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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창조하는 것은 '국민'

음악과 문화의 중심, ‘러시아’

  • 입력 2018.07.29 10:59
  • 기자명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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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2018년은 평창 동계올림픽, 러시아 월드컵, 자카르타 아시안게임까지 올해는 스포츠의 해라 할 만하다. 

지난 2월호에서 다루었듯이 우리나라에서 30년 만에 열리는 지구촌 스포츠 축제인 2018 평창 올림픽의 바통을 러시아 월드컵이 이어받게 되었다. 이번 월드컵은 FIFA 주관으로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21번째 대회이며, 독일에서 개최한 2006년 이후 12년 만에 유럽에서 열리는 월드컵 대회이자 동구권 유럽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월드컵이다. 우리 대표팀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러시아에서 활약하고 있다. 

동유럽 문화의 중심, 러시아

푸시킨의 동명의 시-루슬란과 류드밀라-출처 Goodreads
푸시킨의 동명의 시-루슬란과 류드밀라-출처 Goodreads

러시아 제2의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로망'을 품은 도시로도 잘 알려져 있다. 비록 익숙하지 않은 이에게는 러시아의 여느 이름처럼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이 지명이 익숙한 이에게는 푸쉬킨(Aleksandr S. Pushkin, 1799-1837)이나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 Dostoevsky, 1821-1881), 고골(Nikolai V. Gogol, 1809-1852) 등 러시아의 대 문호들의 발자취를 떠올리며 문학적 정취를 느낄 것이다. 러시아는 서양 고전 음악 및 유럽 민요의 산실로 평가받아오고 있는 동시에 오늘날에도 동유럽 음악과 문화의 중심에 있는 나라이다.
과거 제정러시아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917년 사회주의 혁명 이후 모스크바에 수도의 자리를 넘겨주기 전까지는 러시아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고전주의, 바로크, 모던 등 다양한 양식의 건물들로 가득한 도시 자체가 박물관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문화재가 풍부하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처럼 이 도시의 문화 활동은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아왔다. 1736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궁중에서는 러시아 자체적인 오페라악단이 생겨났고, 1738년에는 한 무용 학교가 세워졌는데 이후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마린스키 발레(Mariinsky Ballet) 학교가 되었다. 그 후 발레와 연주회를 위한 많은 공연장들과 극장들이 들어서면서 도시의 아름다움을 갖추게 되었다. 러시아문학의 대문호들과 더불어 이 도시를 보금자리 삼아 서양 음악의 발전에서 큰 뿌리를 내리기도 하였다. 

상트 페테부르크 그리스도 부활 성당-출처 Saint-Petersburg.com
상트 페테부르크 그리스도 부활 성당-출처 Saint-Petersburg.com

서유럽 음악의 영향으로 19세기부터 전성기를 펼친 러시아 음악은 뛰어난 작곡가뿐만 아니라 서정적인 선율과 수준 높은 테크닉적인 연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연주자들을 다수 배출한 것으로도 명성이 있다. 러시아 음악의 기원은 토속적인 민속음악으로 농사, 혼례, 장례, 축제 등에서 부르던 민요가 주를 이루었다. 10세기 말 동방정교회(Eastern Orthodox Church)의 중심이 러시아로 옮겨지며 비잔틴의 성가음악(Sacred music)이 주를 이루었으나 이는 몽골의 지배로 한때 침체기를 겪었다. 이와 같이 민속음악과 성가음악을 중심으로 해오던 러시아 음악은 18세기 초 표트르 대제(표트르 1세, Peter I)의 급진적인 서구화 정책으로 전환기를 맞았다.
18세기에는 많은 귀족들이 개인 극장과 오페라단을 만들어 유럽 각국의 음악가들을 초청하였다. 1750년 최초의 오페라극장이 모스크바에 건립된 이후 많은 오페라극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중 극장의 출현으로 일반인도 오페라를 접할 수 있게 되었고 18세기 후반부터 러시아인들이 서유럽으로 유학을 떠나 음악을 공부하며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권의 음악이 대량 유입되며 러시아 작곡가들의 교향곡, 실내악, 오페라 등이 탄생하기 시작했고 러시아 궁정 음악의 융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러시아 고전음악의 창시자, 글린카
그러나 19세기 초까지 서유럽 음악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러시아 음악은 국민 음악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글린카(Mikhail I. Glinka)가 등장하며 고유의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음악이 유럽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도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유학한 글린카의 음악은 완전히 서유럽의 음악의 영향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진보적인 사상가들과 끊임없는 교류를 통해 러시아 민요에 뿌리를 둔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고 그의 오페라에서는 러시아의 민속적 소재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글린카 초상화-출처 AllMusic
글린카 초상화-출처 AllMusic

그는 러시아 고전음악의 창시자 또는 러시아 국민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며 국민악파 작곡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민족 문화에 근거를 둔 새로운 음악 언어를 만들어 내며 러시아 음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의 작품들 중 러시아의 민족적 색채를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오페라 <루슬란과 류드밀라(Ruslan and Lyudmila)>가 있다. 이 작품은 1837~1842년에 작곡한 5막 8장의 오페라로 푸시킨의 동명의 시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기초로 하여 1842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동양적 요소를 가미해 불협화음과 반음계, 온음 음계를 사용하는 등 러시아 민속음악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온음 음계(whole-tone scale)란 모든 음 사이의 간격이 온음으로만 이루어진 음계를 말하며 글린카가 처음으로 시도하였고 이후 드뷔시(Claude-Achille Debussy)의 음악에서도 느낄 수 있으며 음악의 모호성과 다양성을 자극하는 효과를 준다.
그는 “음악을 창조하는 것은 국민이며, 작곡가는 그것을 편곡할 뿐이다”라고 목소리를 낼 정도로 음악 창조는 국민의 소리와 결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그의 음악 사상은 젊은 음악가들의 모범이 되며 많은 러시아 국민주의 작곡가들을 배출하는 계기가 되며, 러시아 음악의 창시자로 존경을 받게 되었다.
이처럼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작곡가인 라흐마니노프(S. Rachmaninov)나 차이코프스키(P. I. Tchaikovsky) 이외에도 러시아 음악의 민족성을 유지하며 동시에 음악예술의 보편성을 중시한 작곡가들의 배경엔 바로 글린카의 색채를 지키려는 노력과 새로운 시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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