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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프 무와: 2세의 탄생을 두려워하는 남자들 Ⅱ

  • 입력 2013.12.07 11:40
  • 기자명 김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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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된다는 것의 두려움
이 영화는 또 태어날 자식에게 자신의 자리를 뺏겨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는 남자의 심정을 그리고 있다. 임신으로 인해 아내의 관심이 온통 아이에게만 쏟아 부어지기 때문에, 사무엘은 어느새 주인공의 자리에서 밀려난다. 아내는 어머니의 역할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고와 행동이 아이 위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는 이제 서서히 집안의 중심에서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 사무엘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 아내는 아기와 함께 거의 모든 시간을 지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아내의 가슴도 이제는 아기 차지가 된다. 그리하여 아기는 결국 아버지의 힘을 약화시킬 것이다. 어쩌면 아버지에게 도전하고, 그의 자리를 위협할지도 모른다. 그리스 신화에는 ‘아들이 태어나 아비를 죽이고, 어미를 아내로 삼을 것이라’는 오이디푸스의 탄생 신탁이 있고, 최초의 아버지로 그려지는 우라노스는 자신의 자식을 낳자마자 감금한다. 우라노스의 아들인 크로노스는 아이를 낳자마자 아예 삼켜 버린다. 이 같이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라이오스와 우라노스, 크로노스의 신화는 자신의 자리를 자식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는 불안한 남자의 심정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 두려움을 영화에서는 사무엘이 치료하는 소년 환자를 통해 보여준다.

영화에서 정신분석가로 나오는 사무엘은 아버지에 대해 심한 불만을 갖고 있는 소년의 정신 치료를 한다. 이 소년은 입만 열면 제 아버지 욕을 한다. “형편없는 인간이에요. 난 아빠를 증오해요. 책임감 없는 지독한 이기주의자가 왜 애는 낳았는지 모르겠어요.” 마틸드가 임신한 뒤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게도 사무엘은 이 소년을 피하려 한다. 그것은 사무엘이 이 소년 환자를 통해 앞으로 자신이 자식에게 당하게 될 수모와 두려움을 매우 걱정하고 있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사무엘은 자식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줘야 하며, 자식은 도전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려 들 것이라는 강박감에 사로잡혀 있다. 정신 치료를 받고 있는 소년 환자는 사실은 사무엘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이 같은 그의 미성숙한 부분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음속에 있는 자식에 대한 두려움, 자식이 자신의 위치나 권위를 손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소년 환자의 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무엘의 이런 두려움은 소년 환자의 입을 통해 토로된다. “실컷 키워 놓고 개자식이란 소리나 들으려고?” 소년은 자기 얘기를 할 뿐인데, 그때마다 자신의 두려움이 증폭되는 사무엘은 녀석이 제발 치료 받으러 오지 않기를 바란다. 소년 환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문제를 모두 아버지 탓으로 돌린다. 아버지 때문에 자신이 이렇게 됐고, 무책임하게 자기를 낳았다고 불평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무엘은 자신이 겪는 마음고생은 모두 마틸드나 뱃속의 아기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기의 출산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의 문제일 뿐 마틸드나 아기의 탓은 아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마음속에 있는 독점적인 어린애 같은 생각은 계속 소년처럼 속삭인다. “모든 것은 아기 때문이다. 그 애는 너의 영역을 침범하고 너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 결국 너 역시 아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말 것이다.” 이런 갈등 속에 연인의 임신을 부정하던 사무엘은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아기의 초음파 장면을 보고는 아기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작은 물체가 조금씩 움직이며 힘차게 뒤는 심장의 움직임에서 그는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사무엘의 어린 시절이 묘사되어 있지 않지만, 자녀가 아버지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란 두려움은 어린 시절 겪었던 경험과 관련이 많다. 특히 어린 시절 동생의 출생으로 인해, 부모의 관심을 동생에게 빼앗겼던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 같은 심리가 더욱 크게 작용한다. 이런 사람은 어린 시절의 경험을 되살려 다른 사람보다 더 자녀의 출산을 두렵게 여긴다. 그동안 부모의 유일한 관심 대상이었고,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왕자의 자리를 어느 날 갑자기 동생에게 빼앗긴다고 상상해 보라. 이때의 충격을 천국에서 쫓겨난 느낌이라고 표현하는 이도 있다.
그런 기억과 함께 이번에는 다시 자식에게 왕자의 자리를 내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또 하나, 어린 시절 동생을 잘 돌봐 주지 못해 자주 부모에게 야단을 맞은 사람이라면, 그때의 부담감이 되살아나 자신의 무능력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자식을 돌봐 줄 일이 무엇보다 큰 걱정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임신에 대한 이러한 두려움은 여자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이지만, 남자에게 더욱 절실하게 여겨진다. 그것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들이 우대되어 온 전통 때문이다. 항상 관심의 초점이 되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아들에게는 자리를 내어 준다는 사실이 더욱 힘든 일로 여겨진다.

