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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달에 비친 소망

  • 입력 2022.09.19 12:05
  • 기자명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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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예년보다 거의 한 달 이른 추석으로 지방 곳곳에서 한가위 준비가 한창이다. 조금 이른 명절이지만 한 해 동안 키운 곡식과 과일을 거두면서 결실을 맺는 의미를 기억하는 시기이다. 유독 올해는 자연재해와 에너지난으로 웃을 수만은 없지만 오히려 이러한 상황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는 말을 떠올리며 추석의 의미를 상기시키게 된다. 과거 선조들은 아무리 어렵게 살지라도 함께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1년의 농사를 수확하고 수확물을 가족과 함께 나누며 1년을 정리하는 시기인 것이다.

Joseph Vernet의 The Night; a sea port by moonlight(1771)
Joseph Vernet의 The Night; a sea port by moonlight(1771)

동양과 서양의 '보름달'

 한가위는 가배(嘉俳), 가위, 가윗날과 함께 추석을 이르는 말로, 큰 달이 하늘 가운데 뜨는 음력 8월의 한가운데 날이다. 추석의 보름달은 예로부터 단순한 만월(滿月)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농경사회의 소산이자 풍요다산을 상징하는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던 것이다.

 동양에서는 풍요와 번영의 상징인 만월은 서양에서도 같은 의미일까? 뮤지컬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루나틱(lunatic)은 달이라는 의미를 가진 루나(luna)에서 비롯된 말이지만 의미로서는 달과는 무관하게 미치광이라는 뜻을 가지는데 이는 달빛을 자주 받으면 사람이 영향을 받아 이상해진다는 말이 서양에서 전해지며 생긴 말이기도 하다. 이는 보름달이 떠 있을 때 사람의 마음이 불안해지거나 조바심과 걱정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 달이 태양에서 가장 멀리있을 때 보이는 것이 보름달인데 달이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놓여있는 때이다. 이에 태양의 인력(引力)이 약해지고 달의 힘이 더 커지는 날이기에 조수간만의 차도 가장 큰 날이기도 하며, 대기 중 이온층이 지면에 더 가까이 내려오게 되면서 평소보다 양이온을 더 많이 띄는 공기를 우리가 마시게 되어 혈관속으로 들어오고 이러한 변화가 인체의 생리활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중세시대 의사들은 이처럼 달의 주기가 사람의 건강과 생체 리듬에도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했기에 달의 주기에 맞춰 수술날짜를 잡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렇듯 서양에서는 달이 불길한 징조를 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희곡에서는 달이 자주 등장하는데 ‘보름달(full moon)’이라는 키워드가 정확히 등장하는 것은<리어왕(King Lear)>이 유일하다. 이외에도<한 여름 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 1594∼1595년 추정)>,<오텔로(Otello, 1603)>,<맥베스(맥베스의 비극, The Tragedy of Macbeth, 1606년 추정)>에도 등장한다. 장막극인 <한 여름 밤의 꿈>에서는 총 52회 등장하는데 극의 마지막인 5막에서는 무려 28회 언급된다. 특히 <맥베스>에서는 보름달이 뜬 날 마녀가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며 달을 조종하는 대목이 등장하기도 한다.

음악작품에 그려진 '달'

 문학작품에서 셰익스피어가 달을 자주 사용했듯 달은 음악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베토벤의 ‘월광(Moonlight)’ 소나타, 드보르작의 ‘달에게 부치는 노래(오페라 루살카 중에서)’, 아이나우디의 ‘Full Moon’, 슈만의 ‘달밤(Mondnacht)’, 그리고 20세기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Pierrot lunaire)’까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대중에게 ‘달’이라는 키워드로 알려진 곡은 드뷔시의 ‘달빛(Clair de lune)’이다. 은은한 달빛을 그려낸 멜로디와 전체적으로 잔잔하게 진행되는 이 곡은 인상주의 경향의 곡 중 가장 대표적으로 꼽힌다. 인상주의는 사실 회화의 인상주의에서 영향을 받아 음악에 적용된 용어로 유연한 구성과 유려한 멜로디가 특징적이며, 신비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특히 드뷔시의 달빛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달의 영향으로 대기층에서 지구표면으로 가까워진 이온층으로 인한 신체리듬의 변화를 일으키는 상태를 그대로 그려낸듯 하다.

 파리 인상주의 음악의 시작을 알린 프랑스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C. Debussy, 1862-1918)는 두 권의 전주곡집과 발레음악, 오페라 펠리아스와 멜리장드(Pelléas et Mélisande, 1892) 등 새로운 시각으로 기존의 흐름에 도전적인 경향을 보였다. 이는 이후 20세기 현대음악의 시작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당시 주류를 이루던 독일 음악의 전통에 대항하며 고유의 정체성을 찾기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했던 프랑스 음악가 드뷔시는 자신만의 독특한 울림으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음악사에서 그의 이상을 새로움으로 실현시키고자 했다. 당시 전통으로 굳어져 있던 독일적인 음악형식인 소나타 작곡에 소나타 형식을 벗어나는 대담한 시도들이 그 예이다. 그만의 독자적인 음악언어 확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자연주의와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인간을 둘러싸는 자연을 인식해야 하며, 자연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는 즉, 형식보다는 음악을 듣는 이들이 감상에 있어 아름다움을 느끼는데 장애물이 되거나 지나친 장식은 부자연스러운 것이기에 피해야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드뷔시의 달빛은 그의 초기작품인 베르가마스크 모음곡(Suite bergamasque, 1890-1905)은 전주곡, 미뉴에트, 달빛, 파스피에의 4곡으로 구성되었는데 달빛은 이중 제3곡이다. 이탈리아 로마 유학에서 돌아온 드뷔시는 기존의 화성법에 반기를 들고, 사교계의 귀족들이 아닌 당대 젊은 문인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예술을 열망하고 있었다. ‘달빛’은 고전시대의 모음곡 제목을 차용한 것이 아닌 표제를 붙였으며, 인상주의적 태도로 달빛이 비치는 밤의 풍경을 단아한 악상과 그림을 그려내는듯한 화음으로 표현되었는데, 이는 당시 크게 인기를 끌었던 인상주의 문학과 회화에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 곡은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인 폴 베를렌(P. