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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주고 약도 주는 수선화 연정
  •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 승인 2018.11.2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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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옛 그리스에는 테이레시아스라고 하는 장님 예언자가 있었다. 테이레시아스라는 말은 ‘조짐을 읽은 자’라는 뜻이다. 그가 한창 예언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을 당시, 강의 요정 리리오페가 아들을 낳았다. 요정은 이 용한 예언자를 불러 아들의 운명을 점쳐 달라고 했다. 아기를 본 순간 예언자는 “아주 오래오래 잘 살 겁니다. 단 자기 자신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면 말입니다”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의 얼굴을 보면 죽는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 아기가 바로 수선화 전설로 유명한 나르시쏘스(Narcissos) 이며, 이 아기가 후에 호수에 비친 자기 얼굴에 반해 먹고 마시는 것도 잊은 채 굶어죽어 수선화가 된 청년이다. 자화자찬을 뜻하는 영어 나르시시즘(narcissism), 즉 자기애(自己愛)는 바로 이 청년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림 1. 워터하우스 작: '에코와 나르시소스'(1903), 리버풀 워커 아트 갤러리

천부적으로 타고난 아름다움은 나이 열여섯이 되자 더욱 아름다워졌다. 나르시쏘스를 연모하여 추파를 던지는 자들이 부지기수였다. 그중에서도 에코(Echo)라는 요정의 구애가 가장 열렬했는데 에코는 산이나 동굴에 사는 미모의 요정이다. 자기 스스로는 이야기할 수 없고 남의 말을 되받아 메아리칠 뿐인 요정이다.
자기의 용모에 자신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아름다움을 자기가 사랑하는 나르시쏘스는 누구의 구애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을 그림으로 잘 표현한 것이 영국의 화가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7)의 ‘에코와 나르시쏘스(1903)’다. 에코의 구애를 아랑곳 하지 않은 나르시쏘스를 에코는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무의식 속에 자기 자신만을 사랑해 에코라는 님프의 구애를 물리치는 것을 얄밉게 생각한 신들이 ‘나르시쏘스는 자기 자신만 사랑하라’는 운명을 지워준 것이라고 전해진다.
유아에도 성욕이 있다는 학설을 발표한바 있는 프로이드(Sigmund Freud 1856~1939) 박사는 나르시시즘을 모든 생물이 갖는 자기 보존본능의 일부로 보고 1차적인 정상인 것과 2차적인 병적인 것으로 분류 하였다. 즉 유아기 초기의 자기와 외적(外的) 대상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자기애를 1차적 나르시시즘이라 하고, 자기와 외적 대상의 구별이 생김에 따라 외적 대상으로 향해야 할 리비도가 자기에게 향한 경우를 2차적 나르시시즘이라 하였다.
번거롭지만 그의 학설을 좀 더 인용한다면 그는 말하기를 사람의 성욕 발달은 여러 계제를 거쳐서 성숙해 지는 것인데, 이것은 젖먹이 때부터 시작이 된다. 즉 유아는 자기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자기의 신체부위나 기관(器官)에 흥미를 느끼어 여기에서 쾌감을 구한다는 것이다.
어머니 젖꼭지를 빨 때에 입술에서 쾌감을 느끼고, 대소변을 배설할 때에 항문이나 요도에서 쾌감을 느끼고, 손으로는 신체 부위를 만질 때나 또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데서 쾌감을 느낀다. 자동차를 타면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운동에서도 신체 전반적인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하여간에 유아는 모든 신체 기관으로부터 쾌감을 느끼는데 이 시기를 ‘기관애(器官愛 Organ-erotic)’의 시기이라 하였다.

그 다음의 단계는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는 자기애(Self-Love)의 시기인데, 이 시기에는 이성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섹스의 에너지가 자기 자신에게로만 향하는데, 자기의 손발이나 얼굴 등에 대해서 사랑을 느낀다. 그래서 이 시기의 어린이는 거울에 비치는 자기의 모습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기도 하고 자주 보며 자기의 몸을 가꾸려고 노력도 한다. 이후로는 자기와 비슷한 사람, 즉 비슷한 나이또래의 동성에게 관심이 쏠리는 동성애의 시기를 거쳐서 더 성장되면 이성을 사랑하는 시기로 접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란 본래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 이성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지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이성을 사랑할 수 없는 불쌍한 사람이 바로 나르시시즘의 사람들이다.

