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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파노라마, 화절령

  • 입력 2012.06.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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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역광의 광채에마주 바라볼 수 없을 만큼 환상의 파노라마로 화절령은 빛나고 있었다,발버둥치는 모습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하고 생을 위한 그 작은 몸부림이 숭고하게 느껴진다. 키 크고 잘난 나무처럼 태양의 혜택을 듬뿍 받는 나무는 아닐지라도, 비록 멋진 이름에 가리여진 이름 없는 들꽃일지라도, 아름다운 자태와 진한 향기로 유혹하진 못하고 약초로도 쓰이지 못할지라도, 생을 이어가는 끈질긴 투혼이 더욱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보이는 이유다.[3L]새벽2시 요즘 꽤나 재미난 복고풍의 TV연속극을 보고 바로 잠을 청하려했지만 이런저런 생각에 속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내 못된 병이 도지고 말았다.잠도 안 오는데… 벌떡 일어나 차를 몰고 집에서 가까운 하남IC를 빠져나와 어둠의 끝을 향해 질주한다. 무작정 달리다보면 현재의 불만족이 2차적 행위의 충족에 의해 어떠한 형태로든 만족으로 전환된다는 것은 이제껏 수없이 반복되면서 단 한 번도 어긋남이 없이 경험적 사고에서 얻어지는 기대치가 아닌가?!속도를 가로막는 저항에 차에 내려앉은 안개는 양옆으로 퍼져 결국에는 어둠속의 허공으로 날려지는허무의 반복을 무심히 바라보며 곤지암을 지날 때 쯤 내가 아는 사진가가 살고 있는 평창을 갈까? 미리 예정하고 떠나온 듯 무의식 속에서도 풍경이 좋은 평화로운 곳, 그리고 숲이 있는 곳으로 이미 마음이 정해진 듯 우주를 향해 달리는 은하철도 999처럼 한층 더 탄력을 가속을 더해 밤공기를 가른다. 어느덧 쉼 없이 달려 치악휴게소를 지날 때 쯤 마음이 바뀐다. 평창의 지인에게 향하려던 마음이 나 홀로가 더 좋을듯하여 문득 떠오른 곳이 태백 정선의 화절령 하늘길, 그래! 불쑥 이른 새벽 찾아가 부산떨고 돌아오는 것 보담 그동안 이런저런 일로 복잡했던 마음이나 길에 떨 구고 오는 것이……새벽5시경 정선 카지노호텔 폭포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하늘길 트레킹의 시작이다.아직은 어둑어둑하지만 포장길을 따라 약 2km남짓 화절령 3거리까지 고도가 높고 비탈길이지만 걸어 오르는 데는 무리가 없다.새벽 정적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이 나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고요와 평화의 길을 걷다보면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세상 돌아가는 틈바구니에 나를 곧아 세우기 위한 몸부림에 풀 수 없는 실타래 같던 정신과 육체의 모든 것이 평화와 안도로 바뀌고 지혜의 현명함이 자신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 좋을 따름이다. [1L]프랑스의 작가 다비드 르 브르통(David Le Breton)의 걷기예찬의 한귀절중 에“걷는다는 것은 자신을 세계 속으로 여는 것이고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으며 걸으며 사물에 대한 상대성의 감각을 전재로 하고 결코 서두르지 않고 시간을 즐긴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의 의미를 깨우치는 데는 그리 오랜 경험과 시간이 필요치 않을 만큼 쉽게 다가왔고 쉽게 가슴에 스며들었다. 화절령 하늘길로 이어지는 3거리의 풍광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예전의 사북탄광지역인 만큼 석탄 덩어리들이 즐비한 산등성이며 개발한다고 온통 파 해쳐 놓고 건설회사가 망해버린 듯 버려진 자재들이 썩어가며 이 좋은 산의 숲들을 망쳐가고 있다.