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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Episode / ‘가는 세월’]서유석 은둔 시절 세월의 무정함을 노래한 곡, ‘가는 세월’

  • 입력 2012.02.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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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아가들이 자라나서 어른이 되듯이슬픔과 행복 속에 우리도 변했구려.하지만 이것만은 변할 수 없어요새들이 저 하늘을 날아서 가듯이달이 가고 해가 가고 산천초목 다 바뀌어도이내 몸이 흙이 돼도 내 마음은 영원하리하지만 이것만은 변할 수 없어요새들이 저 하늘을 날아서 가듯이달이 가고 해가 가고 산천초목 다 바뀌어도이내 몸이 흙이 돼도 내 마음은 영원하리이내 몸이 흙이 돼도 내 마음은 영원하리우리는 해가 바뀌면 가는 세월을 아쉬워한다. 이뤄놓은 건 없는데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면서 세월무상을 느낀다. 김광정 작사․작곡, 서유석 노래의 ‘가는 세월’은 새해가 되면 자주 불리는 가요다. 4분의 4박자 슬로우록 풍으로 가사의 뜻이 깊다. ‘가는 세월’은 서유석이 어려울 때 그를 본격 알린 히트곡이자 가요계 공백기에 그의 생활에 활력을 준 노래다. 그가 1976년 노래를 잠시 접고 대전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을 때 취입됐다.킹레코드사 박성배 사장(일명 ‘킹박’) 설득으로 불러그는 이 노래를 부르기 전엔 1973년 TBC(동양방송) 심야음악프로그램 ‘밤을 잊은 그대에게’ DJ로 월남전 파병에 반대하는 내용을 내보냈다가 방송 일을 그만둬야했다. 그러다 3년 뒤 그는 대표곡이 된 ‘가는 세월’로 화려하게 복귀했다.이 노래는 킹레코드사의 박성배 사장(일명 킹박)의 설득으로 부른 곡이다. 킹박은 서유석의 든든한 후원자로 ‘듣는 귀’가 타고난 사람이다. 음악을 정식으로 공부하지 않았지만 리듬감이 뛰어나 신중현 씨도 탄복할 정도였다. 서유석, 신중현, 펄 시스터스, 장현, 양희은 등의 히트음반 중 킹박의 손을 거친 게 많다.‘가는 세월’은 서유석을 위해 만들어진 곡이다. 그가 대전서 술장사(생맥주집 아리 운영)를 하고 있을 때 가끔 서울로 와 음악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신세한탄을 했다. 그 중 한 사람이 윤항기의 키보이스 멤버로 기타를 치던 김광정 씨였다. 서울 여의도 맨해튼호텔에서 연주를 하고 있었던 김 씨는 어느 날 서유석을 만나 “당신에게 꼭 맞는 곡이 있다”고 했다. 이 곡은 김 씨와 몇 사람이 만들어 여러 밴드들이 연주하고 있었으나 제목이 붙어있지 않았다. 그러면서 서유석에게 제목을 붙여보라고 했다. ‘곡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든 서유석은 그 자리에서 악보를 그려놓고 몇 군데 손을 봤다. ‘가는 세월’이란 제목도 붙였다. 세월만 죽이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빗대 지어낸 것이다. 그는 악보를 대전으로 갖고 내려와 1년 반 동안 조금씩 고쳐가며 ‘아리’무대에 오를 때면 이 노래를 불렀다. 홀에 있던 손님들도 따라 불렀다. 대학생들이 노래가 좋다며 서서히 알렸다. 그는 자서전(‘청개구리들이여 다시 날자구나’)을 통해 “아리무대에서 무력감과 좌절감에 젖어 보내고 있는 세월을 생각하며 ‘가는 세월’을 부르다 보니 묵은 된장처럼 감정이 확실히 살아났다”고 회고했다.어느 날 그에게 기회가 왔다. 1975년 연예계가 대마초파동에 휩싸여 방송 가요프로그램들이 된서리를 맞았다. 얼마 뒤 중앙정보부 사람들이 서유석을 찾아가 “서울로 가서 다시 가수활동을 하라”고 했다. 군사독재정권이 국민통치를 쉽게 하기위해 우민화정책을 펴던 때라 그렇게 권유한 것이다. 정치나 사회현실에 대한 불만을 돌리기 위해 국민들의 눈과 귀를 붙잡아놓을 만한 게 필요했던 박정희 정권은 스포츠와 TV쇼를 이용했다. 대마초사건으로 이름 있는 가수들이 방송에 나가지 못하자 대중들은 TV쇼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정보기관은 TV쇼를 살리기 위해 대마초사건에서 살아남은 가수 중 인기를 끌만한 사람을 찾던 중 서유석을 만난 것이다.그러나 서유석은 술장사에 재미를 붙이고 있을 때로 가수활동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중앙정보부요원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회유를 하다 안 되자 ‘아리가 무허가건물이다’ ‘세무조사를 하겠다’며 협박을 하다가 ‘운영자금이 달리면 언제든지 얘기하라’는 등 회유하기도 했다. 