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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nting & Crime]골리앗의 참수가 지니는 의미
[1L]루벤스 작:'골리앗을 내려치는 다윗'(1616) 로스 앤젤스, 노르톤 시몬 미술관

다윗(David)은 베들레헴의 이새의 아들로 양치기였는데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사랑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양떼가 사자의 습격을 받았을 때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 혼자 사자를 추격해 죽이고 가축을 구하는 일이 많았다. 또한 다윗은 훌륭한 음악가였다. 그는 노래를 잘했을 뿐 아니라 가축을 돌보는 무료한 시간 동안 독학으로 배운 하프로 노래를 직접 만들어 부르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노래를 들으려고 사람들이 멀리서 오기도 했다.
이 양치기 소년이 바로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 40년(기원전 1000~960)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한 다윗이다. 양치기 소년에서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된 다윗은 나라의 영토를 확장해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으며 예루살렘을 나라의 수도로 정했다. 그가 양치기에서 이스라엘 역사의 중앙에 우뚝 서게 될 때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양치기 왕이 이스라엘의 역사에 서는 과정
당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은 하느님의 눈밖에 나는 어리석은 행동을 일삼고 있었다. 이때 예언자 삼무엘이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사울이 모르게 다윗을 차기 왕으로 지명하고 머리에 기름을 부어주었다. 당시 사울은 우울증에 걸려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를 보다 못한 사울의 신하들은 다윗으로 하여금 음악을 연주해 사울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그를 음악사로 추천해 궁궐에 들어오게 했다.
사울은 당시 필리스틴 사람들과 전쟁을 치루고 있었는데, 필리스틴 사람들에게는 크고 무거운 무기를 쓰는 가드 출신의 골리앗(Goliath)이라는 강력한 거인 장수가 있었다. 그래서 사울의 군대는 맹장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계속 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골리앗은 신장이 여섯 큐빗 한 뼘으로(한 큐빗: 45cm, 한 뼘: 13cm), 약 283cm나 되는 장대한 신장을 가진 거구였다. 그는 머리에 놋으로 된 투구를 썼고, 몸에는 '어린(魚鱗)갑옷'이라는 천 위에 비늘 모양의 놋이나 철판 조각을 붙여 만든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갑옷의 무게는 놋으로 오천 세겔(한 세겔 : 11.5g), 즉 57.5kg이나 되었다. 다리에는 다리를 보호하는 놋으로 된 경갑(脛甲)을 두르고 등에는 '놋 단창'을 메고 있었는데, '놋 단창'은 어깨의 뒷부분에 메는 창으로 멀리 던지기 위해 창 자루에 고리가 달린 가죽 끈을 감아 놓았다. 그가 가진 창날은 철 육백 세겔, 즉 7kg이나 되었다.
이와 같이 필리스틴 군대의 선봉장이었던 골리앗은 신장이나 무기 등에서 보통 사람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마치 우뚝 솟은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이 보였다. 골리앗은 이스라엘 진영을 향해 서로 대표를 선택해 결투를 하고, 지는 편이 이긴 편의 종이 되기로 약속하자고 외쳤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울과 이스라엘 군대는 크게 두려워하며 떨고 있었다. 그때 다윗은 골리앗이 하느님과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모독한다고 생각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크게 의분을 느꼈다.
사람들은 다윗에게 사울이 골리앗을 제압하는 자에게는 많은 재물을 주고 왕의 사위가 되게 할 것을 약속했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다윗은 사울에게 자신이 골리앗과 싸울 것이므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사울은 소년의 몸으로 골리앗과 싸우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렸다. 그러자 다윗은 자신이 양을 칠 때 사자와 곰도 쳐 죽였는데,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독한 필리스틴인을 치지 못하겠느냐고 하며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구해 주신 것처럼 골리앗으로부터도 구해주실 것이라고 대답했다. 사울은 다윗을 거듭 말렸으나, 그의 태도가 완강한 것을 보고 그에게 자신이 입던 투구와 갑옷을 주었다.
