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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와 필리스의 보복사건

필리스의 보복은 동의폭행이기에 무죄

  • 입력 2012.09.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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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기원전 384년 전의(典醫)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의 관습은 의사의 가문은 의학 및 해부의 기술을 그들의 자손에게 계속 교육시켰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과 과학일반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그의 어린 시절부터 이미 싹이 터있었다.  기원전 4세기의 철학에서는 과학전체를 아울렀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이해하고 통합하며 조직화하여 나름대로의 철학을 완성하여 그는 눈부실 정도의 학문적 성공을 이루어내 크게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자 마케도니아 왕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자기 아들인 왕자(후에 알렉산더 대왕이 된)를 가르쳐줄 것을 부탁하여 가정교사로 일하게 되어 결국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Alexander)대왕의 스승이 되었던 것이다.



[1L]그림 1. 리벤스 작 ‘알렉산더 왕자와 그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 (1631) 게티 센터이러한 관계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화가 리벤스(Jan Lievens 1607?1674)는 ‘알렉산더 왕자와 그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1631)’라는 작품으로 노 철학자가 어린 왕자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것을 평범하게 표현한 것이 있다. 그런데 스승은 제자가 너무 지나치게 여인에 빠져 학문을 소홀히 하는 것을 알게 되어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여색에 빠지면 정신건강에 해가 되어 남자답지 못하게 되며 학업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하고 여인과의 관계를 삼가라고 했다. 이것으로 보아 알렉산더 왕자가 절세의 미인 필리스(Phyllis)라는 고급접대부(헤타이라,hetaira)를 지나칠 정도로 사랑했던 모양이다.



 



여자를 멀리하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당연히 필리스의 귀에는 곱게 들릴 수 없었다. 앙심을 품은 필리스는 자신과 대왕을 떼어놓으려는 철학자에게 복수를 다짐하고, 그 빼어난 자태와 교태로 이 노(老) 철학자를 유혹하기 시작하였다. 뜨거운 육체로 무장한 사랑의 공세가 과연 차가운 이성으로 무장된 철학자를 정복할 수 있을까 하였는데 승부는 이외로 빨았다. 제자에게는 여자를 멀리하라고 가르쳤던 대철학자가 스스로는 사랑에 눈이 멀어 여인의 노예가 되어 버린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의 부탁을 받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체면을 내던지고 기꺼이 그녀의 소원대로 그녀를 태우는 말이 되어 주었다. 이로써 필리스의 복수는 멋지게 성공했던 것이다. 하지만 필리스의 복수는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고 교묘한 계략으로 알렉산더 왕자가 이 장면을 엿보도록 손을 써 놓았다. 자신에게 여자를 멀리하라고 가르쳤던 점잖은 스승이 여자의 노예가 되어 네발로 땅을 기는 모습을 보게 하면 왕자의 마음은 돌아설 것으로 기대하였다. 하지만 그로써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를 골탕 먹이는 데에는 성공하였을지라도 알렉산더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는 철학의 대명사로 통하던 스승의 이성마저도 한 여인네의 공세 앞에 무참히 무너지는 것을 보고, 오히려 ‘여자는 위험하다’라는 스승의 가르침이 정말 옳다는 것을 생생하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 후 알렉산더는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필리스를 완전히 멀리했고 스승을 더욱 종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정말로 이런 일이 있었던 역사적 실화가 아니다.



이 전설을 추적해 올라가면, 13세기 프랑스의 ‘앙리 당들리’라는 작가가 남존여비의 제창자이며 철저한 남성우월론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詩)를 기초해서 꾸며 낸 이야기라고 한다. 그렇다면 중세의 작가가 왜 존재하지도 않았던 사실을 꾸며냈는가 하면 당시 사회의 성적인 풍기가 하도 문란하니 도덕적인 경고로 ‘여자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만들어 진 이야기라는 것이다. 여자를 경계하며 그 앞에서 금욕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철저히 중세적이다. 고대인들은 여자의 유혹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중세인들 만큼 금욕적이지도 않았다고 전해진다.



