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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통해 보는 세례 요한의 참살사건의 재인식 (I)

불륜상간이 빚은 참살(斬殺)사건

  • 입력 2013.03.07 13:43
  • 기자명 문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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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 _ 모로 작 : ‘출현’(1876) 파리, 루브로 박물관
헤로데 왕과 왕비 헤로디아의 결합에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즉 왕비 헤로디아는 원래 헤로데의 형 필립보의 아내였는데 실증을 느끼고 남편의 시동생인 헤로데 왕과 눈이 맞아 남편을 버리고 헤로데와 결합한 이른바 그 시동생에 그 형수라고 할 수 있겠으며, 살로메는 헤로디아가 전 남편 필립보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었다. 왕과 왕비의 불륜의 결합을 보다 못한 세례 요한은 이를 맹렬히 비난하고 저주를 퍼부었다. 이러한 세례 요한의 행동에 앙심을 품은 헤로디아 왕비는 어떻게 해서라도 요한을 없애야겠다고 생각하고 모략을 꾸미기 시작하였다.
헤로디아는 남편 헤로데가 의붓딸인 살로메의 춤추는 모습만 보면 넋이 나가는 사실을 알고 바로 이점을 노려 딸에게 춤을 추다가 중단하고 어떤 부탁을 해도 왕이 거절할 수 없도록 약속을 받아내고 춤을 계속할 것을 부추겼다. 헤로데 왕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축하연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 살로메가 춤을 추게 되었다.



-> 그림 2 _ 카라바조 작 : ‘세례 요한의 참수’(1608) 성 요한 대성당, 발레타(말타 섬)
이러한 내용을 상상하면서 살로메가 춤을 추는 모습을 프랑스의 상징주의 화가 구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1826-1898)는 살로메의 춤을 연작으로 그렸는데 그 중 ‘출현’(1876)이라는 그림을 보면 화면 중앙에 화려한 온갖 보석으로 마치 갑옷을 입은 것처럼 치장한 살로메는 한손을 앞으로 뻗어 허공을 찌르고 있다. 땀이 스며 나오기 시작해 빛나는 흰 피부에 거칠게 몰아 쉬는 숨결로 부푼 가슴의 관능미는 벌써 노안의 왕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살로메는 춤을 추면서 옷을 하나씩 벗어 이제는 나체가 된 찰나이다. 그녀가 왼쪽 손으로 가리키는 허공에는 목이 잘려 피가 떨어지는 요한의 머리가 나타나 있다. 졸지에 억을 한 죽음을 당할 요한은 눈을 부릅뜬 채 사악한 요부를 노려본다. 살로메 역시 이에 질세라 표독한 표정으로 허공에 떠있는 요한을 향해 거칠게 손가락질하며 맞선다. 이는 살로메가 의붓아버지인 왕에게 이 사람의 목을 쳐주어야 춤을 계속하겠다는 것을 표현한 장면이다.
왕도 왕비도 망나니도, 살로메의 아찔한 성적 마력에 취해 한낱 배경을 장식하는 무늬로 전락하고 말았다. 악마적이고 사악한 힘으로 충만한 여인의 매력은 남자를 압도해 한 남자는 애꿎은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고 또 다른 한 남자는 여인의 강렬한 유혹에 빠져 그 존재조차 희미해졌다.

<-그림 3 _ 카라바조 작 : ‘세례 요한의 참수머리를 받는 살로메’ (1610) 론돈, 국립미술관
수채화로 그린 ‘출현’의 장면은 요한이 참수 당하기 전의 장면으로 허공에 뜬 요한의 머리는 왕이나 왕비 그리고 망나니 등 그 방안에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며 오로지 살로메의 눈에만 보이는 환시(幻視)현상으로 표현해 춤을 추다가 멈추고 계부에게 세례 요한의 목을 주어야 춤을 계속하겠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즉 어머니의 지시대로 하자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던 헤로데 왕은 무의식적으로 그러마하고 많이 모인 사람들 앞에서 약속을 하였다.
뒤늦게 자신의 섣부른 약속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깨달은 헤로데는 약속을 취소할 것을 요구 하였으나 살로메는 완강히 거부했다. 하는 수 없이 헤로데 왕은 요한의 목을 칠 것을 망나니에게 명한다. 그래서 망나니가 요한의 목을 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요한의 목을 치는 장면을 상상해서 그린 그림은 여러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는데 그 가운데서도 이 줄거리에 잘 맞게 표현된 것은 이탈리아의 화가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가 그린 ‘세례 요한의 참수’ (1608)와 ‘세례 요한의 참수머리를 받는 살로메’ (1610)라는 두 그림이다. 참수장면의 그림은 그가 그린 것 중에서 가장 큰 그림이다. 요한은 두 팔이 뒤로 묶여 땅에 눕혀졌고, 망나니가 그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첫 칼에 목을 베지 못한 망나니는 허리춤에서 다시 단도를 꺼내든다. 살로메의 하녀가 그의 머리를 받아가려고 대야를 준비하는데 늙은 하녀가 옆에서 전율을 느끼며 바라본다. 터키식의 복장을 한 간수는 이 잔인한 살육을 지시하고 있다. 이 그림은 지금도 말타 섬의 대성당에 걸려 있다.

