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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는 왜 지구가 내일 멸망해도 심어야 할까?

나뭇가지에 걸린 고전(21)

  • 입력 2020.12.23 11:35
  • 기자명 신종찬(신동아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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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메밀잠자리들이 높고 맑은 가을 하늘을 거침없이 휘저으면, 과수원에서 상큼한 사과향이 풍겨온다. 홍옥사과는 초록 잎 뒤에 숨지만, 그 고운 선홍빛과 향을 숨길 수는 없다. 오늘은 운동회 날이다. 고개 넘고 개울 건너 도착한 운동장에는, 아이들 마음보다 만국기가 더 신나게 흩날린다. 고소한 땅콩, 달콤한 고구마, 먹음직한 홍시 등이 노점에 가득하지만, 맛과 향에서 잘 익은 빨간 사과의 인기를 당할 수는 없다.

사과는 제사상에서 조율이시(棗栗梨柿)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통계에 의하면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라 한다. 한국인들은 왜 사과를 좋아할까? 빨간 껍질 속에 아삭하고 새콤달콤하면서도 신선한 속살 맛 때문일까? 어떤 과일도 흉내 내지 못하는 사과 향 때문일까? 아니면 익어가는 빨간 사과들을 주렁주렁 달린 멋진 사과나무의 모습 때문일까? 시인 김춘수(1922~2004)는 시 <능금>에서 능금은‘그리움에 산다.’라고 노래했다.

그는 그리움에 산다./그리움은 익어서/스스로도 견디기 어려운 빛깔이 되고/향기가 된다./ 그리움은 마침내/스스로의 무게로 떨어져 온다./떨어져 와서 우리들 손바닥에/눈부신 축제의/비할 바 없이/그윽한 여운을 새긴다. (하략)

하늘이 높고 티 없이 맑을 때,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는 충실함의 대명사가 아닐까. 어린 시절 마음에 새겨진 사과의 이미지는 세월이 흘러도 흐려지지 않고 아쉬움을 남긴다. 지나버린 그 날과 다시 오지 않는 그 날은 생각할수록 더 그립다. 이 시인처럼 우리는‘그리움에 살기’에 사과를 좋아할까?

어려서부터 좋아하는 사과였지만, 문자(文字)로 처음 사과나무를 대한 것은 증조부님으로부터 ≪천자문千字文/주흥사(周興嗣, 470~521)≫을 배우면서였다. 천자문에 과진이내(果珍李柰, 과일 중 보배는 오얏과 능금)라 하는 대목도 있었다. 중국에서는 1세기경부터 임금(林檎)이라는 능금을 재배한 기록이 있다. 또 능금보다 길고 큰 열매를 가진 과일나무를 남쪽에서 들여왔는데, 이를‘내(柰)’라 했다. 임금은 원래부터 있던 과일이고, ‘내’는 오늘날의 서양 사과의 원종이 되는 변종일 거라 추정한다. 특히 양주(涼州)에서 나는 내(柰)는 매우 달고 포(脯)까지 만들 수 있어 아주 귀하게 여겼다한다.

임금은 삼국시대쯤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한다. 송(宋)나라의 손목(孫穆)이 지은 《계림유사(鷄林類事), 1103년》에는 ‘내빈과(奈蘋果)는 임금을 닮았으며, 크다’하였다. 또한 송의 서긍(徐兢) 《고려도경, 1123년》에 보면 ‘일본에서 들어온 과일에 임금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처음이다’라고 했다. 이렇게 능금이 일본에서 들어왔다고 하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조선임금(朝鮮林檎)이라 부르며 조선에서 들어왔다고도 한다.

우리나라 문학의 지평을 넓혔고 스스로 문학인을 자처했던 고려의 이규보(李奎報)는, 당시의 여러 과일과 채소에 대한 소중한 기록들을 많이 남겼다. 그는 《동국이상국집) 1241년》 중〈고율시古律詩〉에 <칠월삼일七月三日 식임금食林檎>이란 제목으로 능금 시를 남겼다. 시인은 새큼한 능금이 맛이 탐이 났던지 서리 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따 먹고 말았다.

적래부대상摘來不待霜 서리 내리길 기다리지 않고 따 왔으니

기경육미유肌硬肉未柔 껍질이 굳고 살이 연해지지 않았다.

