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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시론] 너도나도 머리 염색, 과연 무해한가

  • 입력 2003.12.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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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R]의료계에 불어온 ‘보톡스 바람’도 이러한 열풍과 그 맥을 같이한다고 본다. 보톡스는 그 시술의 부작용을 떠나 근래 가장 괄목할 만한 ‘늙음 가리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에게 가장 광범위하게 쓰이는 ‘늙음 가리기’ 방법으로는 모발 염색을 꼽을 수 있다. TV 화면에 나타난 농어촌 사람들의 얼굴에 굵직하게 파인 주름살에 걸맞지 않게 머리카락은 검게 물들여져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듯이 모발 염색은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국내 염모 관련 시장 규모가 2천5백억 원에 이른다는 통계 자료가 이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기야 하얀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던 이승만 대통령의 모습을 본 이후 어느 대통령의 머리카락이 백발(白髮)이었는지 떠오르지 않을 정도이다. 요즈음 젊은 세대들이 자기 개성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고자 머리카락을 여러 색깔로 염색하더니 급기야 유치원생까지도 노란 머리를 나풀거리며 유행의 물결에 합류하고 있다.

우리는 어느덧 TV 화면에서 금발의 ‘변종 한국인’을 보는 것이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정도로 모발 염색에 익숙해졌다. 이러한 현상이 그저 한때의 유행이고 멋이려니 생각하기에는 전문의의 입장에서 심히 우려되는 바가 있어 그 문제점을 한번 짚어보고자 한다. 얼마 전 소비자보호원에서 머리 염색 때문에 비롯된 각종 피해에 대하여 보도한 바 있다. 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염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은 두피 손상, 화상, 탈모증 등인데 이로 인해 현재 우리나라 소비자가 겪는 피해는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머리를 염색하는 데 사용하는 염모제의 주요 성분은 파라페닐아민, 디아미노토루엔스, 디아미노아이솔 등 여러 화학 물질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화학 물질들 대부분이 피부에 독성 또는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성분이 든 염색약을 사용할 경우 두피 화상 또는 모발 손상이 일어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염색을 하면 단순히 모발이 손상되는 정도의 피해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매우 위험할뿐더러 몇 가지 아주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있다. 우리들의 검은 머리카락을 형형색색의 다양한 빛깔로 염색하려면 일차로 머리카락의 검은색을 연하게 만드는 탈색의 과정(bleach)을 거치고, 그 이후에 원하고자 하는 색을 얻는 염모제에 의한 염색 과정(coloring)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러한 탈색과 염색 과정에서 암모니아나 과산화수소뿐 아니라 때로는 과황산암모늄 같은 피부에 자극성이 강한 화학 물질이 사용된다는 점이다. 더구나 시중의 대부분 미용실에서는 이들 물질의 화학 반응 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하기 위해 전열 기구들을 과도하게 사용하고 있다. 즉, 모발에 염색제를 바르고 화학 반응을 촉진하기 위해 비닐로 감싼 후 전열캡을 그 위에 덧씌운다. 하지만 이때 전열캡에서 발사되는 고열로 인해 환경 호르몬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유해 화학 물질이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그 유해 물질은 호흡기를 통하여 인간의 폐로 흡입되거나 두피 조직을 통하여 머리로 흡수될 수 있는데, 이는 원자폭탄에 의한 ‘피폭 현상’에 견줄 수 있다 하겠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고려의대 예방의학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다. 연구팀은 머리 염색 전후에 피검자의 혈액을 채취해서 세포핵 DNA가 손상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림프구의 유전자 변이를 관찰하였다. 그 결과 염색약의 화합 물질들이 피부를 통하여 흡수되어 직·간접적으로 DNA를 손상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결과는 머리 염색의 유해성에 대해 의학계가 지금까지 보여온 우려에 큰 밑줄을 그어준 성과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는 머리 염색이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연령층이 아주 낮은 어린아이들조차도 반복적으로 행한다는 사실이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이러한 '피폭'의 결과, 10년 또는 20년 후 인체에 돌이킬 수 없는 악성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에 더욱 염려스러운 것이다.

따라서 머리 염색의 유해성을 소비자들에게 보다 널리 알리고, 지금의 머리 염색 과정에서 전열캡을 사용하는 것도 반드시 금지해야 한다. 또한 머리 염색에 사용하는 염료는 자극이 강한 화학 제품이므로 시중에 범람하고 있는 저질의 염료 대신 품질이 공인된 염모제를 사용하는 것이 그 피해를 극소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본다. 아울러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화학 물질의 무분별한 사용을 규제하고 감시해야 할 보건복지부나 식약청 당국이 이러한 폐해를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국민의 건강 문제에는 아랑곳없이 단순한 ‘시장 논리’로 감시·감독 기능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이 글의 일부분이 2001년 12월 20일자 '조선일보 진료실 발언대'에 실렸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