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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아이들이 웃는 그날까지…

순천향대학교 소아청소년과 이동환 명예교수

  • 입력 2016.03.28 14:38
  • 기자명 김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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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웃는 모습이 좋아서 의사가 되었다. 하지만 의사가 되고 나서는 아픔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의 눈물을 닦느라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마음속에 기쁨을 잃지 않는다. 바로 자신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의 환한 웃음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과거 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신생아들 가운데 정상아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능이 떨어지고, 결국은 평생을 정신지체자로 살아야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

이유도 모르고 병명도 뚜렷이 없던 당시에는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우리 아이가 건강하기만을 바라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 아이의 부모는 물론이고 온 가족에게 고통과 슬픔을 안겨 주었던 그 병이 유전성대사질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알려준 주인공은 바로 소아청소년과의 명의이자 유전성대사질환의 선구자로 통하는 이동환 교수였다.

이 교수의 우리나라에 신생아 대사이상 검사를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해 지금도 매년 수백 명의 신생아들이 정신지체자로 자라는 것을 예방하고 있다.

이 땅 모든 가정의 소중한 꿈을 지키며, 어린이들에게 건강한 희망을 전해주는 이동환 교수를 ‘명의 초대석’을 통해 만났다. 

유전성대사질환의 불모지, 처음으로 신생아대상이상검사 실시

“유전성대사질환은 선천성대사이상질환이라고도 하며, 아기의 신진대사에 필요한 효소가 선천적으로 없거나 부족해 뇌, 간, 신장 등에 유독 물질이 축적됨으로써 치명적인 장애를 일으키는 질환으로 반드시 조기에 치료해야 합니다.”

이동환 교수는 현재까지 발표 유전성대사질환의 종류만도 600여종 이상이며, 지금도 새로운 병들이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 교수가 초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평생을 정신지체자로 살아야 하는 무서운 병인 유전성대사질환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인 1982년 10월 일본국제협력단이 지원하는 해외연수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부터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인은 물론이고 의학계에서도 유전성대사질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 교수는 일본대학에서 유전성대사질환 분야를 연수하고 귀국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순천향대학병원에서 신생아대사이상검사를 실시했다.

“당시에는 일반인들의 인식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 산모를 설득해 검사를 받게 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비용 문제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외국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차츰 인식을 넓혀 나갔습니다.”

그렇게 이동환 교수는 유전성대사질환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신생아대사이상을 실시하면서 수많은 아이들과 가정에 희망을 찾아 주었다.

‘愚公移山’의 마음으로 정부를 설득하다!

전국으로 검사실을 확대시키던 이 교수는 이를 국가사업으로 확산시켜야 한다는 결심을 하고, 정부에 사업 시행의 필요성을 알렸다.

한 아이의 인생과 한 가족의 행복,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일이라 정부에서도 분명히 반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교수의 예상은 허무하게도 처음부터 빗나가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 직원들에게 신생아대사이상검사가 왜 국가사업으로 진행이 되어야 하는지를 4년 동안 설명을 하고 겨우 이해를 시켰지만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보건 담당관을 찾아 설득을 해야 했습니다.”

이동환 교수는 ‘만약 당신의 아이가 이런 병이었다면 어떠했겠는가’, ‘선진국을 포함해 이미 60여 나라에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는데 왜 우리나라만 뒤쳐져야 하는가’라며 끝없이 매달렸다.

‘명색이 대학교수가 자존심도 없이 저렇게 해야 하나’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명예니 자존심이니 따질 겨를이 없었다.

지금도 고통 받고 있는 수십 수백 명의 아이들을 생각하면 더한 것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쓸데없는 짓이라며 손가락질 받던 우공愚公은 드디어 산을 옮기게 된다, 그것도 5년, 아니 9년 만에…

1991년부터 모자보건사업으로 신생아대사이상검사를 시작했고, 1997년부터는 정부 예산으로 우리나라에서 태어나는 모든 신생아에게 검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이 결과 매년 100명 이상의 선천성갑상선기능저하증과 10명 이상의 페닐케톤뇨증 환아를 조기에 발견해 조기 치료함으로써 연간 백여 명 이상의 정신지체아 발생을 예방하고 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이 교수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하게 되었고, 지금도 어디선가 고통 받는 아이들과 가정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신생아 스크리닝 질환 확대는 가정과 국가 모두를 위한 것

