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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강 위를 수놓은 아름다운 ‘나무서리’

타임머신을 타고 환상의 세계로
시간여행을 온 것 같은 몽환적인 착각에
빠져들고 만다.

  • 입력 2013.01.07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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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L]시리도록 눈부신 상고대가 아름답고 모락모락 절정으로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저 멀리 아스라하게 보이는 인간세상의 아파트 군상들을 마치 천상의 세상에 새하얀 천사들만이 모여 사는 모습으로 바꿔놓은 황홀한 순간의 파노라마를 펼쳐주고 있다.

올해의 12월은 불황의 그늘이 깊게 깔린 속에서도 최초의 단일후보 경쟁으로 인한 광풍이 한여름 열기만큼이나 후끈했다. 언제나 그렇듯 국민들은 알지도 알 수도 없는 일들을 들춰내 어김없이 벌어지는 네거티브 전쟁이 추운 날씨만큼이나 가슴을 아리게 한다.

며칠 전인가 새벽 신문을 주어들고 읽던 중 한 시인의 이름이 번쩍 들어온다. 다름 아닌 책꽂이에 꼽혀있는 그분의 시집이 아직 따끈한 온기를 머금은 채로 있기 때문일까? 허나 불행히도 신문을 읽은 후 그 시집을 박박 찢어 쓰레기통에 처박고 말았다. 정치가 뭐 길래 사람을 이렇게 변하게 하는가? 가슴 따뜻하게 읽은 감동이 채 가시지 않았는데 그분이 정치판에 뛰어들어 뒷골목 껄렁패들이나 사용하는 육두문자의 욕지걸이를 상대방의 선거 캠프에 몸담고 있는 선배 시인에게 해댔다고 한다.

마음을 깨끗하고 맑게 정화시켜줄 하얗게 눈꽃이 피어있는 호반이 그리워 춘천을 향해 새벽길을 달린다. 환상의 은빛세상을 만나려면 웬만큼 부지런 떨지 않으면 만날 수가 없다. 다행이도 젊은 시절부터 새벽잠이 없는지라 평소의 습관대로 일어나 소양호의 멋진 서리꽃 세상을 머릿속에 그리며 한 시간 남짓 달려오는 것이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다.

삼박자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운칠기삼(運七技三)의

횡재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표현일까?

새벽 6쯤 도착한 소양호는 아직은 어둠이 가시지 않아 여명을 기다리는 동안 선지해장국으로 몸에 온기를 충전한다. 짙은 안개로 여명이 꽤나 더디게 느껴진다, 기다리는 동안 멋진 상고대를 볼 수 있기를 마음으로 간절히 기대한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요즘 강추위에 며칠 계속 되었고 오늘 추위정도면 충분히 상고대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안심을 시키며 춘천시에서 가장 상고대를 보기 좋은 곳은 동면 소양3교와 소양5교 부근이라고도 귀띔을 해준다.

해장국의 따스함이 온몸에 퍼질 무렵 식당 창밖의 모습들이 형체를 알아볼 수 있을 즈음에 달리기 선수가 스타트라인에서 튕겨나가듯 문을 밀치고 나선다. 소양호의 둑에 올라서니 수면 위로 짙은 물안개가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광경이 가히 장관이다. 강가에 앙상했던 가지들이 온몸을 눈꽃 옷을 입은 아름답게 드러내는 모습들을 마치 장막이 걷히면서 새로운 신천지가 나타나는 것 같은 착각으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와우~ 분명 오늘은 상고대가 멋지게 피는 춘천호의 방류의 시작, 그리고 영하 15도 이하로대기 중 습도와 물의 온도 등이 잘 맞아떨어진 혹한과 바람, 그리고 나, 세 가지 조건이 절묘하게 삼위일체(三位一體)가된 바로 오늘이 아닌가? 이 삼박자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운칠기삼(運七技三)의 횡재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표현일까?

물안개 사이로 보이는 다리의 교각 모습은 신비의 세계로 향하는 천상으로 가기 위한 다리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강가엔 상고대가 풍성하게 핀 버드나무는 바람결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시리듯 하얗게 피어있다. 안개가 잔뜩 끼어 날은 흐렸음에도 눈앞에 펼쳐지는 상고대의 아름다움을 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흔히 보기 힘든 것이었고, 서리꽃은 그 무엇에 비할 수 없는 긴 겨울 중에서도 흔치않은 아름다움이다. 그 풍경은 구름위에 신천지의 모습처럼 신비롭기만 하다.

풍광에 홀려 사진기를 열심히 담고 하는 동안 귀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 애린통증으로 혹한의 날씨를 실감한다. 볼은 감각을 잃은 지 오래고 콧물이 연신 흐르는 매서운 추위에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부랴부랴 차량으로 돌아와 히터를 올리고 시린 손을 궁둥이에 깔고 추위를 녹이지만 이 설화 세상을 보는 복스러움에 기분만은 물안개 위에 떠 있는 듯 행복하다.

[2L]대한민국의 요정 김연아가 은반위에서 멋진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 회전을 위해

솟구치는 것 같은 아름다움을 연상케 한다.

소양강이 흘러내려오는 길목이라는 철새전망대로 향했다. 소양강댐이 건설된 후 작은 언덕들이 물에 묻힌 섬이 되어 오늘같이 날씨가 추워지면 환상적인 상고대가 만발을 하는 곳이라고 식당 주인이 귀 뜸을 해준 곳이다.