<- 그림 4 _ 레온 헤르보 작 : ‘살로메’ (1889) 개인 소장
이 그림이 다른 그림보다 특이하다랄 수 있는 것은 화가의 서명이다. 그것은 그의 그림임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서명이기 때문이다. 또 서명 앞에 ‘프라(fra)’를 먼저 썼는데, 이는 ‘형제(frate)’ 혹은 기사임을 나타낸다. 서명은 화폭의 중앙 맨 아랫단에 하였는데 세례 요한의 목에서 흐르는 피로 서명했다. 그의 피가 곧 자신의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카라바조 자기도 역시 사형수임을 결부시켜, 세례 요한과 카라바조 자신을 동일시한 것으로 보이며, 이런 점에서 피의 세례 성사(聖事) 즉 카라바조의 순교가 암시된 작품이라는 평이 있다. 그의 또 하나의 그림에는 망나니가 막 자른 요한의 머리를 살로메가 들고 있는 쟁반에 올려놓고 있으며, 살기어린 살로메의 얼굴에도 다소 겁먹은 표정이 표현 되어 있다.
참수된 세례 요한의 잘린 머리를 받아드는 살로메의 표정을 표현한 화가들의 작품도 많다. 어떤 화가는 기념사진 찍는 듯한 미소에서, 무표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표정으로 죽은 세례 요한의 잘린 목을 받아들이고 있어 차마 바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화면의 구성이 잔혹해 보인다.

그러나 벨기에 화가 레온 헤르보( Leon Herbo 1850-1907)의 ‘살로메’ (1889)라는 작품은 무표정한 살로메의 얼굴과 목이 잘린 세례 요한의 얼굴이 좀 섬뜩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그 얼굴의 표정의 대비가 이 사건의 전모를 말해주는 것 같이 표현하였으며, 요한의 참수된 머리만을 몸서리치게 잘 표현한 그림은 이탈리아의 화가 솔라리오(Andrea Solario 1473-1524)의 작품 ‘성 요한의 참수된 머리’이다.
여기서 살로메 모녀는 왜 하필이면 참수를 고집하였는가를 잠시 생각해 보기로 한다. 두개숭배(頭蓋崇拜)는 인류의 초창기부터 나타나 사후의 참수(decapitation)는 구석기시대에 벌써 이루어진 흔적이 남아 있다. 즉 조상숭배로 조상이 사망하면 그 두부를 참수하여 여러 가지 장식을 하여 이를 집에다 모시고 경배하는 것이 일종의 의식화 되어 있었는데 특히 마우리 족들에 있어서는 이러한 의식의 유물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러던 것이 참수가 승리의 징표로 이루어지기 시작 했다. 즉 적과의 싸움에서 특히 적장을 살해 하였다면 그 목을 쳐서 전승의 상징물로 삼았다. 그런가 하면 원한의 대상을 살해하고는 목을 쳐 몸과 머리를 분리하여 혼과 몸이 같이 있지 못하게 함으로서 고통을 영원히 준다는 의미로 참수가 이루어지기도 했던 것이다.

<- 그림 5 _ 솔라리오 작 :‘성 요한의 참수된 머리’(습작), 파리, 루브르 박물관
이 사건에 있어서 헤로디아 모녀가 요한의 참수를 고집하였던 것도 그에게 자기가 당한 것 이상의 모욕과 고통을 영원히 주기 위한 일종의 앙갚음으로 이를 강요하였던 것 같다.
이 사건을 법적인 측면으로 볼 때 헤로데 왕은 자기의 형의 부인 즉 형수인 헤로디아를 가로채서 자기 부인으로 삼았으며 전 남편의 딸 살로메는 헤로데 왕으로 볼 때는 조카딸인데도 연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아는 예언자 요한은 “형수를 가로 챈 것은 헤로데 왕과 헤로디아가 불륜(不倫)상간(相姦)의 죄에 해당된다고 비난하고 이를 폭로하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복으로 투옥하였으며 요한이 예언자임으로 많은 사람들이 따르기 때문에 이를 겁내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막기 위해 헤로디아는 이러한 모략을 꾸며 그를 참살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