[2L]그림 2. 한스 발동 작: ‘아리스토텔레스와 필리스’ (1513) 목판화, 베를린 시립미술관
작가 ‘잉리 당들리’가 처음 저술한 ‘아리스토텔레스와 필리스’의 전설 이야기는 그 후 화가 한스 발둥 그리엔(Hans Baldung Grien 1484-1545)이 ‘아리스토텔레스와 필리스’ (1513)라는 목판화를 작성하여 더 유명해 졌다. 성(城) 안 정원에서 벌거벗은 필리스가 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등에 올라타 채찍으로 엉덩이를 때려 앞으로 몰고 있고, 말처럼 네 발로 기어가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굴한 눈빛으로 위에 있는 여자를 바라보고 있는데, 성 안 담장에는 젊은 남자가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젊은 남자는 알렉산더를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세는 지성과 이성이 육체의 쾌락에 의해 배반되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이 지경이 되였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이 보인다.



[3L]그림 3. 사델러 작: '아리스토텔레스와 필리스‘ (1587-1593) 목판화, 몬트릴미술관
이 제목의 작품은 중세의 여러 화가들에 의해 폭발적으로 많이 만들어졌는데 그 중 플렌더스 파 화가 사델러 (Jan Sadeler I 1550-1600)의 '아리스토텔레스와 필리스‘ (1587-1593)라는 목판화는 한스 발둥의 것보다도 더욱 가혹하게 필리스가 아리스토텔레스를 말 타기로 다루어 지칠 대로 지쳐서 그 이상 더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채찍으로 내려치는 작품을 만들었다.
화가들이 이렇게 회화보다 목판화 형태로 제작하였던 것은 목판제작의 경우 그림의 대량 제작이 가능하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당시 이 제재가 대중들에게 얼마나 많이 인기 있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상태를 법적으로 해석해 보면 필리스는 철학자의 동의를 얻어서, 아니 본인이 원해서의 말 타기이며 채찍질이라는 폭행을 했기 때문에 동의폭행, 동의상해에 해당되기 때문에 무죄가 되는 것이다. 



[4L]그림 4. 작가불명: '아리스토텔레스와 필리스‘ (1400년경) 아쿠아마닐(aquamanile)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그런가 하면 프랑스의 한 조각가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필리스‘(1400년경)라는 제목으로의 아쿠아마닐(aquamanile)이라는 아가리가 넓은 물 항아리를 만들었다. 이것은 교회에서 사제가 미사거행 시에 손을 씻는 성수반(聖水盤)으로 쓰이기도 하였다는 것인데 이 전설이 이렇게 여러 종류의 예술작품을 통해 알려지게 된 이면에는 미모를 지닌 여성 앞에 한 없이 무력한 남성의 본성을 적나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즉 지성은 육체에 의해 배반당할 수 있으며, 이성(理性)과 욕망은 열정에 의해 마비 되여 쾌락에 빠지게 되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위대한 철학자를 통해 전하였기 때문에 이 이야기와 작품은 마치 불처럼 빠르게 번져나갔던 것이다.



전설로 전해지는 바와 같이 여성의 열등함을 앞장서 주장하였기 때문에 그 대가로 망신을 당한 전설의 주인공이 된 대철학자 본연의 명예를 회복시킨 작품도 있다.



[5L]그림 5. 렘브란트 작: ‘아리스토텔레스’ (1653)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그것은 바로크의 거장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 69) 가 그린 ‘아리스토텔레스’ (1653)라는 작품에서 볼 수 있다. 이작품은 그리스의 대문호이며 서사시의 창시자로 지성과 윤리의 표상인 호메로스와 그리스의 대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나게 한 그림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착용하고 있는 커다란 금체인은 알렉산더 대왕이 선물한 것으로 그 체인에는 대왕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메달이 붙어있어 필리스와의 전설을 부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철학자는 제자로부터 많은 재물을 넘겨받아 부와 명예를 지녔는데 호메로스는 가난에 허덕이며 저녁파티에서 하프연주로 번 푼돈으로 생활하면서도 그리스 전 지역을 떠돌아다니면서 그는 자기의 재능에 충실하여 그렇게 큰 업적을 남긴 것에 대한 감탄과 존경을 지나 동정의 서글픔마저 떠올라 그의 눈은 아쉬움으로 가득 차 가슴 아픔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호메로스의 흉상 머리위에 손을 연고 그의 정신적인 유산을 묵상하는 엄숙한 장면으로 이 그림의 아리스토텔레스는 보면 볼수록 엄숙하고 존경의 마음이 우러나게 꿈 표현 되였는데 특히 호메로스의 흉상을 바라보다 못해 손이 자연히 그의 머리위로 올라가게 표현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동에 감동을 자아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