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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의사와 기업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약속'

창원 경남스틸(주) 최충경 회장

  • 입력 2013.03.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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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위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빈센트 반 고흐에게는 동생 테오가, 일본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고시바 마사토시는 중학교 1학년 때 만난 담임선생님이, 그리고 빌 게이츠에게는 스티브 발머라는 훌륭한 멘토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비뇨기과의 카리스마’로 잘 알려진 명지병원 김세철 원장을 보며 다시 한 번 멘토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니는 진짜 훌륭하고 좋은 의사 선생님이 되거래이. 나는 사업을 할끼다. 니는 돈 걱정하지 말고 사람이나 고쳐래이.”
“됐다 고마! 아부지가 하라카니까 하겠는데, 의사나 될 수 있을란가 모르겠다. 그리고 니나 잘해라. 내가 언제 니보고 돈달라카드나…”
“두고 보래, 나는 큰 회사 사장님이 될끼다. 그리고 내가 거저 준다카더나. 꼭 좋은 의사 선생님이 되거래이.”
“알았다 고마. 니는 큰 회사 사장님이 돼서 돈 많이 벌어래이. 그리고 아프면 꼭 나한테 온나. 내가 꼭 고쳐주꾸마.”

두 소년은 서로 약속을 했다, 한명은 아픈 사람을 도와주는 좋은 의사가 되고, 또 한명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좋은 일에 앞장서는 훌륭한 기업가가 되기로 말이다. 그리고 50년이 지났다. 그 소년들은 그 예전 자신들의 약속처럼 한 사람은 아픈 이의 눈물을 닦아주는 의사가,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장학회와 학술상 등을 제정해 훌륭한 인재를 배출하게 하는 기업가가 되어 있었다.

지난해 11월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이례적인 학술상 하나가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대한비뇨기과학회가 주최한 ‘김세철 학술상’인데 학회에서 현 회원의 실명을 딴 학술상이라는 것도 특이하지만 후원자가 학회나 의료계와는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철강회사라는 점도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후 명지병원 김세철 원장과 후원자인 경남스틸의 최충경 회장은 같은 고향에서 함께 자란 죽마고우이며, 어린 시절의 약속을 잊지 않고 지금까지 지켜온 것이 알려지면서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온 김세철 박사는 지금까지 제가 만나본 그 어떤 사람보다도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이었습니다. 경북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모범적인 친구로 통했습니다. 의대를 다니고 병원에서 근무를 할 때도 아무리 밤늦게까지 술을 마셔도 절대 흐트러짐이 없었고, 새벽이면 반드시 연구실로 향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김 박사에게 반드시 훌륭한 세계적인 임상의사가 되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또한 이처럼 부족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존경하는 친구의 이름을 딴 학술상을 제정해주신 대한비뇨기과학회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경남 창원에 위치한 경남스틸의 회장이자 창원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는 최충경 회장, 그리고 명지병원 김세철 원장의 인연은 5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사람은 중학교 시절 같은 경북중학교를 다니며 우정을 쌓아왔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올라가면서 김 원장은 경북고등학교를, 그리고 대구상업고등학교 선택하게 된다. 최 회장도 경북고등학교를 가고 싶었다. 하지만 5살 때 아버지를 여읜 최 회장, 가난한 가정형편을 생각해 자신의 바람보다는 빨리 사회로 진출해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을 한다.
인연이란 이런 것일까, 김 원장의 아버지가 이곳 대구상업고등학교 교감선생님으로 있었고, 또한 평소 최 회장을 눈여겨보고 있었던 것이다.
“김 박사의 부친께서는 김 관字 익字 선생님이십니다. 한번은 선생님께서 저에게 ‘가정형편이 어렵다고 해서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고, 그 이후로 저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습니다. 아마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최 회장은 김관익 선생의 뜻을 깊이 새겨 취직 대신 영남대 법대를 들어가게 된다. 이후 삼성전자를 거쳐 창업의 뜻을 가지고 1990년 11월 지금의 경남스틸이 탄생하게 되었다.


