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아네모네의 정에 얽힌 ‘최음제’

  • 입력 2019.09.25 11:44
  • 기자명 문국진(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의학한림원 박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엠디저널]근래에 와서 비아그라(Viagra)가 시판되면서 사람들은 최음제, 즉 미약(媚樂 Aphrodisiaca)을 화제로 올리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미약이란 성욕을 항진시켜주는 약제를 말한다. 그 원어는 Aphrodisiacum인데, 이것은 단수이며 복수인 Aphrodisiaca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 용어는 올림포스의 12신 중에서도 뛰어나게 아름다운 아프로디테(Aphrodite) 여신에서 유래된 것인데, 아프로디테는 여성의 아름다움과 사랑의 심벌로의 여신이어서 성적인 것과 깊은 인연이 있는 신이다.

소크라테스는 크세노폰의 심포지엄에서, 아프로디테를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의 두 가지로 나누어, 하늘의 아프로디테를 숭배하는 것은 순수하지만, 땅의 것은 부정(不貞)하고 난잡하기 때문에 숭배하는 것은 죄가 된다고 했다. 플라톤은 그의 심포지엄에서 아프로디테를 옛것과 새로운 것의 두 가지로 나누었는데,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는 이중 옛것을 기록한 것이다. 아프로디테는 사랑과 미의 여신으로서 제우스와 디오네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라는 설과, 또 다른 설에 의하면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 산드로 보티첼리 작: ‘비너스의 탄생’ (1484)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 산드로 보티첼리 작: ‘비너스의 탄생’ (1484)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하늘의 신 우라노스가 아들 크로노스에 의해 권좌에서 추방당할 때 아들은 잔인하게 아버지의 성기를 잘라서 이것을 바다에 던졌던 바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에서 거품이 일며 그 속으로부터 발가벗은 아름다운 소녀가 나타났는데, 그녀가 바로 아프로디테이며 그녀는 조개껍질을 타고서 큐테라 섬으로 상륙한 다음 큐프로스에 도착했다. 

이런 상황을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는 ‘비너스의 탄생’(1484)이라는 명작을 남겼다. 그래서 지금도 이 섬에는 아프로디테의 제사를 지내는 신전이 남아있다.

그리스말로 아프로스(aphros)는 거품을 뜻하는 것이며 아프로디테의 로마 이름은 베누스이고, 영어로는 비너스이다. 버린 성기에서 태어났다는 설화에서 관능미를 느끼게 하고, 거품에서 생겨났다는 전설에서 아름다움의 진수를 느끼게 한다.

그래서 아프로디테는 육체적인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여겼기 때문에 이름난 화가들은 앞을 다투어 이를 그림의 주제로 삼았다. 화가들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데 육체는 절대 불가결의 요소로서 유방, 허리, 엉덩이, 다리 특히 사타구니 사이의 곡선 등에서 그 아름다움이 강조된다. 대부분 그림에서 비너스는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풍만한 육체를 S자형으로 구부려, 보는 사람의 시선을 유혹하는 ‘유혹의 비너스’이다. 즉 에로틱한 관능미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새로운 개념의 아프로디테는「일리아스」에 의거한 것인데, 이것에 의하면 제우스와 디오네 사이에 태어났으며, 아프로디테는 에로스의 어머니로 되어있다. 모든 근원이 되는 애욕(愛慾)은 그녀의 기능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의 이름을 딴 아프로디지아카는 사랑을 촉진시키는 미약의 뜻으로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 얘기하자면 penis의 거품에서 태어난 이 미녀는 서풍과 물결을 따라 큐프로스 섬에 도착하자 계절의 여신들은 그녀를 영접하고, 고운 옷을 입혀서 신들이 모인 자리로 안내했다. 아프로디테의 미모에 매혹된 신들은 모두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기를 바랐지만, 제우스는 헤파이스토스(불카누스)가 올림포스의 쇠붙이를 잘 만든 상으로 이 미녀를 주었다.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 가장 못생긴 신의 아내가 된 것이다.

아프로디테는 케스토스라고 불리는 수놓은 띠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띠는 연정(戀情)을 일으키게 하는 마력을 지닌 것으로 이를 항상 휴대하였다는 것이다. 아프로디테가 사랑한 새는 백조와 비둘기였고 꽃으로는 장미꽃과 천인화(天人花)였다.

