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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Episode] 갑돌이와 갑순이

  • 입력 2012.04.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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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돌이와 갑순이는 한 마을에 살았더래요 둘이는 서로 서로 사랑을 했더래요 그러나 둘이는 마음뿐이래요 겉으로는 음~ 모르는 척 했더래요 그러다가 갑순이는 시집을 갔더래요 시집간 날 첫날밤에 한없이 울었더래요 갑순이 마음은 갑돌이 뿐이래요 겉으로는 음~ 안 그런 척 했더래요 갑돌이도 화가 나서 장가를 갔더래요 장가간 날 첫날밤에 달 보고 울었더래요 갑돌이 마음은 갑순이뿐이래요 곁으로는 음음음 고까짓 것 했더래요 라음파 편곡, 김세레나(65·본명 김희숙)가 부른 신민요가요 ‘갑돌이와 갑순이’는 멜로디가 흥겹고 가사내용이 재미있다. 갑돌이와 갑순이가 너무 사랑했지만 결혼으로 골인하지 못하고 각자 다른 사람과 만나 살아가며 옛사랑을 잊을 수 없어 눈물로 세월을 보낸다는 내용이다. 감정표현에 솔직해지고 후회하지 말자는 뜻이 담긴 노래다. 서로 좋아했던 둘은 마음만 그럴 뿐 말로 나타낼 줄 몰랐다. 그야말로 ‘갑갑사랑’이다. 갑갑남 갑돌이가 먼저 말을 걸었어야 했으나 갑갑녀 갑순이가 거절할까 말을 못하고 냉가슴만 앓는다. 이걸 믿고 갑순이가 뭘 어쩌겠는가. 부모가 시키는 대로 눈물을 흘리며 결혼한다. 해놓고 보니 기가 막힌다. 행복해야할 첫날밤에 엉엉 우는데 신랑은 제 부모 보고 싶어서 우는 거려니 하고 갑순이 등을 두드려준다. 그러자 갑돌이도 홧김에 장가를 가 물릴 수도 없다. 이처럼 속으로만 피었다가 죽을 때까지 말하지 못하고 묻혀간 사랑이 어디 갑갑커플 뿐이겠는가. 이 땅의 늙은 첫사랑은 다 그렇게 가슴에 박힌 못이다. 바보 같은 연애라고 옛사람들을 비웃으면 안 된다. 개방적인 요즘 신세대들과 달리 그땐 다들 그랬으니 말이다. 여주군 남한강변에 테마파크 조성 이 노래의 배경지는 경기도 여주다. 노래 속의 갑돌이와 갑순이가 그곳에서 살았다는 실화가 전해져온다. 2011년 7월 여주군 여주읍 연양리 20번지 일대 남한강변 금은모래강변공원(24만23㎡)에 ‘갑돌이와 갑순이’ 테마파크가 들어선 것도 그런 맥락이다. 9294㎡(약 2800평) 넓이로 갑돌이와 갑순이 토피어리, 장승, 솟대, 꽃가마, 초가, 기와집, 도자기 분수, 항아리 분수 등으로 꾸며졌다. 갑돌이와 갑순이 테마파크 입구에 들어서면 ‘갑돌이와 갑순이’ 민요가 정겨운 가락으로 들려오는 듯하다. 테마파크가 이곳에 생긴 건 갑돌이와 갑순이가 여주에 살았다는 구전민요가사에서 비롯됐다. 신민요 가수 김세레나가 1960년대 편곡해 불러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던 ‘갑돌이와 갑순이’ 원곡은 ‘박돌이와 갑순이’다. 이병한·신석초가 듀엣으로 애틋하게 부른 ‘박돌이와 갑순이’는 1930년 유성기음반으로 녹음된 굿거리장단의 민요다. ‘박돌이와 갑순이’ 노랫말 앞엔 “지금으로부터 한 육십 년 전, 경기도 여주 땅에는 박돌이란 총각과 갑순이란 처녀가 있었답디다”란 내레이션이 나온다. 지금으로 보면 일종의 랩 형식이다. 노래가 발표된 연도를 유성기가 한창 유행하던 1930년대로 봤을 때 1870년대 여주고을에 있었던 실화란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주군 관계자는 “가사대로라면 1870년대 여주고을에 이들이 살았다는 실화”라며, “여주군은 갑돌이와 갑순이 테마파크에 이어 마스코트 제작, 상징물 등록 등으로 관광 상품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갑돌이와 갑순이’ 노래 음과 가사는 원제인 ‘박돌이와 갑순이’와 큰 차이가 없다. 박돌이와 갑순이는 온돌야화다. 겨울 밤 따뜻한 온돌방에 둘러앉아 나누던 옛 이야기인 셈이다. 원음(O·S·T)을 통한 온돌야화(박돌이와 갑순이) 전문은 이렇다. (대사) 그 사기(史記)에 적혀 있는 일은 아니로되 지금으로부터 한 육십년 전 경기도 여주 땅에는 박돌이란 총각과 갑순이란 처녀가 있었답디다. 