산길의 새벽트레킹의 묘미는 높은 고도에서 보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맑게 빛나는 별빛과 내 마음을 담으려는 듯한 둥근달, 그것을 볼 수 있다는 것으로도 기쁘고 가슴 벅찬 고요와 평화의 시간이며 오직 나만의 시간이다, 종종 마른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는 바람소리와 이따금 한 점 거슬림이라고 없는 이른 새벽부터 제각기 다른 소리로 지저귀는 새소리의 신선함과 청아함은 긴 새벽을 달려온 피곤함을 지울 만큼 가슴에 기쁨을 더 하기도 한다. 정선 읍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다 달아 평소 몸에 밴 습관대로 아직은 시린 새벽 공기를 온몸을 동원해 가장 많은 양을 내 안에 받아드리고 내 쉬기를 반복하다보면 머리는 물론 온 몸과 마음이 절로 맑아진다.오르는 길에 가끔 뒤돌아보니 지나온 산기슭에서 푸르게 시린 새벽의 여명과 함께 골짜기를 따라 올라오는 안개가 기막힌 파노라마를 그려낸다. 숲길의 이정표가 또렷하게 보이지 안치만 도롱이 연못으로 표시된 이정표를 따라 키가 큰 삼나무 숲의 왼쪽으로 우거진 오솔길 숲길로 따라 들어선다. 높은 나무에서 툭툭 떨어지며 모자의 챙을 노크하는 이슬방울들, 바짓가랑이를 적시는 이슬방울에 정겨움을 느끼며 조금 걸으니 숲속에 어디서 흘러 들어오고 어디로 흘러 나가는 것을 알 수도 없는 그리 크지 않은 연못에는 쓰러진 고목들이 물위에 떠있고 아직 어둠 탓 인지주변엔 무서움을 느낄 만큼 검게 보이는 이름 모를 풀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2L]도롱이 연못이라는 이 연못은 1970년대 탄광갱도가 지반침하로 인해 생긴 생태연못으로 화절령 일대에서 살고 있던 광부의 여인네들이 연못에 살고 있던 도롱뇽에게 남편의 출퇴근을 무사 기원했다고 한다. 연못에 도롱뇽이 생존하는 한 탄광사고가 안 일어다고 믿어 항상 도롱뇽의 서식 상태의 관찰과 남편 무사고를 기원할 때 도롱뇽이 보이면 무사의 징조로 안심하였다는 글을 읽으며 예전에 수시로 귀가 따갑게 들었던 탄광 매몰 사고들이 기억난다. 1985년에 이곳 사북탄광에서 갱도붕괴로 10명이 매몰 된지 45시간 만에 전원이 구조돼 온 국민이 환호했던 기억과 무너진 지하갱도에서 무려15일 만에 구출된 광부 양창선(당시 36세)씨는 탄광의 실태를 온 국민에게 알리는데 큰 몫을 하여 그 덕에 산전수전 다 겪고도 살기 힘들 때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위험하기 그지없는 탄광으로 “막장인생” 이라 용어를 그 때서야 제대로 알았다.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마음의 평온과 위안을 얻기 위해 사람보다 못한 미물의 도롱뇽에게 안위를 기원하고 빌어야 할 만큼 절박하고 암울했던 그들의 삶에 숙연해 질 수밖에 없는 기분으로 도롱뇽 쉼터에 앉아 마음을 가다듬고 조금 아래에 위치한 다롱이 연못도 둘러보고 올라와 하늘길을 향했다.어느덧 산등성이를 향해 찬란한 햇살을 나뭇가지 사이로 비추어 화절령의 생명들에게 색깔의 옷을 화사하게 입히고 있다. 태양이 비추일 땐 뜻하지 않게 만나는 한 귀퉁이에 햇살이 미치지 않는 구석지고 열약하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명들의 움틈이 있다. 그것을 발견하는 순간이 어쩌면 내겐 가장 순수해지고 엄숙함마저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며 새벽을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 같은 한줄기의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몸부림치는 듯한 풀포기가 눈에 들어왔다.저 발버둥치는 모습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하고 생을 위한 그 작은 몸부림이 숭고하게 느껴진다. 키 크고 잘난 나무처럼 태양의 혜택을 듬뿍 받는 나무는 아닐지라도, 비록 멋진 이름에 가리여진 이름 없는 들꽃일지라도, 아름다운 자태와 진한 향기로 유혹하진 못하고 약초로도 쓰이지 못할지라도, 그늘진 척박함과 바위의 틈새의 메마름의 거친 환경에서도 생을 이어가는 끈질긴 투혼이 더욱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보이는 이유다. [4L]지금쯤 들꽃들이 만개 했겠다 생각하며 찾은 화절령의 봄은 유난히 더뎌 5월이 이미 훌쩍 넘어선 아직까지도 겨울의 그림자가 있다, 외로운 앙상한 가지들만 을씨년스러운 새벽 화절령 하늘길을 지키고 있다, 얼마나 혹독하게 추운 겨울을 맞았기에 아직도 못 깨어나는가? 