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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와 어사화(御使花)들
  • 신종찬(신동아의원 원장/의학박사/수필가/시인)
  • 승인 2022.05.16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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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커다란 절벽 바위산이 아침 햇살을 받아 해보다 더 샛노랗게 빛난다. 정상의 팔각정과 몇 그루 소나무를 제외하고는 늘 회색이었던 무채색 응봉산(鷹峰山)이, 오늘은 샛노란 곤룡포로 갈아입어 유채색이다. 한강에 비친 반영(反映)의 응봉산 그림자도, 한강에 잠겨 또 하나의 황금빛 응봉산으로 빛난다. 해마다 이른 봄이면 개나리꽃들로 뒤덮인 응봉산을 봄철 한강 제1경이라 부르고 싶다.

한강과 중랑천이 만나는 지점에 절벽으로 솟은 응봉산은, 산 전체가 하나의 바위로 보이는 아주 척박한 산이다. 출퇴근 하면서 멀리서 보면 식물이 자랄 토양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이 바위산에, 개나리들이 풍성하게 자라 해마다 ‘노란 꽃대궐’을 선사한다. 봄철이면 응봉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어디를 가나 개나리꽃이 봄을 치장한다. 오늘날 개나리는 전 세계 온대지방에서 널리 사랑을 받고 있지만 원래는 한국 고유종이다.

개나리가 자라는 곳은 주로 울타리나 개울가 언덕 같은 곳들이다. 개나리를 한자로 연교화(連翹花), 신리화(薪籬花)라고도 하는데 모두 울타리란 뜻이 포함되어 있다. 요즘은 개나리를 공원의 산책길이나 무너지기 쉬운 언덕에 심어, 길이나 언덕을 보호하는 용도로도 많이 쓰인다. 어릴 적 중학교 음악교과서에서 국악기인 아쟁을 켜는 활을 개나리 나무로 만들었으나, 요즘은 첼로 활을 쓴다는 설명을 본 적이 있다. 봄철에 만개한 개나리꽃을 임금이 과거급제자들에게 내려주는 어사화로도 쓰였다 한다.

조선시대에는 3년마다 열리는 정시(定時) 과거시험은 음력3월에 열렸으니 개나리꽃이 활짝 피는 시기였다. 과거가 처음 시작된 중국에서는 개나리보다 조금 일찍 피는 영춘화(迎春化)를 어사화로 썼다고 한다. 중국에서 여름에 과거가 있을 때는 노란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중국원산인 모감주나무도 어사화로 쓰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여름에 과거가 있을 때는 홰나무 꽃인 괴화(槐花)를 어사화로 썼다는 기록도 있다.

개나리꽃과 비슷한 영춘화 꽃을 개나리로 혼돈 하는 수도 있다. 들 다 물푸레나무과인데다, 모두 샛노란 통꽃인데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펴서 혼란을 준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둘의 차이가 분명하다. 영춘화는 꽃잎이 6갈래이고 개나리는 4갈래다. 개나리의 나무줄기는 갈색이고 영춘화에 비해 더 굵고 크다. 개나리는 어린 가지를 꺾어보면 가운데 구멍이 있다. 영춘화 가지는 녹색이며 개나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늘고, 꺾은 단면에 구멍이 없다. 영춘화는 수양버들처럼 아래로 자라며, 때로는 담벼락을 타고 오르내리며 자라기도 한다. 개나리의 잎은 상대적으로 크고 가장자리에 톱니모양이 있으나, 영춘화 잎은 상대적으로 작고 두꺼우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다.

어사화로는 생화뿐만 아니라 조화(造花)도 널리 쓰였다. 『춘향전』의 실제 모델인 경북 봉화 출신 성이성(成以性·1595~1664)선생이 대과(大科)에 급제하여 하사받은 어사화는 무궁화모양이다. 계서(溪西) 성이성은 부친 성안의(成安義)가 남원부사로 재직할 때 남원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으며, 1627년(인조5년) 문과에 급제해 사간원 사간, 홍문관 교리와 응교를 역임했다. 합천·담양·창원·진주·강계 부사를 거치는 동안, 어진 정사를 펼쳐 활불(活佛)목민관으로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고, 경상·호서·호남지역의 암행어사를 네 번 역임했다. 사후 그 공적과 청렴함을 높이 평가해 청백리에 올랐다.

