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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잔인흉악 속에서도 아름다움 찾아내는 예술

  • 입력 2013.04.15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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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준 당대의 인물이다. 금욕과 완벽한 도덕주의자 이었던 세례 요한은 “시동생인 헤로데 왕과 형수인 헤로디아의 결합은 불륜상간(不倫相姦)의 죄에 해당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없다”고 비난과 저주를 퍼부었다. 그는 감옥에 갇혔어도 의연한 행동과 타협하지 않는 성격으로 헤로데와 헤로디아의 못 된 행동을 꾸짖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방탕하고 사악한 헤로디아와 그녀의 전남편의 딸 살로메의 흉계와 음모로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1L]그림 11-1. 모로, <헤로데스 앞에서 춤을 추는 살로메>, (1874) 아몬드 해머미술관 , 로스앤젤레스
문학과 예술인들은 세례 요한의 비국적인 죽음의 드라마에 깊이 매혹되었다. 그것은 간통한 왕비의 눈 밖에 난 성자의 목을 요구한 냉혹한 살로메의 교활 때문에 비참하게 살해, 그것도 참살된 성자의 극적인 운명은 문학과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한편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흥미로운 소재가 내포 되었다 하여 소설, 그림 및 오페라 등에 살로메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던 것이다.

즉 부도덕한 사랑으로 인해 위대한 성자의 목숨을 앗아간 안타까운 사건이지만 예술가들에게는 자신의 탐미적 열정을 쏟아 붓기에 손색이 없는 소재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프랑스의 상징주의 화가 구스타브 모로는 살로메에 대한 그림을 연작으로 그려서 살로메 하면 곧 모로를 연상할 만큼 그의 연작들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중에서 <헤로데스 앞에서 춤을 추는 살로메>(1874)는 헤로데스는 막강한 왕의 권력을 과시하는 듯 웅장한 궁궐의 옥좌에 앉아 살로메를 내려다본다. 왕의 등 뒤에는 음침한 분위기의 여러 신상들이 왕을 호위하고 있다. 불길한 느낌을 풍기는 신상들은 헤로데스가 사악한 인간의 후예임을 말해주는 상징물이다. 

[2L]그림 11-2. 모로, <살로메의 춤>, 1876, 구스타브 모로 미술관
왕의 왼편에는 헤로디아스 왕비가 춤을 추고 있는 딸을 대견스럽게 지켜보고 있고, 그 앞에서는 루트 연주자가 감미로운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오른쪽에는 음탕함의 상징인 흑표범과 번득이는 시퍼런 칼을 든 망나니가 왕의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모로의 <살로메의 춤>(1876)이라는 작품은 살로메가 헤로데스 왕 앞에서 춤을 추다가 땀이 나니 옷을 벗기 시작하여 마지막 남은 옷까지 벗어 완전한 나체가 되는 장면인데 화가는 이를 차마 나체로 표현하지 않고 몸에다 신비로운 문신을 그려 넣어 마치 속이 다 비치는 매우 얇은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였다.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는 성서와 야사를 통해 전해지는 살로메의 이야기를 각색하여 에로틱한 양념을 가미해 희곡 ≪살로메≫(1893)를 창작하였다. 성서에서는 살로메가 어머니 헤로디아스의 사주에 의해 요한의 목을 요구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와일드의 여주인공 살로메는 세례 요한의 아름답고 늠름한 자태와 목소리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살로메는 자신의 마음을 거부하는 요한을 증오한 나머지 헤로데스 왕에게 그의 목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평소 의붓딸에게 연정을 느끼던 헤로데스는 살로메의 청을 받아들인다. 

