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조국광복 기쁨·감격 노래한 ‘귀국선’

  • 입력 2017.08.17 10:13
  • 수정 2017.09.12 16:44
  • 기자명 왕성상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오네 돌아오네 고국산천 찾아서
얼마나 그렸던가 무궁화꽃을
얼마나 외쳤던가 태극 깃발을
갈매기야 웃어라 파도야 춤춰라
귀국선 뱃머리에 희망도 크다
돌아오네 돌아오네 부모형제 찾아서
몇 번을 울었든가 타국살이에
몇 번을 불렀든가 고향노래를
칠성별아 빛나라 달빛도 흘러라
귀국선 고동소리 건설은 크다
돌아오네 돌아오네 백의동포 찾아서
얼마나 싸웠던가 우리 해방을
얼마나 싸웠던가 우리 독립을
흰 구름아 날아라 바람아 불어라
귀국선 파도 위에 새 날은 크다

광복 70주년이었던 2015년 8월 14일 부산 앞바다. 임시공휴일이었던 그날 오후 5시. 1300t급 해군수송선 ‘해방귀국선’이 자갈치시장 부두에 닻을 내렸다. 귀국동포들의 ‘해방의 노래’, ‘아리랑’ 합창이 울려 퍼졌다. ‘해방귀국선’엔 허름한 옷차림에 봇짐을 진 귀국동포 250여명이 타고 있었고 부두엔 태극기를 든 환영인파가 몰려들었다.

부산시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부산 남항, 자갈치시장 부두, 광복로 일대에서 ‘감격의 그날, 1945년 해방귀국선 재현 환영행사’를 연 것이다. 3000여 시민들이 참여, 일제에 끌려간 조선인들이 광복직후 맞은 해방의 기쁨과 고국으로 돌아온 감격적 순간을 70년 만에 되살려 눈길을 모았다. 부둣가에선 부부, 홀어머니와 아들, 형제, 자매, 연인의 만남 등 눈물겨웠던 상봉장면이 펼쳐졌다. 광복 때 귀국선에 탔다가 의문의 폭침사고를 당한 우키시마(浮島)호 희생자들 추모제도 곁들여졌다. 영도대교 아래선 위안부 피해할머니를 위로하고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해원상생 대동 한마당’도 열렸다.

광복절 날 전파를 가장 많이 타는 전통가요

해마다 광복절(8월 15일)이면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기리는 갖가지 행사들이 전국적으로 열린다. 추억의 노래를 들려주는 관련 방송프로그램도 빠지지 않는다. 전파를 가장 많이 타는 전통가요는 조국광복의 기쁨을 노래한 ‘귀국선(歸國船)’.

손로원 작사, 이재호(본명 이삼동) 작곡, 이인권 노래인 ‘귀국선’은 1949년 발표됐다. 1945년 8월 15일 조국광복의 기쁨을 담은 이 곡은 전형적인 트로트로 밝은 느낌을 주는 희망가이기도 하다. 인기가수 이미자, 나훈아, 설운도, 김용임, 김연자 등이 리메이크해 불렀을 만큼 유명하다.
노래엔 일본, 중국, 대만 또는 먼 남쪽 나라에서 돌아오는 우리 동포들의 감격과 기대가 멜로디에 녹아있다. 교통편이 여의찮았던 그 시절 몇 달이고 기다려 배를 타고 돌아온 동포들의 힘들었던 삶의 애환과 해방조국에 대한 다짐도 묻어난다. 노랫말의 행간엔 징용, 징병 등으로 죽음 직전의 힘든 생활을 해오던 동포들이 그렇게도 그렸던 부모형제와 조국을 찾아 잘 살아보겠다는 꿈과 바람도 스며있다.  

노랫말은 당시 35살의 젊은 작사자 손로원이 부산항에서 해방을 맞아 일제강점기 때 먼 나라에 나가살았던 동포들이 타고 오는 배를 보고 만들었다. 4분의 2박자, 내림나장조인 이 노래는 트로트리듬에 형식이 무시된 28마디의 곡이다. 가사는 3절까지로 돼있다. 들으면 찡하면서도 뭔가 느껴지는 뭉클함을 발견할 수 있다. 3절까지 부르다 보면 가슴 깊이 우러나는 슬픔과 기쁨의 감정이 싹튼다. 노래제목 ‘귀국선’은 나라를 잃고 외국에서 노동자, 밀항자, 일용직, 장사꾼으로 떠돌다 타고 온 배를 말한다.