그러나 다윗은 무거운 갑옷과 칼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사양하고 맨 몸으로 나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창이나 칼 대신 손에 막대기 하나를 들고 골짜기에 흐르는 시내에 있던 매끄러운 돌 다섯 개와 물매를 가지고 골리앗과 싸우려고 나아갔다. 물매(켈라)란 돌을 넣을 수 있도록 양가죽 끈으로 만든 망으로, 가운데 부분이 넓게 엮어져 있었다. 그리고 물매의 한쪽 끝에는 끈이 달려있어 엄지에 연결해 물매를 돌리면서 돌을 던질 수 있게 돼 있어서 막대기와 더불어 목자들에게는 양을 지킬 수 있는 필수적인 도구였다.
골리앗은 중무장을 하고 다윗과 싸우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그는 젊고 용모가 아름다운 다윗을 보고 그를 업신여겼다. 골리앗은 다윗에게 "네가 나를 개로 알고 막대기를 들고 나왔느냐?"고 빈정대면서 "내가 너를 새와 짐승의 밥이 되게 해주마!"라고 소리치며 자기의 신의 이름으로 그를 저주했다. 다윗은 골리앗에게 대답했다.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이 말을 들은 골리앗은 다윗을 치기 위해 다윗이 있는 곳으로 오기 시작했다. 이에 질세라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물매를 돌리면서 나아갔다.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물매 돌을 꺼내 물매로 골리앗의 이마를 향해 돌을 날렸다. 그 순간 돌은 골리앗의 이마 한가운데를 정통으로 맞혔다. 총알 같이 날아온 돌에 맞은 골리앗은 단숨에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때를 놓칠세라 다윗은 쏜살같이 달려가 골리앗의 칼을 빼 그의 목을 내리쳤다.
루벤스의 <골리앗을 내려치는 다윗> 이런 장면을 실감나게 그린 것은 화가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의 <골리앗을 내려치는 다윗(1616)>이라는 그림이다. 갑옷을 입은 골리앗은 돌로 이마를 맞고 땅에 쓰러져 있고 그의 앞에는 다윗이 지녔던 막대기와 물매 끈이 놓여져 있으며, 다윗은 발로 골리앗의 얼굴을 밟고 저항할 수 없게 하면서 칼을 쳐들어 지금 막 골리앗의 목을 치려는 순간이다.
[2R]카라바조 작:'골리앗의 목을 치는 소년'(1599-1600)마드리다, 프라도 미술관

이탈리아의 화가 카라바조(Caravaggio 1573~1610)도 다윗과 골리앗을 그렸는데 <골리앗의 목을 치는 소년(1599~1600)>이라는 제목의 그림에서 골리앗은 이미 사망해 다윗은 그를 올라타고 그의 목을 쳐 몸에서 분리했다. 검은 수염과 두터운 눈썹이 그가 살았을 때의 호걸성을 나타내며 이마 가운데는 돌로 맞은 상처가 크게 나 있다. 다윗이 맨손에 물매로 골리앗을 제압하였다는 것의 표현으로 목을 친 그의 손에는 물매 끈이 쥐어져 있다. 이 광경을 손에 땀을 쥐고 보고 있던 필리스틴 군사들은 혼비백산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이스라엘과 유다 군사들은 즉각적으로 필리스틴 군사들을 추격하며 필리스틴 군을 완전히 섬멸하여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겨 전쟁을 승리로 이끈 다윗은 왕과 이스라엘 국민들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으며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만 갔다.
이러한 다윗의 승리한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한 레니(Guido Reni 1575~1642)의 <다윗(1605)>에서는 털 달린 붉은 모자를 쓴 아직 소년의 어린 티가 나는 다윗이 참수한 골리앗의 거대한 머리 위에다 손을 얹고 있다. 네모난 돌받침대 위를 구르는 골리앗의 머리를 승자가 손을 내밀어 어루만지며 온정을 베푸는 한편 승리에 대한 자축이라도 하는 듯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 참수된 골리앗의 얼굴과 승리자인 다윗의 얼굴 크기를 비교하면 골리앗이 얼마나 거인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와 대결해 이기거나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현저한 차이를 극복하고 승리한 당사자는 다윗, 그 상대자는 골리앗이라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3L]레니 작:'다윗'(1605)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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