유여기산과由予嗜酸果 나는 신 과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면식불능휴勉食不能休 힘써 먹느라 멈추지를 못 하네

-하략-

비록 동양에서 전해진 과일이지만 서양 사람들의 사과 사랑은 동양을 능가한다. '사과를 매일 하나씩 먹으면 의사를 멀리한다.'란 속담이 있을 정도다. 유럽 문화에서 중요한 4개의 사과가 있다. 성경에서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서 금단의 열매인 사과를 따먹었다가 그곳에서 쫓겨나고 만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불화(不和)의 여신인 에리스가 던진 황금사과 한 개를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줌으로서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분쟁을 가져오는 불씨를 ‘파리스의 사과’라고 한다. 그 외에도 활쏘기의 명수 ‘빌헬름 텔의 사과’, 만류인력을 발견한 ‘뉴턴의 사과’ 등이다.

사과를 능금이라 부르면, 왠지 향기가 더 진하지고 순박해 보인다. 능금과 사과를 혼용해 쓰는데, 그래도 문제가 없을까? 엄밀하게 말하면 조금 다르지만, 능금과 사과를 혼용해 쓴 지는 오래되었다. 《훈몽자회/최세진, 1527》에 ‘금(檎)은 능금 금으로 읽고 속칭 사과라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 보아 벌써 500년 전부터 뒤섞어 썼다. 능금의 원산지는 키르기스스탄과 중국 서부에 위치한 톈산산맥과 타림분지 주변이라고 한다. 능금의 한 변종인 사과의 역사는 무척 길다.

연구에 의하면 사과는 여느 장미과 식물들과는 다른 진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앵두와 같은 대부분의 장미과 식물들은 새들의 먹이가 되어 퍼지기 위해 열매를 작게 유지했다. 하지만 사과는 사슴이나 말 같은 대형 동물들이 먹고 씨를 퍼뜨릴 수 있도록 수백만 년에 걸쳐 과육을 늘리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그런데 마지막 빙하기 이전에는 많았던 이런 대형 동물들이, 빙하기를 거치며 대부분 멸종했다. 씨앗을 퍼뜨릴 동물이 사라지면서 큰 열매가 달리는 야생사과의 분포는 많이 줄어들었다. 이런 사과를 되살린 것은 바로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사과나무를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개량하고 전파까지 했다고 한다. 사과는 널리 퍼져 나가면서 돌연변이에 의해 주요 원생종이 생겨났다. 이들은 유럽·아시아 및 북아메리카대륙에 25종 내외가 분포되어 있는데. 현재 재배되고 있는 품종은 주로 서부 아시아와 유럽에 분포된 원생종의 후손이라 한다. 과거 한국 사과는 1890년 전후로 선교사들이 가져온 품종들이었으나, 현재는 이를 바탕으로 일본에서 개량한 품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기후 조건이 우수하여 한국 사과는 세계적으로 그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내일 종말이 온다하더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다. 스페인에서 아랍왕국이 패망하자, 중간관리나 전문기술가 집단이었던 유대인들은 프랑스나 네덜란드로도 이주했다. 이들을 위그노라 불렀다. 위그노였던 스피노자도 안경기술자로 생업을 유지했다. 랍비가 될 목적으로 공부하던 그는 15세 무렵에 벌써 구약성서에서 해결할 수 없는 모순과 문제를 발견하고 신앙을 의심했다. 결국 ‘천사는 환상이며, 영혼은 생명체 안에서만 존재한다.’고 했다가 파문을 당했다. 이후 무수한 고초를 당하면서도 실체는 사물의 밖이 아니라 사물의 안에 존재하므로 실체와 자연은 일치하고 동시에 그것은 신과 같다고 생각했다. 즉 ‘실체는 신이고 신은 자연’이라는 명제에 도달했다. 그러니 내일 종말이 온다 해도 자연의 실체인 사과를 심어야 한다하지 않았을까?

아버님께서도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자식들 대학에 보내시겠다고 좋은 밭에 사과나무를 심으셨다. 채 서른 살이 안 된 아버님은 농사지으려 낙향하셨다. 그러나 정작 사과를 수확하기 시작할 무렵에는 다시 공직에 나가셨다. 내가 대학에 갈 무렵에는 사과나무가 한창이었지만 안동댐으로 수몰되고 말았다. 살아보니 정말 세상은 우리 사과밭처럼 계획대로 되지 않고 내일을 알 수도 없다. 4.19, 5.16 등으로 내일을 알 수 없는 청년 시절 내 아버님도 자식을 위해서는 오직 사과나무를 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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