[3L]그림 11-3. 로비스 코린트, <살로메>, 1900, 라이프치히 조형미술관, 독일
이 희곡은 작가 와일드가 지향했던 탐미주의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살로메가 잘린 요한의 목에 입을 맞추기도 하는 등 지나친 성적 판타지로 인해 타락한 천재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반면 ‘데카당스의 지침서’로 불릴 만큼 세기말적 정서로 가득한 것과 극단적으로 표현된 ‘팜므파탈 신화’는 사람들의 관심과 호응을 이끌기에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에 나오는 ‘일곱 베일의 춤’ 이란 요염한 살로메가 일곱 개의 엷은 옷을 하나씩 벗으면서 헤로데스의 욕정을 자극하는 관능적인 춤을 말하는데, 원래 고대 전설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슈타르라는 여인이 저승을 방문할 때 입구부터 목적지까지 있는 일곱 개의 문을 열 때마다 옷을 하나씩 벗어야 한 데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4L]그림 11-4. 데발리에르, <살로메>, 1905, 개인 소장
독일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도 살로메 이야기의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오페라 <살로메>(1905)를 작곡하였는데 오페라에서도 그러한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냈다. 여기서도 살로메가 추는 춤은 ‘일곱 베일의 춤’이며 이를 관현악곡으로 작곡하였다. 대본에 ‘일곱 베일의 춤’이라고 명기되어 있지만 곡은 베일을 한 꺼풀씩 벗겨내는 일곱 부분으로 구체적으로 나뉜다기보다 일련의 연결 동작처럼 처리되었다. 고대의 오리엔탈리즘을 연상시키는 강렬한 도입부에 이어 살로메가 춤을 추기 시작하는 데 서는 느릿한 관능미가 끈끈하게 펼쳐지게 하고 끝으로 가면서는 속도가 빨라지게 하여 춤을 추는 동안 황홀경에 빠져들도록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오페라 <살로메>에서 ‘일곱 베일의 춤’을 강조한 이유는 여타 예술가들의 표현처럼 슈트라우스도 탐미주의를 극대화하려 했기 때문이다. 살로메 이야기의 특별한 맛을 살리려면 퇴폐적인 에로스를 정면으로 다뤄야 하는데, 오페라에는 에로스적 표현에 한계가 있었다. 슈트라우스가 생각하기에 그러한 점을 극복하려면 ‘일곱 베일의 춤’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5L]그림 11-5. 레비-뒤르메, <세례요한의 잘린 머리에 키스하는 살로메>, 1896, 개인 소장, 독일
독일의 외광파(外光派) 화가 로비스 코린트(Lovis Corinth, 1858-1925)의 작품 <살로메>(1900)도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요한의 최후를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담담한 표현 기법이 보는 이의 가슴을 더욱 선뜩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그림의 왼쪽에 망나니가 피 묻은 칼을 들고 서 있고, 오른쪽에는 요한의 시신이 놓여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참수는 방금 막 끝난 것으로 보인다. 살로메는 목이 잘린 요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의 눈꺼풀을 치켜들며 나의 사랑을 받아주었으면 죽지는 않았을 터인데 정말 안됐다는 표정을 하고 있어 마치 연극이나 오페라에서 공연되는 살로메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것 같다. 

프랑스의 화가 데발리에르(Georges Desvallieres, 1861?1950)의 <살로메> (1905)라는 작품 역시 연극이나 오페라의 한 장면을 보고 그린 것 같은 그림이다. 살로메가 속살이 보이는 옷을 입은 것으로 보아 ‘일곱 베일의 춤’의 마지막 춤을 추었던 것 같다. 그때 피 묻은 도끼를 든 망나니가 와서 참수된 요한의 머리를 살로메에게 건네주자 살로메는 그것을 들고 계속 춤을 추고 있는 장면으로 보인다. 
프랑스의 상징주의 화가 레비 뒤르메(Lucien Levy-Dhurmer, 1865-1953)의 <세례 요한의 잘린 머리에 키스하는 살로메>(1896)라는 작품은 살로메가 피가 흥건한 쟁반 위에 담긴 요한의 머리를 감싸 안고 키스하는 장면을 나타낸 것이다. 역시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을 충실하게 표현한 작품이라 하겠다. 

솔직히 에로틱한 ‘일곱 베일의 춤’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 공연의 한 장면이다. 살로메가 피범벅이 된 요한의 잘린 목을 받아 들고 부둥켜안으며 쓰다듬고 매만지는 장면인데, 이는 끔찍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미묘하고 큰 감정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장면이었다. 
우리가 살로메 이야기를 한낱 치정극이라 부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술가들이 흉악한 범죄에서도 사람들의 오감을 자극하는 미적 요소를 발굴하듯이 추잡한 인간 본성이 극단으로 치닫는 치정 살인에서도 느끼고 배울 점은 있는 것이다. 그러한 점을 이끌어내는 예술가들의 상상력과 열정에 법의학자로서는 놀라울 따름이며 그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