성이성의 4대손인 성섭(成涉)의 『교와문고(僑窩文藁)』에서 “고조부께서 수의어사로 호남지방을 암행해 한 곳에 이르니, 호남 12읍 수령들이 큰 잔치를 베풀어 술판이 낭자하고 기생의 노래가 한창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수의어사로 걸인행색으로 들어가 지필(紙筆)을 달라해 “동이의 술은 천사람의 피요(金樽美酒千人血 금준미주천인혈)/소반의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玉盤佳肴萬姓膏 옥반가효만성고)/촛농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燭淚落時民淚落 촉루락시민루락)/노래소리 높은 곳에 백성의 원성소리 높더라(歌聲高處怨聲高 가성고처원성고)”라 쓰자 모두 놀라서 벌벌 떨고 있을 때, 어사출도가 외쳐졌다는 기록을 남겼다

조선시대 과거는 창경궁(昌慶宮) 춘당대(春塘臺)에서 삼월에 열린 사실을, 『춘향전』 이몽룡의 과거답안지에 ‘춘당춘색 고금동(春塘春色 古今同)’라 쓴 글귀에서도 알 수 있다. 『춘향전』에는 이몽룡이 과거에 급제하여 삼일유가(三日遊街)할 때 어사화를 머리에 쓰고 다니는 모습을 그려내는 부분이 있다. 이때 어사화는 아마도 활짝 핀 개나리꽃이 아니었을까.

개나리와 병아리는 서로 그 이미지가 매우 친숙하다. 우리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윤석중 작사/권태호 작곡’인 동요 「봄나들이」를 배우며 개나리와 더 친해진다.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서

병아리 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

봄철 울타리의 개나리가 만개할 즘이면, 이른 봄부터 정성스럽게 알을 품은 암탉이 햇병아리들을 데리고 양지쪽에 나타난다. 보송보송한 노란 털로 온몸을 감싼 병아리들은, 어미닭의 날개 품에 몸을 숨기고 고개만 내밀고 있다가 밖으로 나와 먹이를 물고서는 금방 어미 품속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개나리는 햇병아리와 같은 이미지의 꽃이기에 꽃말이 ‘희망, 깊은 정, 이른 봄의 감격, 달성(達成)’이 된 게 아닐까.

샛노란 개나리꽃이 한창인 봄날 「봄나들이」의 작곡자 소천(笑泉) 권태호(權泰浩)선생을 기념하는 소천권태호음악관으로 가려 법흥교 입구로 향했다. 고색창연한 99간 집 임청각(臨淸閣)을 좌측이고, 맑고 깨끗한 낙동강은 우측이다. 안동댐이 만들어지기 전 주말이면 월곡면 시골집까지 40여리 길을 걸어가려 교복 입은 중·고등학생들이 홰나무 아래 모였었다. 몇 아름이나 되던 그 나무는 이젠 흔적도 없지만, 일제(日帝)가 임청각 주인이었던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선생이 미워서 임청각 담장을 허물고 낸 중앙선 철길은 아직 그대로다. 철길 둑에 서 있는 천년도 더 넘은 국보 제16호 법흥동 7층 전답을 개나리울타리가 지키고 있다. 기단의 사천왕상 부조는 석굴암의 그것처럼 빼어난 솜씨인데, 어찌 시멘트로 보수해놓고 있을까? 여직 일제가 해놓은 그대로라고 한다.

중학교 때 자그마하던 강 건너 언덕 소나무들이 지금은 낙락장송 솔숲이 되어있다. 솔숲을 보자 성주풀이 한 대목이 떠올랐다. “성주야 성주로다/성주 근본이 어데메나/경상도 안동 땅에 제비원이 본이로다./제비원에 솔씨를 받아 소평(小坪) 대평(大坪)에 던졌더니/그 솔씨 점점 자라 소부동(小俯棟)이 되었구나/소부동이 점점 자라 대부동(大附棟)이 되었구나”

국내에서 가장 긴 나무다리인 월영교(月映橋)로 낙동강을 건넜다. 이육사(李陸史)선생 시비(詩碑) 주변에도 개나리꽃이 한창이다. 가지런한 기와집들과 까치구멍집 초가들이 어우러진 민속단지를 지나 고개 길을 넘어갔다. 자그만 언덕 아래 소천권태호음악관에 이르니 개나리꽃이 만발했다. 소천선생은 1939년 모교인 일본음악학교에 한국인 최초로 교수까지 역임했지만, 일제강점기에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끝까지 변절하지 않았다. 한국인 최초로 테너 독창회를 열었고 수많은 명곡들도 작곡했다. 소천선생이 작곡한 내 모교 안동중학교 교가 “영남의 빼어난 기상을 뫃고, 영호에 유유한 정신을 담아. 태화봉 동녘에 홀연히 서니, 거룩한…….”을 조용히 불러본다. 울타리에 핀 샛노란 개나리꽃들도 따라 부르는지 모두 입을 벌리고 있다.

신종찬(신동아의원 원장/의학박사/수필가/시인)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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