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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시론]“의료보험제도탓만 하고 있을 것인가?”

입법기관 등에 의료인 진출해야 … 앞을 보는 장기포석이 필요할 때

  • 입력 2004.09.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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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의사들은 항상 앞서가는 정부 정책을 뒤쫓아가느라 바쁜 처지에 있었다. 4년 전의 의약분업 시행초기의 의료계의 대응이 대표적인 예가 아닌가 싶다. 현재도 조제 위임권을 찾아오겠다며 기치를 높이 들고 있지만 국민들이 얼마나 공감할지는 미지수이며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의약분업은 싫든 좋든 이제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자살의 문제나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 문제 같은 것들은 사회문제이자 의료문제이다. 자살이나 중독으로 인한 문제는 의료비 증가로 전체의료비 지출을 높이고 국가 전산망이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하는 의료인들에게는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필요 없는 지출이 줄어든다면 정부에서도 의사들을 지금처럼 알게 모르게 압박하는 분위기가 더 강화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료인들도 국민전체의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동참하려는 노력도 있어야 할 것 같다. 정신의학자들은 알코올 중독을 흔히 ‘만성 자살(chronic suicide)"이라고 부른다. 많은 수의 알코올 의존 환자들은 자신의 신체기능이 엉망이 될 때까지 술을 마셔 결국 폐인이 되는 수가 많으며, 흔히 가족해체나 가정파탄의 문제를 함께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알코올 의존 환자들이 처음부터 정신과에 오는 경우는 실제로는 많지 않다. 오히려 “주사가 좀 심하다.”라는 말을 흔히 듣는 사람들로 간 기능 등이 나빠져 내과나 가정의학과를 찾는 수가 더 많다. 이런 환자들에게 정신과에도 한번쯤 찾아가 진단을 받아보라고 권유한다면 국민전체의료비 절감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수익 보장된다면 시간에 쫓기듯 진료하지 않을텐데…”
 
최근에 어느 대학병원 심장내과를 찾은 환자의 약 21%가 심장병이 아닌 공황장애(panic disorder)였다는 전문지의 보도가 있었다. 만약 환자의 정신적 고통도 생각하는 의사라면 당연히 이 분들에게 “당신은 심장병이 아니고 공황장애라는 병이니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자문 조정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는 대학병원은 정직한 병원으로 수입도 늘어날 것이다. 두통과 어지러움을 주로 호소하는 우울증 환자가 있어 이명 증세까지 있어 모 대학병원에 의뢰했었다. 그 환자 얘기가 대학병원 교수께서 책상에 앉지 않고 진료한 후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도 전에 빨리 나가라는 태도를 보였고 옆에 있던 간호사 역시 다음 환자를 호명하여 별 수 없이 밀려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특진예약을 해 진료를 받았는데 그 교수가 퉁명스럽게 ?당신 병은 쉽게 낫는 병이 아니다.?며 설명도 없이 약이나 먹으라고 하여 처방을 받아오며 너무나 실망했다고 한다. 물론 지극히 일부 환자의 경험이지만 대체로 환자들에게 대학병원 교수님들은 한편으로는 권위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좀 인정이 메마른 의사로 비춰지는 것 같다. 물론 대학병원 선생님의 불친절만을 탓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봐야하는 제도와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처럼 한 시간에 4~5명(내과기준) 정도만 진료를 해도 충분한 진료수익이 보장된다면 앞의 그 교수님도 그렇게 시간에 쫓기듯 재촉하며 진료를 서두르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된다.

“의사 목소리 적극적으로 낼 수 있는 곳 진출 필요”

의사(醫師)들은 다른 직종과는 달리 같은 사라고 해도 스승사(師)자가 의(醫)자 뒤에 붙는다. 예전에는 스승만큼 존경스러운 존재로 생각되었으나 오늘날 의료인들은 ‘의료기술자’로 인식되는 측면이 많다. 나는 가끔 오래 전에 방영되었던 ‘허준’이나 ‘대장금’에 왜 많은 국민들이 열광하며 시청했는지를 돌이켜본다. 거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인술을 베풀기도 했지만 백성들의 마음에 파고드는 단순한 기술자가 아닌 심의(心醫)였다. 물론 이것은 방송이 만들어낸 환상이며, 많은 국민들은 집단 최면에 걸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양의학을 전공한 의료인들 중에도 허준이나 대장금 버금가는 인물들도 있으나 불행하게도 의료인들 중에 그렇게 삶의 지표가 되고 인생의 스승역할을 하는 이의 족적이나 업적은 허준이나 대장금처럼 방송을 통해 부각되는 일이 거의 없다. 거창한 의료개혁을 외치기 이전에 의사들은 환자에게 조금 더 낮은 자세로 가까이서 친절하게 시간을 내주려는 노력과 배려가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의사들도 현재는 건강하지만 누구나 병에 걸릴 수도 있는 환자 후보생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만약 현행 의료보험제도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강변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의료보험 시행 초기에 의사들은 대부분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약사나 한의사와 달리 정부 정책을 입안하는 기관에서 일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에 의사들의 입장을 전달하거나 정부정책에 반영할 창구를 갖지 못한 상태에서 많은 세월이 흘렀다. 지금부터라도 법조인들처럼 자신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낼 수 있는 의료 행정기관이나 입법기관에도 의료인들이 진출해야 할 것이다. 이제 의료계는 사후 약 방문만 발행하는 식의 대응보다는 사전 대비를 할 수 있는 장기포석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