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의지에 대한 올바른 이해

  • 입력 2022.09.15 10:49
  • 기자명 전현수(송파 전현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엠디저널] 의지란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면 대개 오해들을 합니다. 대표적인 오해가 바로 ‘숙명론’입니다. 조건에서 자유로운 의지가 없다는 이야기를 ‘인간은 고정된 조건에 따라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이해하고 반발하는 것이지요.

인간은 정말 고정된 조건에 따라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일까요? 불교를 안다면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조건이 계속 바뀐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우리가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원인과 결과가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봅니다. 그걸 ‘업(業)’이라고 하는데, <앙굿따라 니까야> <생각할 수 없음 경>을 보면 우리가 알 수 없는 네 가지 가운데 하나로 업을 꼽고 있습니다. 업에 대해서 알려하면 머리가 터지거나 돌아버리거나 한다는 것이지요. 불교는 숙명론이 아니라 인과의 법칙을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마음의 본질이 그런 것입니다. 불교 세계관에서는 모든 것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하고 무상(무상)하므로 숙명론이 들어설 자리는 없습니다.

이것을 잘 모르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묻습니다. “(조건에서 자유로운) 의자가 없으니 잘 살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 그런데 역으로, ‘자유의지가 없기 때문에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 고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느 스님이 “선한 일을 하고, 수행 열심히 하세요.” 라고 누군가에게 말했을 때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속으로 ‘자유의지가 없는데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해?’ 라고 생각했다 칩시다. 그런데 이치를 잘 살펴보면,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면 스님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수행하고 선한 일 하겠다는 의지를 내서 그냥 하면 되는 거예요. 하지만 다들 경험으로 아시다시피 그게 그냥은 안 됩니다. 존경하는 스님의 그런 말이 새로운 조건이 되어 어떤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거기에서 변화의 싹이 트는 것입니다.

그러니 잘 아셔야 합니다. 자유의지가 없다는 건 조건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뜻이며, 좋은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말이지요. 이와 관련해서, 2006년에 파욱 시야도가 한국에 왔을 때 제가 이런 질문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제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의지도 어떤 조건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하는 것이 우리 삶에 가장 이로운 조건이 됩니까? 어떻게 해야 삶을 잘 살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파욱 시야도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부처님 만나는 게 제일 좋다.”

우리가 무엇을 한다면 자기의 한계 속에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기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조건은 바깥에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뛰어난 사람, 우리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을 만나거나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상윳따 니까야> <아닌다 경>에도 ‘행(行, 의지, 의도)은 남으로부터 오지 나로부터 오지 않는다’ 는 내용이 나옵니다. ‘왕기사’ 라고 시를 최고로 잘 옮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출가한 지 얼마 안 돼서 탁발을 나갔다가 여자를 보고서 감각적 욕망이 많이 일어남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닌다에게 욕망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아닌다가 ‘행을 남이라 보고 괴로움이라고 보고 자아가 아니라고 보라.’ 고 말합니다. 그것은 ‘무언가 해보고 싶은 욕망을 너 자신이 만든거라고 보지 마라. 어떤 조건에 의해서 일어난 것으로 보고 마을을 잘 단속하라.’는 뜻입니다.

저작권자 © 엠디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