배우자의 임신은 남자에게는 하나의 통과의례이다.
그는 이제 조금씩 태어날 아기에게 모든 것을 양보할 준비를 해야 하며, 자식의 비난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질 준비를 해야 한다. 권위에 대한 도전은 언제 어느 곳에나 있었으며, 그에 대한 정당한 관용은 바로 자식이 아닌 자신에 대한 너그러움이기도 하다.
그는 이제 자신이 독립적으로 조명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그것을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아기가 태어난 후에도 자식과의 경쟁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자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아버지는 자식과 계속 경쟁하거나, 자식을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아들이 성장한 후에까지 후견인 노릇을 하며 간섭하게 된다.

사무엘은 결국 끊임없이 아버지의 욕을 하는 소년 환자를 때려눕히고 만다. 그로써 그는 자기 안에서 계속 조잘대며 자식과의 경쟁을 부추기고 자식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꼬드기는 미성숙한 부분을 부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는 연인의 임신을 받아들인다.
이처럼 남성, 아버지가 거쳐야 할 통과의례는 배우자의 임신으로만 가능하다. 부부만 존재할 때는 상관없지만 아기의 탄생은 스스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기가 탄생하기까지 9개월간 그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만 그 후의 양육의 갈등에 휩싸이지 않게 된다.

남근 선망과 자궁 선망
다음은 여성에 대한 선망의식에 대해서 생각해 볼 차례이다. 프로이트는 여성을 ‘거세된 남성’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여성은 어린 시절 남자아이가 가진 남근을 보며 자신도 그것을 갖길 바라는 남근 선망이 생긴다고 하였다. 이로 인해 여성은 자기애적인 손상을 가져오며, 평생 동안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그 열등감을 회복하기 위해 남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려 한다고 하였다. 프로이트는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운명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이것은 변경될 수 없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런 프로이트의 초기 이론은 아무런 문제없이 받아들여졌으며, 어떤 의문도 제기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학자들 사이에 하나둘이 같은 프로이트의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남근 선망이 나타나게 된 것은 프로이트가 살던 시대의 가부장적인 문화적 영향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가부장제하에서 남성은 여성에 비해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었으며, 남성들에게 권력이 집중되었고, 남성의 의도에 따라 특권이 정해졌기 때문이다. 여자의 남근 선망, 즉 남성에 대한 부러움은 운명적인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사회적 특권 계층에 대한 선망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우수해도 하등 시민으로 살아야 하는 여성에게 남자가 되고 싶은 소망은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이미 정해진 운명, 뱃속의 결정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생기는 것으로서 남성의 관점에서 본 이론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프로이트의 이론을 반박할 수 있게 된 근거는, 정신 분석가들이 여성을 분석해 본 결과 모든 여성들이 남근 선망이나 남자에 대한 부러운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오히려 남자들이 여성의 신체에 대한 선망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성전환 장애라고 부른다. 성전환 장애는 남자의 신체를 가지고 태어났으나, 자기는 남자가 아니라 남자의 신체에 갇힌 여성(게이)라고 생각하여, 성전환 수술을 해서라도 여성의 신체를 갖기를 원하는 증상이다. 반대로 여성의 경우는 자기를 여성의 신체데 갇힌 남성이라고 생각하고 남성으로의 성전환을 원한다. 이 증상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기질적인 원인과 심리적인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고 있다.

성전환 장애는 여성보다 남성에게 훨씬 많다. 여자보다 많은 특권을 가지고 있는 남자에게 왜 더 많은 성전환 장애가 나타나는 것일까? 남성성은 전통적으로 우리의 사회에서 힘과 특권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어떤 남성은 왜 이 같은 특권을 버리기를 원하는 것일까? 이런 점은 남성이 여성의 신체에 대해 보편적으로 더 많은 선망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이런 성전환 장애처럼 남근 선망이 아닌 여자의 신체에 대한 선망을 보여주는 것이 사무엘에게 나타난 가성 임신이다. 가성 임신은 매우 드문 예로서, 환자는 임신의 증상과 징후를 그대로 나타낸다. 배가 불러오고 가슴도 커지며, 색소 침착이 오고 월경이 중단되며, 아침에는 헛구역질까지 난다. 가성 임신을 처음으로 보고한 사람은 히포크라테스이다. 그리고 영국 여왕 메리 튜더는 두 차례나 가성 임신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가성 임신은 일반적으로 여자에게 나타나는 증상으로 되어 있으나 매우 드물게 남자에게도 나타난다. 이와 유사한 증상으로 임신과 관련되어 남자에게 나타나는 증상 중에 쿠바드 증후군(couvade sydrome)이 있다. 쿠바드 증후군은 아내의 출산을 전후로 나타나는데, 남편이 마치 자신이 아기를 낳는 것처럼 자리에 눕거나 진통을 경험한다. 이런 쿠바드 증후군은 여러 문화권에 공통적으로 퍼져 있는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