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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시론]국립 서울병원에 대한 논란

현대화 사업 둘러싸고 쟁점화 전망… 정신질환에 대한 잘못된 시각 여전

  • 입력 2006.06.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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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5월 19일 취임 100일을 맞았다. 유 장관의 100일은 의외로 무탈하고 조용했다. 의외라는 것은 그의 임명을 놓고 벌어졌던 여권 내 풍파, 그 전에 유시민이라는 개별 정치인이 보여온 삶의 궤적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유 장관은 취임 전 삼대 언론사들로부터 온 국민의 미운오리새끼 취급을 받았고, 심지어 자신이 속해 있던 열린우리당으로부터도 차라리 장관으로 내보내야 당이 화합을 이룰 수 있다는 자조적인 얘기까지 들었었다. 그러나 취임 전에도 장관으로서 업무능력 평가에서는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었다. 취임 후 유 장관 모습에 대해 복지부 주변에선 "알려진 것과 많이 다르더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 상황 대처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도 들린다. 반면, 장관을 비난하는 소리는 듣기 어렵다. 어느 치하(治下)라고 안 좋은 소리를 입에 담을까마는 굳이 숨기려고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이 정도면 유 장관은 일단 변신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대단한 일이다. 사람 천성을 후천적으로 바꾸려면 대단한 노력과 의지가 필요하다. 59년생인 유 장관 나이는 마흔일곱. 그 나이에 '사람 달라졌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천성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억제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00일 동안 유 장관의 특이한 행적이나 돌출적인 발언이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이 저렇게도 많이 변할 수 있구나'하는 감탄을 하게 만들었다. 어느 누구도 정신질환자들의 인권이나 병원 접근성 제고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5월 15일 '국립서울병원 현대화 사업'에 대한 의견을 묻는 공개질의서를 서울특별시장 후보에게 발송했다. 복지부는 이 질의서를 통해 국립서울병원을 현 위치에 재건축하는 방안, 서울 시내 다른 부지로 이전하는 방안, 수도권으로 이전하는 방안에 대한 각 후보의 의견을 물었다. 이를 계기로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현재 지역주민의 편견과 반대 속에 갈등을 겪고 있는 국립서울병원 현대화 사업을 둘러싼 문제가 쟁점화될 전망이다. 1962년 설립된 국립서울병원은 현재 시설이 노후화돼 이에 1989년 '국립서울병원 현대화 사업을 수립', 1995년부터 이전을 추진한 지 7년이 경과했다. 국립서울병원은 원래의 병원 이름이 국립서울정신병원이다. 그런데 2002년 5월부터 정신(mental)이라는 글자를 빼고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이것은 사회적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고 있는 환자와 보호자를 위하고 주민들의 민원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지역주민의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이전과 재건축 모두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복지부는 국립서울병원을 국립정신건강연구소, 지역주민건강증진시설 등을 포함한 초현대식 병원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유 장관은 이에 따라 "국립서울병원이 현대화해야 지역주민의 건강증진과 국가 정신보건의료의 발전이 가능하다"며 서울시민과 예비 서울시장의 협조를 당부했으며 "현 부지에 재건축을 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며 2003년 보건복지부가 국립서울병원의 재건축을 결정했으나, 재건축 허가권을 가지고 있는 광진구청이 난색을 표명했고, 더욱이 지난해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재건축을 위한 기본설계비가 삭감되었다고 설명했다. 선거철만 되면 국립서울병원 이전 문제가 단골 메뉴로 대두되며 국회의원이든 구청장이든 모든 입후보자들이 입을 모아 국립서울병원의 이전을 외쳐 왔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뉴타운 건설이라든지 지역주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어느 누구도 정신질환자들의 인권이나 병원 접근성 제고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국립병원에 다니는 환자(원주민)들에게 "병원을 다른 곳으로 옮겨도 되느냐"고 한 번도 의견을 물어본 적도 없으며, 그 사람들의 의견은 완전히 무시된 채 주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만 관심이 집중돼 있다. 주민들은 정신병원 때문에 땅값이 오르지 않는다고 아우성이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약 40년 전 국립서울병원이 지어졌을 당시에는 주위에 주택은 하나도 없는 서울의 변두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다시 말하면 이주민(移住民)이 원주민(原住民)더러 삶의 터전을 내놓고 나가 달라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드러내놓고 단체를 결성하거나 집단적으로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힘없는 환자들은 그저 국가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유 장관, 서울시장 후보들에게 국립서울병원 이전 문제에 관한 입장 밝힐 것 촉구복지부는 이어 각 후보들에게 서울시장에 당선된다면 지역주민의 건강증진과 국가 정신보건의료의 발전을 위한 정책 수립방향을 물었다. 복지부는 각 후보들에게 "국립서울병원을 현 위치에서 현대식으로 재건축하는 방안에 대한 지원여부와 서울시 내에 다른 부지를 확보하여 이전하는 방안에 대한 의견, 서울시 외곽의 별도부지로 이전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를 5월 25일까지 통보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유 장관이 지난 5월 15일 서울시장 후보들에게 편지를 보내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국립서울병원 이전 문제에 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촉구하자, 이에 대해 야당은 물론 열린우리당까지 "부적절한 태도"라며 반발하고 있다. 현직 장관이 선거 출마 후보들에게 서한을 보내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한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국립정신병원은 주민들 반발로 시설 개선이 안 되고 있고 이전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원희 복지부 정신보건과장은 "질의서는 유 장관의 직접 지시에 의해 보낸 것"이라며 "후보들의 회신 내용도 공개할 계획"이라고 했다.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와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 측은 "선거를 앞둔 시점에 공개질의서를 보내 답변을 촉구하는 것은 장관으로서 적절한 태도가 아니다"고 했다. 민주당 박주선 후보 측은 "자신이 하기 어려운 일을 후보들에게 떠넘기는 술수"라고 했고,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은 "여의도에 안 계시는 유 장관이 여의도의 뉴스메이커가 되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했다. 정치인들은 국정감사 때가 되면 복지부 장관에게 국립서울병원의 이전 문제가 어떻게 돼가고 있느냐고 되물을 것이다. 국민연금 개혁, 의료급여, 건강보험 약제비 등 재정 효율화, 식대 급여화, 장애인 복지 등 현안이 산적해 있는 가운데 약가제도 변경과 관련한 다국적 제약사의 반발 움직임에 대해 유 장관은 "비관세 무역장벽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또한 미국과의 FTA 협상과 더불어 의료비 부담이 올라갈 우려가 있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 "막연히 서민의 의료비 부담이 올라간다는 우려의 근거가 뭔지 모르겠다"며 "미국이 공공의료와 건보에 대한 어떠한 요구도 없었다"고 했다.서울시장 후보에게 국립서울병원 건립과 관련한 공개질의서를 보낸 것이 정치적 행동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유 장관은 "수도권에 딱 하나 있는 정신장애인 시설이 썩어가고 있음에도 주민들의 반대로 옮기지도 못하고, 현재의 자리에 다시 짓지 못하는 상황이 5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며 "서울시장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 사업이라 공개질의서를 내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유 장관은 기본적으로 정치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주민들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10년이 넘도록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병원 이전이나 신축 문제를 이번 선거기간 동안에 욕을 먹더라도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일부 언론이기는 하지만 정신병원을 혐오시설 운운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 아직도 팽배해 있는 정신질환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한 번 더 확인하게 된다. 정신병원을 주민들이 혐오시설로 평가한다고 하자 어느 환자는 그러한 주민들이 오히려 혐오스럽다고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