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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tal Clinic]火, 잘 다스리면 생활의 기쁨

  • 입력 2007.01.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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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에서 다루는 장애의 대부분은 정서장애라고 볼 수 있다. 노이로제·정신병·성격장애는 물론이고 뇌세포의 손상으로 오는 기질성 뇌증후군(器質性腦症候群)도 지능저하·기억력감퇴·판단장애와 함께 이전에 가능했던 감정조절에 장애가 있는 것을 볼 때 모든 정신장애는 정서장애라고 할 수 있다. 정서란 감정이라는 말인데 감정 중에서도 주로 화를 잘 처리하지 못하는 데에서 장애가 초래된다.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있어 화를 잘 다루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화는 본성이라고 할 정도로 흔히 경험하고 어떤 면에서는 자연스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화는 다루기에 따라 병의 근원이 되기도 하고 대화의 좋은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화가 나는데 그것을 표현 못하고 억압하게 되는 경우 병이 되지만 적절한 시기와 장소, 방법으로 표현되면 상대와의 관계를 호전시킬 수 있다. 진정한 대화가 될 수 있고, 이전에 몰랐던 사실을 알게 해주고, 화를 표현하지 않았더라면 멀어졌을지도 모르는 관계를 유지시켜주기도 한다. 화는 묘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일단 생겨나면 잘 없어지지 않는다. 억압을 하여 꾹꾹 눌러두면 다이너마이트처럼 농축이 되어 더 크게 터지게 된다. 엉뚱한 대상에게라도 꼭 풀고 만다.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식이다. 그래서 화는 위험한 물건처럼 잘 다루어야 한다. 억압하기보다는 적절히 해소를 하여야 한다. 유머도 화를 잘 처리하기 위한 지혜라고 볼 수 있다.약도 없는 울화병화로 인해 병이 된 예를 들자면 한없이 많지만 소위 ‘화병’이라고 할 수 있는 경우를 들어 보겠다. 30대 후반의 여자인데 결혼하고 난 뒤 얼마 후에 가슴속에 주먹만 한 것이 있어 그것이 탁 올라오면 힘이 쭉 빠지고 속이 체한 것 같고 숨이 차고 말을 못하는 증세가 있어 병원에 왔다. 그동안 한의원에서 ‘화병’인 것 같다하여 한약도 많이 먹었고 약국에서 신경성 약도 많이 먹고 종교를 가져 기도도 많이 했는데 효과는 그때뿐이라서 혹시나 하고 찾아온 것이다. 나름대로 여러 가지 방법을 써봤지만 잘 낫지 않아서인지 의사에게 ‘과연 나을 수 있을까’하는 의심부터 했다. 이 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기독교를 믿는 평범한 농촌 가정에서 자라나 중매로 농촌으로 시집을 갔다. 중매자의 말로는 신랑이 교회에 다닌다고 하였는데 가보니 기독교도 믿지 않고 매일 술과 노름에 빠져 있는 형편이었다. 신랑은 결혼상대에 대한 욕심이 비교적 많았던 이 부인의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신랑과 싸우기도 많이 하였지만 스스로 느끼기에도 속에 화가 쌓이는 것 같았다. 거기에다 기독교를 믿는다고 하여 시집식구들로부터 들볶였다. 남편이 농사자금을 가지고 노름을 할 때는 밤마다 남편을 찾아다녀야 했다. 그런 세월을 10년 가까이 보낸 뒤 몇 년 전에 서울로 왔다. 서울에 와서는 많이 나아지긴 했으나 요즘에도 가끔 그럴 때가 있다고 했다. 이 부인은 버스를 타거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자신이 소리를 꽥 지를 것 같아 긴장이 되곤 했다. 술이라도 마시고 확 풀었으면 병이 안 났을 텐데 꽁한 성격이라 이렇게 됐다고 스스로 진단하기도 했다.화가 날 땐 표현하는 것이 최고이 부인처럼 결혼 후에 처한 상황이 어느 것 하나 힘들지 않은 것이 없는데, 스스로 해결할 수도 없고 남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으며 처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다시 말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오도 가도 못할 때 병이 생긴다. 화는 나는데 그 화도 시원하게 낼 수 없고 받아줄 상대도 없을 때 화가 속에 쌓여 가슴에 덩어리 같은 것이 생긴다. ‘속에 덩어리가 든 것 같다’ ‘치민다’는 말을 환자들을 통해 많이 듣는다. 이것은 화의 뭉치이다. 이런 억압된 화가 속에 자리 잡아 여기저기 아프기도 한다. 그러면 이러한 화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제일 좋은 방법은 자기의 화난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 때 자기의 마음만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되도록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감정을 자극하지 않도록 한다. 남을 비난하지 않고 자신의 반응만을 표현할 때 그 말은 진실하여 상대방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다. 그리고 친구든 친지든 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자기의 마음을 털어놓고 마음껏 얘기할 수 있으면 좋다. 펑펑 눈물을 흘리면서 이야기할 수 있으면 더욱더 좋다. 정 답답하면 야산에 가서 소리를 지르는 것도 도움이 된다.또한 평소에 화를 적절한 시간과 장소에서 적당한 방법으로 나타낼 수 있도록 훈련을 해야 한다. 그러한 훈련은 친한 친구와 솔직한 대화를 통해서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화가 날 때 자기의 마음을 잘 살펴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무엇인가 마음대로 안 될 때 화가 난다. 자기가 무리하게 무엇인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수도 있다. 바라는 마음이 너무 크지는 않은지, 인정이나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충족되지 않아서 그러는 것은 아닌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안으로는 병, 밖으로는 폭력임상경험으로 볼 때 화를 표현하고 있는 한 크게 병이 나지는 않는다. 위험한 것은 마음에 화가 가득 있으면서 표현도 못하고 심한 경우 자기가 화가 나 있다는 것도 못 느끼는 경우이다. 이럴 때 병이 생긴다. 따라서 이러한 정신장애의 치료는 치료자가 환자로 하여금 자기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기가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 화를 억압도 아니고 행동화도 아닌 대화를 통해 표현하게 한다. 그러한 가운데 화가 난 원인을 깨닫고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여 해결하여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과거에는 화가 나면 억압만 하였는데 근본적으로 마음속에 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면 점차 인격이 성숙되어 가는 것이다. 이런 경지에서는 화란 오히려 인생의 윤활유가 될 수 있다. 상대방이 솔직하게 화를 표현하면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게 된다. 화는 생기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화가 났는데도 화를 표현하지 않으면 인간관계는 화로 인해 더 이상 건전하게 지속될 수 없다. 화가 나 있는 한 상대방과 통할 수 없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장치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화가 속으로 들어가면 병이 되고 밖으로 비정상적으로 표현되면 폭력이 된다. 그러나 잘 처리하면 윤활유가 되는 것이다. 화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그러한 마음을 줄이는 것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화는 많이 줄어든다. 화는 어쩌면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일 수 있다. 화가 날 때 자기 마음속에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잘 드러난다. 그때마다 해결해나가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화’ 그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문제이다. 자기의 화를 극복하고 자기 밑의 사람이나 제자, 부하직원, 자식들의 화를 받아주고 그것을 처리하는 방법을 가르쳐줄 수 있다면 그 사회는 파괴적인 폭력이 훨씬 줄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