“최근 들어 부모의 학대와 방치로 어린 생명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태가 빈번히 생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인을 알지 못하거나 치료시기를 놓쳐 짧은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미 정부는 신생아 유전성대사질환의 스크리닝을 국가사업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그 범위를 넓혀 희귀질환으로부터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유전성대사질환검사를 신생아는 700여만 명에 달하며, 이 중 2,600여 명의 신생아에게서 질환이 발견되었다. 이 아이들은 조기진단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이동환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선천성갑상선기능저하증과 페닐케톤뇨증을 포함한 6개 항목에만 시행하고 있어 여전히 많은 질환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이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질환이 ‘폼페병’으로 우리 체내 세포 기관인 리소좀 내 당원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해 생기는 희귀 유전질환으로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무서운 병이다.

“다행스럽게도 폼페병은 희귀질환으로는 드물게 치료제가 개발되어 있는데, 조기진단만이 폼페병 환자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미국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실시하는 검진 외에 53가지의 대사질환을 2분 안에 검사하는 방법인 탄뎀매스스크리닝(Tandem Mass Screening)을 포함해 폼페병, 파브리병 같은 리소좀 축적질환 검사를 모두 국가사업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신생아 스크리닝 질환 환의 확대는 아이들을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조기진단으로 치료시기를 앞당겨 국가 건강보험 재정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4월 15일은 세계 폼페병의 날이다. 내년 이날이 오기 전까지 이동환 교수의 바람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정부의 의지에 달려있다.

의술도 봉사도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것

“1999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뮤코다당증 환아에게 골수이식을 성공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희귀질환을 진료하는 의사다보니 다른 의사들이 찾아내지 못한 희귀질환을 찾아내어 병명을 붙였을 때 보람과 희열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연구실을 지키며 아이들이 고통 없이 환하게 웃을 수 있도록 의사로의 직분이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유전성대사질환의 선구자로 처음으로 신생아대사이상검사를 실시한 이동환 교수, 그는 검진과 치료 이외에도 병을 알리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1988년부터 유전성대사질환과 함께 소아비만과 소아성인병에 대한 대규모 연구를 시작했고, 1996년에는 대한비만학회 소아비만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매년 비만캠프를 열어 소아비만의 위험성에 대해 알렸다.

이어 페닐케톤뇨증(PKU)을 알리기 위해 ‘나는 PKU입니다’를 출간하고, 2001년부터는 매년 PKU 캠프를 열어 희망을 전하고 있다.

한편 대한유전성대사질환학회의 창립을 주도하고, 올해부터는 대한의학유전학회의 회장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교수에게는 반드시 이루고 싶은 꿈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북한에서 신생아대사이상검사를 실시하는 것이다.

“평양에 매달 천 명씩 분만을 하는 산원이 있는데, 그곳에서 신생아대사이상검사를 무료로 하고 싶습니다. 이 검사는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하고 있는데, 아직 실시하지 않는 곳이 네팔과 라오스, 그리고 북한입니다.”

2000년대부터 신생아대사이상검사를 아시아지역으로 확대시키기 위해 내전과 테러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몽골, 스리랑카 지역을 다녔던 이 교수. 지금도 해마다 네팔을 찾으며 의료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가 못내 아쉬운 지역은 바로 북한이다.

지난해 2월 정년퇴임을 하고도 명예교수로 임명받아 순천향대학병원에서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 교수. 그가 이처럼 끊임없는 에너지를 불태울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 교수는 바로 ‘사랑’이라고 말한다. 집의 가훈도 ‘서로 사랑’이고, 교실의 모토도 ‘사랑으로’다.

“서로 사랑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단 한순간도 숨 쉴 수 없습니다. 세상에 모든 아이들을 내 아이라 생각하고 돌보는 마음, 그것이 사랑입니다.”

한 주 가운데 손자?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며, 매순간마다 하나님의 자녀임을 감사하며 기도를 드린다는 이동환 교수.

그가 그토록 바라는 ‘세상 모든 아이들이 웃는 그날’을 사랑으로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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