이 된 나름대로의 화법의 골격을 형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화가는 달을 주제로 세 작품을 그렸는데 그중의 하나가 ‘달과 여인(1942)’이다. 여성적인 존재의 본질적인 것은 언제나 달과 연계되며 달과 일체가 되곤 하는 것으로 이러한 달과 여성의 관계는 달의 지구와 생명에 대한 관계와 동일시된다는 것이다. 그림의 중심은 달과 여인이 일체가 된 것으로, 그 주변은 비록 내면적인 것이기는 하나 이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달의 능력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성스러운 달은 여성적인 것과 결합된 무의식의 정신상징에 투영된 형식으로 체험되며 그래서 달을 ‘모권적 의식(母權的意識)’의 중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달의 원형에서 투영되는 정신적 영향은 무의식과 연결되는 정서적인 활동이며 그것이 활발하게 활동할 때는 마치 불과 같은 뜨거운 정신작용으로 용기이고, 격노이며, 광란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계시하는 예언이나 허언 등은 시를 만들게 하며, 그러나 이러한 불같이 타오르는 생산 활동과 더불어 또 하나 의연한 것은 절도 있는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즉 명상하고 꿈을 끄며 인내하는 총명성과 절도를 구비한 것이 달이 전해 주는 교시라는 것이다. 따라서 달과 마음을 맞추어 항상 달의 배려를 잊지 않고 결국 달을 숭배하게 된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내용의 그림이라고 하는데 범인으로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