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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무새의 초상> 신고자론(新鼓者論)New Eunuch
  • 정정만(성칼럼니스트)
  • 승인 2019.09.05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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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고자는 불알이 없다. 불알을 떼어내, 고자(鼓子)를 만드는 행위를 거세(去勢)라고 한다. 거세의 사전적 의미는 권세(權勢)를 제거하는 것. 불알의 힘과 불알을 달고 있는 사내의 물리력, 창의력, 생식력을 동일시각으로 여기는 뜻풀이다. 고자의 고(鼓 )는 ‘북’을 의미한다. 북은 북통 마구리를 팽팽하게 씌워 고도로 긴장된 가죽 피막을 손바닥이나 막대기로 희롱하면 소리를 내는 타악기다. 북소리는 피막의 진동으로 북통의 빈 공간을 공명시켜 나는 울림 소리다. ‘텅 빈 불알 망태기’를 ‘텅 빈 북통’에 견주어 고자라고 부른 것이다.

원래 거세는 전쟁 포로나 범죄자의 형벌로 채용된 궁형(宮刑)으로 시작되었다. 포로나 범죄자의 힘을 빼앗아 승자에 대한 굴복과 복종을 강요하는 순치 수단이다. 또한 그들의 DNA 전승을 완전 차단하여 적개심과 복수욕의 대물림을 원천 봉쇄하는 신체 형벌이었다. ‘씨앗’이 없는 사내들은 내시(內侍)역할에 안성맞춤이다. 내시에게 권력자나 규방 여인의 지밀(至密) 몸종이라는 일자리를 준 까닭이다.

환관(宦官), 내관(內官), 사인(寺人), 엄인(閹人), 정신(淨身), 중관(中官), 대감(大監), 화자(火者)등은 내시의 또 다른 이름이다. 축산 영역에서는 사양관리(飼養管理), 비육(肥肉), 육질(肉質)이나 모질(毛質)개선, 종축(種畜) 개량 목적으로 흔히 수컷을 거세한다. 불알이 떨어져 나가면 남성 호르몬이 격감하여 이와 같은 이점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자도 수컷의 거세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공격성이 후퇴하고 성질이 순화되어 ‘제2의 수컷’으로 변모한다. 고자에게 하렘이나 규실(閨室)여인의 시중을 들게 한 것은 내통이나 밀통 가능성이 적고 내밀적 파종(播種)위험이 없어 최고 권력자의 전용 질(膣)그릇을 그런대로 보호할 수 있는 이점이 있어서다. 순정 혈통으로 대통을 유지하기 위한 최적 발상이다. 고자를 뜻하는 영어의 “Eunuch”도 ‘침실을 지키는 자’라는 뜻이다.

거세 행습(行習)은 고대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제국, 인도의 무굴 제국, 오스만투르크, 이집트, 에티오피아, 중국, 베트남 그리고 한국 역사에 등장한다. 그러나 거세 방식이나 거세 부위는 죄질이나 시대적 배경에 따라 차이가 난다. 비잔틴 제국이나 중국에서는 막대기, 불알, 불알 주머니 등 성기를 모조리 도려낸 후 배뇨 자세를 좌위로 국한시켰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불알 두 개만 제거하여 최소한 사내 체면을 세워 주었다. 그러나 말썽은 대부분 기립 배뇨 고자 막대기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왕의 여자를 범접하거나 왕의 관심 밖에 있는 종신 궁녀(窮女)와 뜨거운 밀회를 나누기도 했다. 불알만 제거한 고자는 소멸된 고환 기능의 일부를 부신(副腎)이 떠맡는다.

부신은 사나이 호르몬,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을 만들어 혈중 농도를 높인다. 따라서 열기는 미흡하나 구멍을 넘나보는 여력이 여전하고 실제로 구멍 점유를 실행하기도 한다. 핏줄 속 남성 호르몬이 거세치 수준으로 떨어져 정염(情炎)인 발기 강직도의 후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역을 지키는 노인들이 고자의 잔여 성 능력을 뒷받침한다. 역사와 소문에 등장하는 거세 계기는 여러 갈래로 나뉜다. 우리나라 재래 고자는 징벌 형태라기 보다는 다분히 생계 형태에 가깝다. 찢어지게 가난한 불알을 희생시킨 대신 가솔의 부귀영화를 건져 올린 고자가 많았다.

악의 근원이라고 누명을 쓴 불알을 스스로 잘라낸 정신 질환자의 자해성 고자도 있고, 정결(貞潔)과 순명(順命)을 서원(誓願)한 수도사(修道士)가 자행한 고행성 고자, 그런가 하면 카스트라토(Castrato) 특유의 소리를 지켜내는 예술성 고자 등 다양한 동기의 다채로운 고자들은 나름대로 삶의 뒤 안에 흔적을 남기고 사라졌다. 하지만 고자는 역사의 유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신종 고자들이 갈수록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염색체 이상에 의한 태생적 고자가 신종 고자 대열의 선두에 있다. 클라인펠터 증후군(Klinefelter's Syndrome)이라는 선천성 고자는 신생 남아 1000명 중 1명꼴로 태어난다. 전립선 암과 고환 암 치료에 적용되는 방사선, 항암제, 고환절제술은 각각 방사선 고자, 화학적 고자, 비뇨기과적 고자를 양산해낸다.

그 외에도 사고로 손상된 불알, 여성이기를 희구(希求)하는 게이(Gay)불알, 질병에 걸린 몹쓸 불알들도 끊임없이 잘려 나간다. 그러나 금세기 최신종 고자는 환경성(環境性) 고자다. 무결한 성구(性具)를 지닌 멀쩡한 환경성 고자가 고자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기러기 아빠, 무단가출한 여자의 남자, 장기 와병 중인 여자의 남자, 조기 폐업한 여자의 남자, 황혼 이혼 당한 남자, 무작정 거부하는 여자의 남자들이 강제 퇴출의 설움을 곱씹으며 묵묵히 고자의 길을 가고 있다. 유통기간이 꽤 남아 아직까진 쓸모 있는 막대기이거늘…

정정만(성칼럼니스트)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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