김세철 원장과 같은 의사가 더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창업을 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회사가 안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예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김세철 박사를 찾아갔습니다. 김 박사는 그 때 논문도 많이 쓰고, 의료 행정에서도 뛰어난 비뇨기과 전문의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한편으론 뿌듯하고, 또 한편으로는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임상의사가 되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려면 뭔가 필요한 것이 있을 텐데, 사양하지 말고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물론 최 회장은 김 원장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김 박사 역시 최 회장의 예상처럼 한사코 사양하며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래도 최 회장은 진심으로 돕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마침내 김 원장은 그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결국 김 박사가 입을 뗀 첫마디는 실험실에서 연구를 도와줄 대학원생이 필요한데 마구 부려먹을 수는 없지 않겠냐며, 능력은 있는데 형편이 넉넉지 않은 친구의 학비를 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매년 학비를 지원해 주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렇게 김 원장과의 줄다리기에서 승리를 거둔 최 회장은 그 이후로 김 원장이 중앙대병원을 퇴직하기까지 무려 15년간 매년 1천만 원씩 대학원생의 학비를 지원했다.
하지만 최 회장은 그때까지 회사는 해마다 성장하면서도 김 원장에게 1천만 원씩밖에 지원해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이번에도 반드시 이기겠다는 각오로 김 원장과 담판을 지으려 나섰다.
“제가 김 박사를 만나서 ‘자네 같은 의사가 나오게 하자는 의미로 논문이나 연구 성적이 좋은 의사에게 상을 주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리고 상 이름은 ‘김세철 학술상’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최 원장의 말을 들은 김 박사는 펄쩍 뛰면서 ‘절대 안 될 소리’라고 일축했다. 첫 번째 협상은 실패, 그래서 ‘김세철 학술상’이 아니라 둘의 이름을 따서 ‘김&최 의학상’으로 하자고 구슬리기 시작했다. 절대 안 될 것 같더니 그래도 몇 달 동안을 공을 들여 회유를 했다. 그래서 겨우 허락을 얻어냈는데, 다음 문제는 상금이었다. 최 회장은 3천만 원을 제시했으나 김 원장은 오히려 2천만 원이 적당하다며 못을 박았다. 이번 테이블에서는 김 원장이 승리를 거뒀다.
“이번 학술상을 제안한 것에는 두 가지 계기가 있었습니다. 먼저 지난해 99세로 돌아가신 제 장인어른 故 조영호 선생은 충청북도 의사회 회장을 지내시며 영동군 황관면에서 평생 의료에 몸 바쳐 오신 분이셨습니다. 이런 훌륭한 분들에게 사회가 해 드릴 것이 없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에 보령의학상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습니다.”
최 회장은 대한비뇨기과학회에 매달 200만원씩 기증을 하고 상금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은 시상식 비용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성공을 이끌어준 내 인생의 소중한 멘토


“김세철 박사는 한번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이루는 강한 집념을 가진 친구였습니다. 또 의사뿐만 아니라 CEO의 자질도 훌륭해서 병원 경영 능력도 탁월합니다. 명지병원의 원장으로 있는 김 박사는 제가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존경하는 친구입니다. 그리고 김 박사는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고위 관리직으로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최충경 회장의 말에 의하면 김세철 원장의 꿈은 의사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문과에 있었던 김 원장, 그러나 의사가 되기를 바라던 부모님의 바람으로 진로를 바꿨다고 한다. 특유의 끈기와 집념으로 부모님과 친구의 바람대로 대한민국 비뇨기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임상의사가 되었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늘 함께 했던 최 회장, 그가 1990년 창원에서 맨손으로 시작한 경남스틸이 연매출 3,500억 원을 올리고, 영업이익도 100억 원 이상 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성공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는 김 원장과 함께 하면서 그의 철저한 자기관리 능력과 무서운 집념을 옆에서 무의식적으로 배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김 박사가 그렇게 딱딱한 사람은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권위적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입니다. 대통령과도 농담을 할 수 있으면서도 아무리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도 인격을 존중할 줄 아는 그런 사람입니다.”
최 회장과 김 원장은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 모임인 ‘고산골’을 부부 동반으로 지금까지 40년간 함께 해오고 있다. 그곳에는 홈플러스 이승환 회장과 신한투자금융의 이동걸 전 부회장, 대구 태창철강그룹 유재승 회장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굵직한 인물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 모두 김 원장의 성품과 업적에 박수를 치며 마음속으로 지원을 하고 있다.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는 의사 많이 나오기를 바라며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어느덧 60대 후반이 되었습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느끼는 것은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고 그것만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것이 돈과 권력, 그리고 명예가 아니겠습니까. 돈을 바라면서 권력과 명예를 함께 가지려고 하면 안 됩니다. 저는 기업인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돈을 버는 일이죠. 할 수만 있다면 좋은 의사들을 많이 지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최충경 회장의 가훈이자 좌우명은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하자’와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자’는 것이다. 다른 것에 욕심이 생길 때마다 이 말을 생각하고 자신에게 엄격했다. 또 권력과 명예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기업인으로서의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돈은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늘 어려서부터 어머님께 배워왔던 최 회장은 지금까지도 십 원 한 장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다. 늘 소탈한 그의 모습은 어느새 최 회장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하지만 자신에게와는 달리 사회를 위해서는 누구보다 앞장서는 기업인이 되고자 노력했다. 어머님의 함자를 딴 ‘귀남장학회’와 ‘귀남도서관’을 만들어 미래 인재 양성에 힘쓰며, 벌써 10년 이상 경남장애인협회의 일을 맡아서 하고 있다. 또한 기업 수입의 10%를 사회에 기부하면서 모든 기업의 귀감이 되고 있다.
“‘김세철 학술상’에 조그마한 후원을 하면서 작은 바람이 하나 생겼습니다. 매스컴을 통해 보면 돈을 많이 버는 의사가 성공한 의사처럼 비쳐지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의사는 돈보다는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김세철 박사처럼 명예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의사가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위해 앞으로 더욱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는 의사가 더욱 많이 나와주기를 바란다는 최 회장, 그는 ‘내 작은 노력이 우리나라에 노벨의학상이 나올 수 있는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는 또 하나의 바람을 전했다. 투명경영인으로 모든 기업의 귀감이 되고 있는 최충경 회장. 앞으로 그와 같이 약속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의 직분에 충실한 제2, 제3의 최충경 회장이 더욱 많아진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노벨의학상 수상자가 쏟아져 나오는 날도 멀지 않았다는 뜻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