에로스는 사랑의 신인데, 아프로디테의 아들이고, 항상 어머니를 따라다니면서, 연정을 일으키는 사랑의 화살을 신이나 인간 가슴에다 쏘아 이 화살에 맞은 남녀는 사랑을 속삭이게 된다고 한다. 어느 날 아들 큐피드와 놀고 있던 아프로디테는 잘못하여 아들의 화살에 상처를 입었다. 이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연정에 사로잡혀 불타오른 그녀는 아도니스라는 남신에게 반해버렸다. 그래서 지금까지 자기가 자주 다니던 신전이나 금속이 든 광물이 많이 산출되는 자기 땅에 대해서도 흥미를 잃고, 아도니스의 꽁무니만 따라 다니게 되었다.

아도니스는 아프로디테마저 한눈에 반할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답고 준수한 청년과 사랑을 맺었다. 옥같이 희고 보석같이 빛나는 청년, 이 잘생긴 애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아프로디테는 늘 노심초사했으며 특히 야수 사냥의 위험을 멀리하라고 매일 이르고 달래곤 했지만 혈기왕성한 사냥꾼인 아도니스는 아프로디테의 충고를 듣는 나약한 청년은 아니었다. 그것은 사냥꾼의 삶이 아니어서 그녀의 소원을 무시하고 사냥을 나가곤 했다.

그러자 이제까지는 그늘 밑에서 쉬기를 좋아했던 그녀의 성품도 돌변하여, 그 후부터는 여성수렵가 아르테미스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는 자기의 사냥개를 시켜서 토끼나 사슴 따위의 순한 동물만 골라서 사냥을 했고, 늑대 같은 사나운 동물은 피했다.

▲ 티치아노 작: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1853-54)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 티치아노 작: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1853-54)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자기가 그렇게 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애인인 아도니스에게도 그렇게 하기를 다짐하면서 아도니스가 사냥 나가는 것을 몹시 싫어해 그의 사냥길을 막곤 했다. 이런 상황을 그림으로 잘 표현한 것이 이탈리아의 화가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1488/90~1576)의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1853~54)이다.

그것은 만약에 사랑하는 애인 아도니스가 사나운 짐승과 싸우다가 상처를 입거나 죽는 것을 경계하도록 당부하는 것이었으며 그래도 자기의 말을 무시하고 사냥 나가는 아도니스를 보내고 아프로디테는 백조가 이끄는 이륜차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 사이에 아도니스는 멧돼지와 싸우게 되었다. 실은 이 멧돼지는 틈만 나면 아프로디테와 잠자리를 같이 하곤 했던 전쟁의 신 마르스(아레스)가 변신하였던 것이다. 아도니스가 나타나기 전에는 아프로디테와 제법 즐겼는데 그가 나타난 후로는 자기를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자, 이에 앙심을 먹고 아도니스를 살해할 것을 결심하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싸우던 아도니스는 그만 멧돼지의 송곳니에 옆구리를 찔려서 죽어버렸다. 그가 죽을 때 신음소리를 하늘에서 들은 아프로디테는 재빨리 애인 옆으로 달려와서 시체를 껴안고 가슴팍을 두드리고 머리털을 쥐어뜯으면서 애통해했다.

▲ 푸생 작 : ‘아도니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아프로디테’(1628) 칸, 비욱스미술관
▲ 푸생 작 : ‘아도니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아프로디테’(1628) 칸, 비욱스미술관

이러한 상황을 그림으로 잘 표현한 것이 프랑스의 고전주의 화가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이 그린 ‘아도니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아프로디테’(1628)이다. 그녀가 애인이 흘린 피 위에다 넥타르(神酒)를 뿌렸더니, 피와 넥타르가 혼합되면서 거품이 일어나고 한참 있다가 석류꽃 비슷한 핏빛의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산들바람이 불어서 꽃이 피게 하고는 다시 바람에 꽃잎은 날려 그 꽃은 오래가지 못하고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 꽃은 바람꽃, 이름하여 아네모네이며 그리스 사람들은 이 꽃을 아도니스라 한다. 의학용어로 사용되는 미약 aphrodisiaca에 부정의 뜻을 지닌 an을 붙이면 ananphrodisiac로 이는 색정을 억제하는 제음제(制淫劑)라는 뜻이 되고, 또 aphrodisia는 여성의 병적성욕항진증(病的性慾亢進症)을 뜻하는 말이 된다. 이렇듯 아프로디테 신화는 의학용어로서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저작권자 © 엠디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