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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롱뇽과 버들치만의 청정계곡이 아닌

도시인의 心身을 품어주는 白石洞天 ‘백사실계곡’

  • 입력 2012.04.02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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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모든 것 들이 나의 오감을 신선하고 순수하게 만든다.
졸졸 흐르는 작은 물소리에도 청아함이 마음에 와 닿고
낙수에 애처롭게 떨고 있는 풀포기가 안쓰러워 발걸음이 멈춰지기도 한다.
봄의 따사로움을 느끼려는 듯 혀를 찔끔 내민 풀포기의 청순한 새싹에도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간혹 스치는 청아한 바람도 부드럽게 가슴에 스민다.
흐르는 물가에 걸터앉아 마른 나뭇잎 배를 띄우고 저 아래까지 온전히 흘러가기를
바라는 나의 애심에 순수함이 살아나고 있는 기쁨으로 가슴에 온기가 느껴진다.


[3L]굳이 배낭도 필요 없고 적당한 복장과 간편한 트레킹화 그리고 물 한 병과 가장먼저 소중하게 챙기는 사진기는 언제부터인가 일상의 반복되는 굴레 속에 삭막하게 메말라가는 내게 신선한 감성을 하나하나 일깨워주는 이슬방울과도 같은 소중한 도구이다. 경복궁역에서 5분 정도 걸어 사직공원에 토지의 신(社)과 곡식의 신(稷)에게 제사를 올리기 위해 태조 이성계가 세운 사직단(社稷團], 보물177호)과 율곡선생과 신사임당의 동상을 둘러보고 계단을 올라 단군성전(白岳殿)과 황학정(黃鶴亭)에 이른다,

모양새가 그리 화려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강토를 넘보려는 열강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활시위를 당기며 설움과 분노를 삼키던 고종황제의 한(恨)이 서린 의미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당시 고종황제가 노란 곤룡포를 입은 모습이 마치 학처럼 보인다 해서 황학(黃鶴)정으로 정했다 하고 현제 이곳엔 조선시대 무사들의 궁술 연습장으로 유명했던 사정(射亭)터 이었다는 주춧돌이 등과정(登科亭)이라 남아있다.

3월이란 겨울도 봄도 아닌 참으로 어중간한 계절임엔 분명하다.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도, 복장도 그러하고 자연의 색깔들도 이도저도 아닌 그저 벌거벗고 건조한 생동감 없는 그저 그런 색깔뿐이다. 조용하고 한적한 인왕스카이웨이“길을 따라 작은 오솔길로 접어든다. 잘 조성된 우레탄 길을 버리고 약간의 높낮이가 있는 숲의 흙길로 접어들었다.

숲길로 아기자기 펼쳐지는 좁은 흙길의 나무들 사이사이로 서울도심의 알만한 고층 건물과
남산 서울타워의 모습이 지척에 보인다. 산 지형이 70%라는 우리나라의 좋은 점은 언제 어디서라도 숲이 그리우면 짧은 시간에 도달하여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청년시절 일본의 산악회와 1년마다 서로 가고오고 하며 교류관계를 다질 때 그들이 제일 부러워하는 것이 우리 북한산의 인수봉과 선인봉 이었다.

서울도심에서 불과 한 시간 남짓 거리에 이렇게 훌륭한 화강암석질의 다양한 루트를 지닌 암벽등반을 즐길 수 있는 거대한 암봉이 있다는 것을 부러워하며 농담으로 후지산과 맞바꾸자고 하던 기억이 난다. 또한 동두천 미군부대에 복무하며 주말마다 선인봉에 나타나 암벽등반을 즐기던 “죤” 이라는 군인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자신들의 나라에는 이렇게 도심 근거리에 이런 천혜의 환경은 없다며 부러워했었다. 이런 환경이면 분명 세계에 명성을 떨칠 한국의 산악인들이 조만간 탄생할 것이라고 예견했던 그들의 심미안이 고상돈, 박영석, 엄홍길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훌륭하게 각인된 산악인들을 탄생된 것을 보아도 환경적 자원의 소중함을 알 수 있기도 하다.

숲길을 흥얼거리며 걷다가 서울도심이 탁 트이게 보이면 널찍한 바위에 앉아 따사로운 태양의 기운을 받기도하며 여유롭게 걸으니 작년 5월인가 이곳에 왔을 때는 햇빛을 볼 수 없을 만큼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었고 살랑살랑 봄바람에 함박눈 내리듯 팥배나무의 하얀 꽃잎이 날리는 흔들다리를 건너며 상큼한 아카시아 향기에도 흠뻑 취했던 생각이 난다. 찻길 옆을 따라 걷는 것보다 자락숲길을 걸으며 이 깊은 계곡의 출렁다리를 지나며 노송의 향긋한 솔잎의 은은한 향기를 느끼며 걷는 것이 백미의 코스이기도 하다.