‘귀국선’을 맨 먼저 취입한 가수는 신세영(본명 정정수)이다. 이인권(1919~1973년)이 부르기로 돼있었으나 연락이 되지 않아서였다. 1947년 9월 선보인 음반은 재미를 보지 못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광복의 축하분위기를 타고 열린 공연을 통해 대중들에게 파고들었다. 그 뒤 중국 상해에서 돌아온 이인권이 6·25전쟁 때인 1951∼1952년 대구 오리엔트레코드에서 다시 취입, 흥행에 성공해 크게 히트했다. 그 전까지 흔히 있었던 일본식 가요(엔가)와는 아주 다른 선율로 개성이 뚜렷한 광복가요 인상을 준 게 돋보인다.

노래가 히트하면서 같은 제목의 영화도 나왔다. 1963년 상영된 ‘귀국선’은 이병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문정숙, 양미희, 김진규 등이 출연했다. 멜로물로 일제강점기 때 두 여성의 슬픈 사연을 담고 있다. 한 여인은 남편을 만나러, 또 한명의 여인은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 일본에 밀입국한다. 둘은 천신만고 끝에 각각 남편과 어머니를 만난다. 그러나 해후의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밀입국자란 이유로 일본경찰에 붙잡혀 귀국하는 송환선에 오른다는 내용이다.

손로원, ‘귀국선’ 노랫말 쓰면서 본격 작사활동

‘귀국선’ 가사를 쓴 손로원은 이 노래를 계기로 작사가로 본격 나섰다. ‘휘바람 불며’(도미), ‘물방아 도는 내력’(박재홍), ‘백마강’(허민), ‘잘 있거라 부산항’(백야성), ‘홍콩아가씨’(금사향), ‘님 계신 전선’(금사향), ‘경상도아가씨’(박재홍), ‘봄날은 간다’(백설희) 등 6·25전쟁 전후로 주옥같은 곡의 가사를 썼다.

이재호는 1938년부터 작곡을 해오다 해방의 기쁨을 안고 손로원이 지은 노랫말을 바탕으로 ‘귀국선’ 곡을 만들었다. 진주출신인 그는 일본고등음악학교 본과(바이올린) 2학년을 수료하고 폐결핵이 악화돼 고향에서 휴양 중 태평레코드사에 관계하는 친구소개로 가요작곡을 하게 됐다. 1945년 광복 후 진주에서 중학교 음악선생으로 일했고, 1949년 이후 대구와 부산에서 ‘귀국선’, ‘아네모네 탄식’을 발표했다. 6·25전쟁 중엔 KBS부산방송국 악단장으로 취임했다. 1956년 지병이 재발, 마산요양원에서 휴양하면서 ‘산장의 여인’을 작곡해 권혜경에게, 영화녹음기사였던 손인호에게 ‘울어라 기타줄’을 취입시켜 히트했다. 가곡으로 작곡했던 ‘고향에 찾아와도’를 내놨고 인기가수 남인수에게 ‘무정열차’, ‘산유화’ 등을 취입곡으로 줬다. 4·19혁명 직후 지병이 악화돼 미발표곡들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이재호가 작곡가로 데뷔하던 때 가수 겸 작곡가로 활동했던 이인권은 ‘귀국선’을 불러 인기가수가 됐다. 무명이었던 그는 단숨에 알아주는 가수가 된 것이다. 그런 가운데 그에게 가슴 아픈 일이 생겼다. 6·25전쟁 중 가수였던 아내를 잃었다. 부부가 다른 연예인들과 군 위문공연을 갔다가 포탄에 맞아 숨진 것이다. 이인권은 그 때부터 노래는 뒤로 하고 작곡에 힘썼다. ‘꿈이어 다시 한 번’(현인), ‘카츄샤의 노래’(송민도), ‘외나무다리’(최무룡), ‘들국화’(이미자), ‘바다가 육지라면’(조미미), ‘후회’(나훈아) 등 많은 곡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