아마도 윤달에는 귀신들이 활동을 하지 않아 조상의 음덕을 받지 못해서 일까? 그도 아닌 듯싶은 것이 국도를 달려올 때 비록 분간할 수없는 어둠이었지만 우거진 숲에 희끗희끗한 것을 보며 아카시아 향기를 맡기 위해 창문을 내리고 그 상큼함에 취했었다. 해발 1100여 미터 지점의 백운산(1426m) 정상으로 오르는 길의 갈림길에서 낙엽송 길을 향한다. 화창한 햇살을 나무사이로 받으며 길게 뻗은 삼나무 길에 걸음은 자꾸 느려진다. 들풀과 꽃들, 햇살의 기운을 받은 아주 작은 생명들이 예쁜 얼굴을 들고 화사한 미소를 건네고 있으니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무엇 하나 무관심하게 지나칠 수 없을 만큼 영롱한 이슬을 머금고 반짝이는 미소엔 내 첫사랑 미소만큼이나 아름답게 보이고 일심동체가 되어버린 내 사진기마저도 흠뻑 홀려버려 연신 흥분의 셔터소리가 이어지고 있다.화절령(해발 960m)은 정선 고한과 영월의 상동을 잇는 운탄길 중간에 있다. 화절령에는 진달래가 유독 많다고 했지만 5월 중순인 아직도 만개를 하지 못한다. 아낙들이 이곳에서 진달래꽃을 꺾어 화전을 부쳐 먹었단다. 그래서 '꽃을 꺾는다'는 의미의 '꽃 꺾기재'가 되었고 이를 한자로 '화절'이 됐다고 하는데 그 봄꽃들이 지금 사보타주라도 하듯 유달리 더디 필 것만 같다. 산등성이를 돌아서는 순간 아~ 무의식에서 터져버린 탄성! 찬란한 역광의 광채에 마주 바라볼 수 없을 만큼 환상의 파노라마로 화절령은 빛나고 있었다, 움트는 강아지풀도, 이슬 먹은 이름 모를 새싹도, 소나무 잎도, 심지어 길에 깔린 검은 석탄돌덩이들 마저도 무엇 하나 뒤지지 않으려는 듯 빛나고 있다. 한참을 넋을 잃고 매료되었다가 사진기에 담아보려 애를 쓰지만 불행이도 나는 담아낼 능력이 없다. 아니 능력이 있다한들 담고 싶지 아니하기도 하다, 때론 자연의 능력이 변화무쌍하게 펼쳐내는 아름다움에 취해 사진을 담아서 후에 펼쳐 볼 때 가끔은 내 기억 속에 담겨진 그 생생함이 아닌 실망스런 모습으로 보여 지기보다는 마음에서 그려지는 영상이 더 좋은 것만은 사실이니 말이다. [5L]나는 가능한 한 괜찮은 숲길 트레킹을 나설 땐 항상 코스의 방향을 살핀다.항상 태양을 마주보는 역광 방향으로 걷기를 좋아한다, 코스에 따라 걷는 시간도 오전이냐 오후냐를 가늠해 보기도 한다. 모든 이들은 강한 자외선으로 얼굴이 탄다고 등지고 걷는 것을 선호하지만 나는 햇살에 투시되는 싱싱한 초록의 나뭇잎이 좋다, 모든 나무 잎들이 콘트라스트가 강하게 대비되는 싱싱함이 좋고 역광에서 비추이는 녹색에너지의 기운이 내게 활력과 의욕의 생성시키는 것 같은 느낌을 너무 좋아한다. 후광으로 비추이는 숲은 그저 무덤덤한 녹색 일뿐 싱싱함도 생명이 없는 그런 것이다. 하늘로 통할 듯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로 시야가 탁 트인다.전망대에 올라 먼 산야를 내려다보니 높은 곳에서 탁 트인 시야로 바라보는 겹겹이 둘러있는 고산준봉의 자태도 장관인데 낮은 산기슭에만 봄의 푸르름이 약간 있을 뿐이어서 아쉬움으로 남는다. 숲속에 들꽃들을 살펴보며 정상에서 돌아내려오는 하산 길엔 오르는 길과는 달리 생명의 찬란함도 푸르름도 없다, 지형 상 포근하게 감싸지 않아 겨울 찬바람에 엄청나게 혹독한 시간들을 보냈는지 짐작하리만큼 봄이 쉽사리 오지 않을 것만 같다.길목마다 너저분하게 주렁주렁 나뭇가지에 감겨진 리본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제거한다.헷갈릴 길도 아닌 뻔 한길을 가는데도 왜 이런 것들을 매달아 놓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더 더욱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썩지도 않는 비닐이나 플라스틱에 단체 이름을 인쇄하여 철사로 매달아 놓은 행위들이 참으로 씁쓸하다, 꼭 필요하다면 선두가 걸고 최종진행자가 걷어주는 사려있는 실천이 옳지 않을까 생각해본다.도착지인 하나원 골프장이 다다른 것으로 정선의 화절령 하늘길 트레킹 도보를 마무리 한다. 이곳 리조트 현관에서 매시간 간격으로 출발지인 카지노호텔 폭포주차장까지 셔틀버스가 운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