한 시간쯤 걸으니 '윤동주 시인이 아래 하숙집에 머물던 시절 이곳을 산책하며 시상을 떠올렸다 던 곳으로 언덕 한편에는 학창시절 누구라도 외어봤을 그 유명한 “서시”의 시비에 새겨진 글귀가 가슴 깊이 스민다. 문득 누구에겐가 들었던 재미있는 일화가 생각난다.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 윤동주시인은 이 언덕아래서 하숙을 하고 있었고 지금은 대형빌라를 짓는다며 무참하게도 헐어버려 현재는 집터만 존재하고 있는 소설가 빙허(憑虛) 현진건도 이 동네에 살면서 양계장을 했었는데 워낙 술을 좋아해서 매일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 마다 술안주로 닭을 잡아먹는 바람에 양계장이 아니라 그만 망해버려 양계장이라기보다 그냥 술안주를 키웠다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바로 아래는 성곽으로 이어지는 창의문(彰義門)이 보이고 북악산 정상까지 가파른 성곽 계단 길로 이어진다. 조선 시대 실학자인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 기록되어있는 성곽의 축성 이야기는 태조가 새 도읍지인 한양에 내사산의 외성(外城)을 축성하려 할 때 경계를 정하지 못하고 고심하던 중 큰 눈이 내렸는데 며칠이 지나 기온이 풀렸음에도 북악산부터 낙산과 남산, 인왕산으로 연결되는 능선을 따라 안쪽만 쌓였던 눈이 녹고, 바깥쪽은 그대로 있었다한다. 이를 본 정도전이 태조에게 알려 눈이 녹은 경계를 따라 성벽을 쌓았고, '눈 울타리'라는 뜻의 '설(雪)울'로부터 '서울'이라는 지명이 나왔다고 한다.

북문(北門) 또는 자하문(紫霞門)으로 불리기도 하는 창의문(彰義門) 왼쪽 언덕길부터 도시형 전원마을 이라고도 부르는 부암동의 시작으로 조선 시대부터 양반과 왕족들이 즐겨 찾던 경승지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도 그럴 듯이 느껴지는 것은 왠지 모르게 코끝을 스치는 공기가 청아하게 느껴지며 가슴이 탁 트인다. 지형 상 옛날에는 수려한 경관이었을 것이라 느껴지기도 한다.

[1L]숨찰 듯 말 듯 이어지는 언덕길을 걸으며 아기자기한 주택과 카페들을 구경하며 오르다보니 예전 하와이 여행 중에 주택가의 멋스러운 대문들이 너무 아름다워 반나절이나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사진기에 담던 기억이 새롭다, 제법 부임동의 대문들도 작지만 아기자기하게 개성 있는 멋스러움이 있었다. 아직은 메마른 줄기만 담벼락에 겨우 붙어 생명을 부지하는 담쟁이지만 따사로운 봄 햇살에 움틀 준비를 하고 있다. 언덕을 오르는 내내 전봇대 밑둥치마다 멋스럽게 표현한 카페의 일러스트가 눈길을 이끈다. 언덕에 거의 다다를 즈음에 아기지기하게 꾸며진 카페가 나타난다. 드라마에 나왔다는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2L]대문을 장식한 엿장수 가새(가위)와 노란색의 딱정벌레 차, 그리고 몇 개의 석상들, 뭔가 시대적이나 문화적으로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나름대로 보는 이로 하여금 오래되었다는 이유하나 만으로 추억의 감성을 이끌어 내는데 그중에도 유독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기억에서 멀어진 빛바랜 빨간 우체통!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내 젊은 시절 기억 속엔 설렘과 기다림 이었다, 그리고 그리움이기도 했었다.

우표가 떨어져 되돌아올 염려로 혀를 내밀고 침을 골고루 발라 손바닥으로 몇 번을 다독이던 아련한 추억들이 가슴 밀려와 빨간 우체통을 한참 바라보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우체통에 넣어 본 편지가 언제쯤인지 애써 기억을 더듬어도 알 수가 없다, 무엇 때문인지 참으로 오랜 세월동안 무디고 무딘 삶을 살아온 것 같다. 오늘 돌아가서 누구에게라도 편지를 쓰리라, 그리고 빨간 우체통을 찾아 설렘과 기다림을 느껴보리라 생각했지만 이내 추억에서 현실로 돌아와 웃음이 나온다. 분명 누군가가 내 편지를 받고나서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로 또는 페이스 북을 통해 너 돌았냐!? 하고 이 시대에 맞는 답장이 올 것 같은 확신 때문에……. 그 작은 빛바랜 우체통 하나가 짧은 순간이었지만 내게 훈훈한 기억의 감성을 되살려준 것에 감사하며 백사실계곡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부암동의 멋스러움에 백사실계곡이 알려 진건지 청정지역 백사실로 인해 부암동이 알려진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짐작컨대 후자인 듯- 서울 중심에서 약간 벗어난 곳이지만 도롱뇽·맹꽁이·버들치 등 멸종 위기 동물들이 서식한다는 청정지역으로 옛 부터 이곳을 백석동천(白石洞天)이라 하여 백석은 백악(북악산)을 뜻하고 “동천”은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또한 중기의 명재상 백사(白沙) 이항복선생 별장이 있던 곳으로 연못과 육각정의 초석이 아직 남아있다. 작년 여름에 이곳에 왔을 때는 고목나무의 수려함과 푸른 하늘이 연못에 투영되어 그 연못 속에 신비로운 또 다른 세상을 보았었다. 이곳을 걷는 동안 마치 도심을 멀리 떠나 깊은 산속을 걷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조용하고 마음이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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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자락길을 거쳐 부암동과 백사실계곡~
굳이 등산화도 필요 없다, 특별한 복장도 필요 없다. 특별이 주말이 아니라도 아니 주말보다 더 조용하고 평화로운 평일의 자투리 시간2~3시간 정도면 도시의 일상에서 쌓여지는 혼란스러움 마음을 정재 시킬 수 있는 그런 곳이다. 가장 간편하게 가장 부담 없이 언제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거리에 시와 낭만과 빈티지의 멋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이국적인 멋을 느낄 수도 있고 그 조용함과 차분함의 길을 여유롭게 걸으며 자신의 내면을 통찰해볼 수 있는 그런 곳이다.

* 지하철3호선 경복궁역1번 출구~사직공원~황학정~윤동주시인 언덕~창의문~부암동~
백사실계곡~상명여대~경복궁역(약 3시간~4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