나르시시즘의 경향은 어느 정도 정상인에게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남자이면서도 하루에 수십 번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기도 하고, 자기 방에다가 커다란 자기 사진을 걸어놓고 매일 쳐다보고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그런 경향의 사람이다. 이것이 지나치면 자기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기 이외의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즉 자기밖에 위할 줄 모르는 인격 장애가 오게 되는데 이것을 의학에서는 ‘자기애적 인격 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라고 한다.
무한한 성공욕에 가득 차 있고, 주위사람의 존경과 관심을 끌려고 애쓰며, 조금이라도 자존심이 상하면 견딜 수 없어 펄펄 날뛰고, 대인관계에서 남을 위하는 생각이란 조금도 없으며, 보잘 것 없는 일을 갖고도 잘 대들며, 상대방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는 태도와 경멸하는 태도 사이를 쉽게 오가며 자기현시에 열중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이 점점 느는 것 같은데 왜 그런지 알 수가 없다.

그림 2. 카라바조 작: '나르시쏘스'(1598-99), 국립 고고 미술관

다시 나르시쏘스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어느 날, 사냥 갔다가 피로해진 나르시쏘스는 못가에서 물을 마시려다 물속에 아름다운 소년을 발견했다. 이 세상에는 둘도 없으리만큼 아름다운 미소년이 너무나 황홀해서 껴안으려고 덤비니 물결이 생겨 미소년의 모습은 산산조각이 나지만 한참 있다 보면, 다시 웃고 있는 물에 비친 자기 모습에 본격적으로 반해 버렸다. 즉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갈망하게 되었다. 결국 그는 쫓는 동시에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그림으로 잘 표현한 것이 이탈리아의 화가 카라바조(Caravaggio 1573~1610)의 ‘나르시쏘스(1598~99)’로 물에 비친 자기 얼굴이 너무나 황홀해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다. 
그 후부터는 모든 욕망을 잃고 식욕도 없어지고 몸은 마르기 시작해서 살겠다는 기력조차 약해져갔다. 참다못해서 그는 푸른 풀을 베고 누웠다. 곧 죽음이 다가 오는 것을 느낀 그가 낮은 목소리로 “안녕 !”이라는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자 때를 놓칠세라 에코 요정이 “안녕 !”하고 되받는 중에 죽음이 다가와 그의 아름답던 눈을 감겨 주었다.

그림 3. 리피시 작: '나르시쏘스의 최후'(1771), 세인트 틴, 안토니 레크엘 미술관

이러한 광경을 그림으로 잘 표현한 것이 화가 리피시(Michael Nicolas Berard Lepicie)가 그린 ‘나르시쏘스의 최후(1771)’다.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숲의 요정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이를 되받아 메아리쳐 주는 에코 요정의 울음소리도 들려오는 것 같다. 불쌍히 여긴 에코 요정이 소년의 시체를 걷으려고 와 보니 아무 데도 소년의 시체는 없고 그가 누웠던 자리에는 빨간 화관의 흰 꽃이 피어 있었는데, 그 꽃이 바로 ‘나르시쏘스, 수선화(水仙花)’다. 즉 나르시쏘스의 시신은 수선화로 전신 된 것이었다.

그림 4. 워터하우스 작: '에코와 수선화'(1912) 리버풀 워커 아트 갤러리

에코 요정이 못가에 핀 수선화를 따서 그녀가 못 이룬 사랑 그리고 소년의 넋을 위로하려는 듯 한 그림을 역시 영국의 화가 워터하우스가 ‘에코와 수선화(1912)’를 그렸다.
수선화는 어원적으로는 그리스말인 나르코와 같은 것이다. 의학용어로 사용되는 진통제 또는 마취약을 narcotics라 하는데 이것 역시 나르코에서 유래된 것이다. 또 실제로 수선화를 원료로 하여 진통작용을 하는 연고를 만들어 써 왔으며, 특히 나르코티카의 작용을 가진 나르키쏘스유(油)의 약효는 현대의학에서는 잊혀진 약명이 되었지만 오랫동안 인류에게 혜택을 주어온 것만은 사실이다. 
이렇듯 수선화는 병명으로도 인용되지만 인류의 질병을 고치는 약의 이름으로도 사용되어 왔다. 병 주고 약도 주는 수선화 연정이라고나 할까?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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