마침내 킹박까지 동원돼 “외국에 안 나갈 거면 다시 노래를 부르라!”고 설득했다. 서유석은 결국 술집 문을 닫고 서울에서 ‘가는 세월’을 취입했다. 공연윤리위원회 심사를 거쳐 선보인 노래는 대박이었다.그럼에도 서유석은 장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후배들과 서울 사직동에 ‘도서관’이란 룸살롱을 차렸다. 가게이름은 한자로 술 ‘도’, 술 ‘서’, 집 ‘관’을 따서 붙였다. 간판을 한자와 한글로 써놓자 낮엔 고등학생들이 책가방을 들고 들어오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 큰 불이 나 가게를 정리했다.주관과 시대 앞서가는 개성 강한 가수서유석은 ‘홀로 아리랑’, ‘타박내’, ‘아름다운 사람’ 등 주옥같은 서정적인 가사의 노래들을 많이 불렀다. 그의 노랫말은 미국 모던포크의 대표주자인 밥 딜런 음악에 비유된다. 밥 딜런과 존 바에즈가 월남전 반대 등 반전메시지를 품고 있다면 서유석은 독재군사정권의 암울한 정치상황이 빚어낸 정치․사회현실을 풍자하는 메시지로 무장했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고민한 그 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그들의 음악을 즐겨 부르고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선 닮은꼴이다. 그 무렵 방송프로그램 DJ로 있었던 서유석을 ‘반사회적 통기타가수’로 눈에 가시처럼 여기던 당국으로선 그의 방송에 촉각을 세웠다. 그 땐 국군의 월남파병논쟁으로 온 나라가 정치적 공방으로 시끄러웠다. 그런 가운데 ‘밤을 잊은 그대에게’ 프로그램에서 UPI종군기자가 쓴 ‘추악한 미국인’ 종군기가 여과 없이 방송됐다. 사회비판의식이 강한 서유석이 사고를 친 것이다. 그는 마이크를 놓고 줄행랑을 쳤다. 3년간 어느 목사 집에서 숨어 지내며 아무 일도 못했다. 주위시선이 가라앉을 때쯤 대학축제에 나가 노래로 억눌린 울분을 달래긴 했으나 앞날에 대한 걱정은 무력감과 좌절감이 뒤섞인 가위눌림으로 바뀌었다. 이때의 처절한 심정을 담은 ‘가는 세월’ 음반(8집)이 나왔다. 노래가 선보이자 6개월 만에 100만장의 발매기록을 세웠다. 그 때로선 엄청난 판매량으로 화제가 됐다. 그 바람에 대중들은 ‘가는 세월’을 서유석의 대표곡으로 알고 있다. 서유석은 큰돈을 쥘 수 있었다. 대지 800평, 건평 200평의 집을 지어 각방마다 냉장고를 들여놓고 술을 가득 채워 동료가수들을 초청했다. 그러나 찾아온 가수들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낀 나머지 그 뒤엔 다시 오지 않았다. 서유석은 문득 깨달음을 얻고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부르고 다녔다. 집안에선 말썽꾸러기, 사회에선 요주의 문제아로 취급받았던 서유석은 뚜렷한 주관과 시대를 앞서가는 개성 강한 가수다. 1960~70년대 보수적 현실에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전두환 정권 첫해인 1980년 11월 30일 DJ를 맡고 있던 아침방송 ‘푸른 신호등’을 마지막으로 ‘가는 세월’을 부르며 클로징멘트(프로그램을 마감하는 말)로 가름했다. 이처럼 그의 삶엔 굴곡이 많았다. 서유석, 학창시절 땐 청소년 국가대표 핸드볼선수1945년 1월 8일 서울서 태어난 서유석은 젊을 땐 운동선수를 꿈꿨다. 서울중, 서울고, 성균관대 경영학과(1965학번)를 졸업한 그는 고교와 대학 땐 청소년 국가대표 핸드볼선수였다. 대학을 다니면서 기타를 배워 서울 명륜동 학교 앞 살롱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대학졸업 후 1969년 ‘사랑의 노래’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통기타가수로 서울 명동 오비스캐빈과 YWCA 청개구리 모임에서 활동하며 한대수, 김민기와 포크가수 1세대로 꼽힌다. 1970년대 초 ‘아름다운 사람’ ‘비야 비야’ ‘사모하는 마음’ ‘세상은 요지경’ ‘파란 많은 세상’ ‘타박내’ 등을 발표했다. 드라마주제곡 ‘그림자’도 불렀다. 특히 1977년 MBC라디오 아침 교통프로그램 ‘푸른 신호등’ 진행자를 맡아 17년 6개월간 일했다. 방송을 하면서 1980년대 중반 ‘사랑의 나그네’와 ‘생각’을 발표했다. 1990년대엔 한돌과 독도사랑운동을 벌이며 ‘홀로아리랑’을 취입했다. 1996년엔 교통방송 ‘출발 서울대행진’ MC를 맡았다. 교통문화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2000년 서울교통문화상, 2002년 국민훈장(목련장)을 받았다. 2003년 가수로 돌아온 그는 아내 권유로 기독교신자가 됐다. 집사로 서울부근 교회나 지방교회 초청을 받아 신앙 간증도 하고 노래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