와~ 호수위에 있는 섬나라의 작은 나뭇가지들에 피어있는 시리도록 눈부신 상고대가 아름답고 모락모락 절정으로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저 멀리 아스라하게 보이는 인간세상의 아파트 군상들을 마치 천상의 세상에 새하얀 천사들만이 모여 사는 모습으로 바꿔놓은 황홀한 순간의 파노라마를 펼쳐주고 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환상의 세계로 시간여행을 온 것 같은 몽환적인 착각에 빠져들고 만다. 그 황홀에 취한지 얼마 안 되어 현실로 돌아온 것은 혹한에 맡겨진 얼떨떨한 몸뚱이의 말초 신경의 무감 탓인지 카메라 렌즈를 깨먹고 나서야 내가 서있는 현실을 알 만큼 경이로운 풍광 이였다.

자리를 옮기는 순간 그 몽환의 세계에서 철새 한 마리가 하얗게 펼쳐진 설화와 물안개 사이로 날아오르는 것을 보며 대한민국의 요정 김연아가 은반위에서 멋진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 회전을 위해 솟구치는 것 같은 아름다움을 연상케 한다.

신숭겸 장군의 충절과 기개를 말하듯이 이곳 분위기를 더욱 고즈넉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의암호로 내려오는 길에 금강송이 울창한 장절공 신숭겸 묘역 입구에 들어서자 추위에 사람본지가 오래인 듯 작고 하얀 강아지가 졸졸 따라오며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장대하게 하늘을 향해 뻗고 이 추운 겨울임에도 무성한 푸른 솔잎들이 하얗게 안개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 신숭겸 장군의 충절과 기개를 말하듯이 이곳 분위기를 더욱 고즈넉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가파른 금강송의 눈 쌓인 길을 따라 묘소로 올라가니 이상하게도 고분은 봉분이 3개이다, 신숭겸 장군 부인이 둘이였나? 둘이라 친들 비석은 가운데 하나뿐이다. 궁금증이 있었지만 주변 금강송의 설화 풍경에 취하고 뒤를 돌아보니 탁 트인 시야가 명당임을 직감하게 된다.

[3L]장절공(申莊節公)신숭겸(申崇謙)은 이곳 춘천에서 태어나 918년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로 고려건국에 공을 세웠다. 927년 태조10년 왕건은 신라를 돕기 위해 대구 팔공산에서 후백제 견훤의 군대와 전투 중 왕권이 포위되어 위험에 처했을 때 신숭겸은 스스로 자청하여 왕건의 옷으로 바꾸어 입고 왕으로 적을 유인하여 태조 왕건은 무사히 포위망을 탈출케 하고 자신은 장렬히 전사했다. 후백제군이 왕의 옷을 입은 신숭겸을 태조로 알고 목을 베어가자 태조 왕건은 전쟁이 끝난 후 신승겸장군의 머리를 금으로 만들었으나 도굴이 염려하여 봉분을 세 개로 만들어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당시 신숭겸장군의 충절이 없었다면 왕건은 팔공산전투에서 전사했을 것이고 따라서 475년을 이어간 고려는 역사 속에 존재하지 않았을 일이다. 이 묘역은 풍수지리 전문가들이 전국에서 손꼽히는 명당중의 명당이라 극찬하는 것을 내려와서 읽고 아까의 의문들이 일시에 풀리며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나도 명당임을 감지한 흐뭇함도 느꼈다.

신숭겸(申崇謙)과 함께 전사한 김락(金樂) 두 장수를 애도하는 뜻으로 고려 중기에 지어진 도이장가(悼二將歌)라는 노래는 태조인 왕건이 팔관회를 열 때마다 두 장군이 없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여 허수아비로 장군의 모습을 만들어 옆에 앉히고 술을 따라주니 허수아비가 받아 마시며 살아있는 사람처럼 춤을 추었다는 기록이 있다한다. "주인을 온전하게 한 그 충정이 하늘까지 미쳤으니, 그 넋은 이미 가셨지만 일찍이 지니셨던 그 자리 그대로군요, 아~ 돌아보건대 두 공신의 곧고 곧은 업적이 오래 오래 빛 나로다"라는 내용의 노래라 한다. 신숭겸의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선거철마다 신의를 버리고 자신의 이익에 따라 팔색조처럼 변신과 배신을 밥 먹듯 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대의와 신의를 위해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충절의 사람들이 이 시대에는 없는 것일까 하는 씁쓸한 의문이 든다.

<글, 사진 任容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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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대 (Rime)

작은 알갱이 모양의 희고 불투명한 얼음입자로 상고대(霜固帶)는 과냉각(過冷却)상태의 물방울 즉 영하의 기온에서 액체 상태로 존재하는 물방울이 영하의 기온에 놓여있는 나무 등의 물체와 충돌할 때 만들어지는 동결현상의 霜固의 帶로서 서리가 나무에 얼어붙은 지대의 한자말이고 순수한 우리말은 ‘나무서리’ 수상(樹霜) 혹은 수빙(樹氷)이라는 말과 같다. 물가에 상고대가 피는 여러 곳 중 춘천만큼 아름다운 곳은 드물다. 춘천지역은 소양강댐 등의 주변에 댐이 많고, 지형이 분지의 형태라 상고대가 많이 피며, 특히 소양강댐의 방류시간에 따라 대기와의 기온차로 수중기가 급격히 냉각되면서 마치 주변의 나뭇가지에 하얀 꽃이 피는 것처럼 형성되어 전국 어느 곳보다도 상고대가 아름답게 피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