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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마차

  • 입력 2013.04.14 16:39
  • 기자명 왕성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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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자 꽃 서울 춤추는 꽃 서울
아카시아 숲속으로 꽃마차는 달려간다
하늘은 오렌지색 꾸냥의 귀걸이는 한들한들
손풍금 소리 들려온다 방울소리 울린다

울퉁불퉁 꽃서울 꿈꾸는 꽃서울
알곰 삼삼 아가씨들 콧노래가 들려온다
한강물 출렁출렁 숨 쉬는 밤하늘엔 별이 총총
색소폰 소리 들려온다 노랫소리 들린다

푸른 등잔 꽃서울 건설의 꽃서울
알곰삼삼 아가씨들 콧노래가 들려온다
서울의 아가씨야 내일의 희망 안고 웃어다오
맨돌린 소리 들려온다 웃음소리 들린다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 진방남 노래의 ‘꽃마차’는 71년 전 봄에 만들어진 가요다. 일제강점기 때인 1942년 4월 태평레코드사(KC-5032)가 첫 선을 보인 SP앨범에 담겨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특히 작사가 반야월의 데뷔작으로 유명하다. 반야월과 진방남은 같은 사람으로 경남 마산출신 박창오 씨의 연예명이다. 작사가 반야월은 가수 진방남으로 가요계에 첫발을 디뎠다. 추미림, 박남포, 남궁려, 금동선, 허구, 고향초 등 15개의 필명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썼다.

‘하루삔’→‘꽃서울’로 바꾸는 등 중국지명 빠져
‘꽃마차’ 가사는 반야월 씨가 ‘넋두리 20년’ 노랫말을 만들면서 함께 작사하고 부른 곡이다. 이 노래는 반야월 씨가 만주공연 중 작곡가 이재호·김교성, 가수 백난아 등과 하얼빈에 들렀을 때 이국적인 정취에 느낀 바 있어 작사했다. 공연을 하면서 하얼빈을 봤던 감흥을 풍물시로 읊은 것이다. 아가씨를 나타내는 중국말 ‘꾸냥’이 나오는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하늘은 오렌지 색’이란 표현은 하얼빈이 대륙성기후라 하늘이 오렌지색으로 보여 그대로 나타냈다.
‘꽃마차’는 한때 KBS가 월북 작가의 노래로 오해해 금지곡으로 묶으려했다. 그러자 진방남 씨가 노래발표 때 포스트, 팸플릿 등 증빙자료를 보여줘 풀렸다. 이어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고 1950년 6·25전쟁 후 또 한 번 시련을 겪었다. 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해 ‘중국’을 ‘중공’이라고 부를 때로 적성국가지명이 들어간 노래라며 금지가요가 됐다.
이 노래는 그런 곡절 속에서 맨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가사를 새로 바꿔야했다. 오해는 풀렸지만 하루삔, 송화강, 대정금은 꽃서울, 한강물, 만돌린으로 고쳐졌다. 개사 후 1절 부분에서 ‘꾸냥의 귀걸이는 한들한들’이란 가사를 보면 현장을 보는 듯 생동감이 난다. 1절은 크게 다르지 않으나 2절과 3절은 울퉁불퉁과 푸른 등잔, 노랫소리와 웃음소리 등 가사의 일부를 서로 바꿔 불렀다. 원곡에선 3절을 다 부른 뒤 휘파람으로 마무리했으나 다시 취입한 노래에선 그 부문이 빠졌다. 재취입한 음반이 나오자 일부 가요계 사람들은 “꾸냥이 진짜로 서울에 있느냐”고 비아냥거렸다. 반 씨는 “서울 서소문 근처 중국촌(차이나타운)에 꾸냥이 살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 하늘이 오렌지색이 아니다”는 딴죽에 대해서도 “석양의 서울 하늘을 보라. 공해 없이 헤 맑은 서울 하늘에 해가 질 때면 붉게 물들었다”고 덧붙였다.

반야월 1주기 맞아 추모사업 활발
2012년 3월 26일 별세한 반야월의 추모 사업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가요연구모임 ‘유정천리’(회장 이동순 영남대 교수)는 지난 3월 26일 ‘진방남 작품집’(가제)을 냈다. 작품집엔 작사가 반야월이 아닌 가수 진방남의 노래들이 실렸다. 작품집은 2장의 CD와 가사집으로 이뤄졌다. 가수 데뷔곡 ‘사막의 애상곡’(1939년), 히트곡 ‘불효자는 웁니다’ ‘꽃마차’ 등 37곡이 담겼다. 음원만 알려지고 음반엔 담기지 않은 곡들도 20여곡에 이른다. 대표작 중 하나인 ‘잘 있거라 항구야’와 ‘꽃마차’, ‘길손 수첩’ 등이 실렸다. 1956년 나온 악극음반 ‘춘향전’ 삽입곡도 담겼다. ‘춘향전’은 배우들 연기와 가수의 노래가 어우러진 악극으로 반야월은 가수 겸 구성작가로 참여했다. 작품집엔 12분 분량의 ‘춘향전’이 원본 그대로 실렸다. 반야월이 가수 진방남의 이름으로 남긴 곡은 50~60곡 된다. 그 가운데 37곡을 담은 만큼 가수 진방남 연구에 유용한 자료다. 반야월 선생이 작사가로 전성기를 누린 건 1950년대 이후다. 작품 수를 봐도 1957년 이후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번 음반은 선생의 활동초기를 들여다볼 수 있어 의미가 있다.
유족이 기획한 작품집도 올 하반기 나온다. 반야월의 셋째 딸 박희라 씨는 올 하반기 ‘반야월 추모 사업단’ 이름으로 아버지의 히트곡들을 모은 음반을 낼 예정이다. 음반엔 작사가 반야월의 대표작 20여곡이 담긴다. 박 씨는 지난 2월초 ‘가수 진방남’의 히트곡 15곡을 담은 ‘불후의 명곡’ 음반 700장을 만들어 아버지 유해가 모셔진 제천시와 반야월 관련단체들에 기증했다.
박 씨는 아버지의 작품 활동을 정리하는 뜻에서 음반을 기획했다. 아버지 기일 때 고인이 묻힌 제천 복천사에서 추모제를 지냈다. 어버이날(5월 8일)엔 경기도 고양 노인복지관에서 고인과 함께 일했던 금사향, 명국환 등 원로가수들과 추모공연도 연다. KBS 1TV ‘가요무대’는 지난 3월 18일 밤 10시 ‘반야월 특집방송’을 내보냈다. 김광남, 설운도, 문희옥 등 10여명의 가수들이 반야월의 대표곡을 불렀다.

‘친일논란’ 일자 국민들에게 사과
1917년 경남 마산서 태어난 반야월은 1939년 태평레코드사를 통해 데뷔했다. 가수와 작사가로 활동하면서 ‘울고 넘는 박달재’ ‘불효자는 웁니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 ‘소양강 처녀’ 등 수 많은 히트곡을 냈다. 그는 KBS 마산방송국 문예부장, 한국음악저작권협회 고문, 한국전통가요사랑뿌리회장 등을 지냈다. 일제말기 군국가요를 부른 이력으로 친일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던 그는 2010년 “매우 후회스럽다”며 국민에게 사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