박돌이와 갑순이는 한 마을에 살았오 두 사람은 서로서로 사랑을 하였대요 그러나 그것은 마음속뿐이요 겉으로는 음~~~ 서로서로 모르는 척 하였오 그러는 중 갑순이는 시집을 갔다나요 시집가는 가마 속에 눈물이 흘렀대요 그러나 그것은 가마 속 일이요 겉으로는 음~~~ 아무런 일 없는 척 하였오 화가 나서 박돌이도 장가를 들었대요 그 날 밤에 서방님은 하늘 높이 웃었오 그러나 마음은 아프고 쓰리었오 겉으로는 음~~~ 그까짓 년 하여도 보았오 그 후에도 두 사람은 한결 같은 옛 생각 안타까운 상사념을 잊을 수는 없었오 그러나 그것은 마음속뿐이요 겉으로는 음~~~ 서로서로 모르는 척 하였오 가수 최숙자 씨, 김세레나와 취입 이 노래는 2012년 1월 6일 오전 2시(현지시간)에 미국에서 지병으로 별세한 가수 최숙자 씨가 김세레나와 함께 취입하기도 했다. 최 씨는 고혈압을 앓아오다 2011년 12월 25일 뇌졸중으로 입원했다. 자택이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새크라멘토시 병원에서 투병하다 71세의 나이로 숨졌다. 발인은 현지에서 1월 15일 오전 11시에 치러졌다. 남편(안승화 씨)과 1남 3녀를 남겼다. 고인은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까지 ‘눈물의 연평도’, ‘개나리 처녀’, ‘갑돌이와 갑순이’, ‘모녀기타’, ‘처녀 뱃사공’ 등을 히트시켰다. 고인은 1976년 가수 이미자 씨(71)의 도움으로 5년 만에 새 노래를 냈다. 이미자는 그 때 고인과 ‘수안보 여인’ ‘흑산도 아가씨’ 등을 듀엣으로 불렀다. 그러나 1977년 남편과 미국 이민을 떠나며 가수활동도 접었다. 그는 1988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녹화한 KBS 1TV ‘가요무대’ 등 방송프로그램에 가끔 출연했다. 이 노래를 부른 김세레나도 화제의 가수다. 먼저 이름이 특이하다. 어릴 적 받은 천주교 세례명(세레나)을 동아방송(DBS) ‘가요백일장’ 노래자랑에 장원(박재란 씨 노래 ‘강화도령’ ‘맹꽁이타령’을 불렀음)하고 난 뒤부터 쓰고 있다. 중·고교 때 연극, 무용, 고전발레를 섭렵했다. 학교예술제는 그의 독무대였고 서울 명동성당 성가대에서 솔로를 맡았다. 우리나라 가요사에서 국악을 현대음악에 맞춰 부른 1호 가수다. 김세레나는 ‘망언죄’에 걸려 하마터면 20살을 넘기기 전에 가수생활을 마감할 뻔 했던 적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시절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파티가 열렸다. 대통령 앞에서 구성지게 ‘떠나~가는 박 서~방’이란 멘트를 날려 소동이 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갑돌이와 갑순이’를 부른 뒤 “각하께서 좋아하시는 방랑시인 김삿갓을 부르겠습니다”하고, ‘떠나가는 박 서방’을 신바람 나게 불렀다. 순간 박 전 대통령은 허허허~ 하고 호탕하게 웃기만 했다. 다음날 정부에선 난리가 났다. 문화공보부 등 관계기관에서 “대통령 보고 떠나가라는 얘기냐, 망언이다”며 크게 문제 삼을 분위기였다. 박 전 대통령이 정권을 연장해 정치적으로 민감한 때로 별 뜻 없이 분위기를 띄운다는 게 그렇게 됐다. ‘떠나가는 박 서방 사건’은 문화공보부가 박 전 대통령이 아무 소리를 안 하고 웃기만 했고, 팬이라서 좋아하는 노래를 부른 것으로 오버할 것 없다고 판단해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김 씨는 지금까지 청와대에 가장 많이 초청된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다. 김 씨는 대통령 및 남자연예인 등과의 스캔들로 여러 번 방송출연정지를 당해 고초를 겪었다. 방송출연정지로 혼쭐이 난 그는 수면제로 자살을 꾀했지만 이후락 당시 대통령비서실장 도움으로 다시 방송출연을 하기도 했다. 같은 제목의 영화도 만들어져 ‘갑돌이와 갑순이’ 노래가 히트하자 같은 제목의 영화(97분짜리)가 만들어져 1972년 1월초 상영됐다. 김효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백일섭이 갑돌이, 한정은이 갑순이로 나온다. 갑돌은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춘보와 사는 처지로 진사댁 손녀인 갑순과는 둘도 없는 친구다. 갑돌과 갑순은 옷고름을 주고받은 뒤부터 좋아하고 있음을 느끼고 물레방앗간에서 사랑을 불태운다. 하지만 갑순은 윤진사댁 큰아들에게 시집가게 되고 갑돌은 이를 말없이 바라보고 둘의 사랑은 이뤄지지 않게 된다. 시간이 흐른 뒤 설을 쇠러온 갑순과 갑돌은 다시 만나 달아나기로 약속한다는 얘기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노래와 음반, 영화, 무용, 코미디에 이어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연극소재로도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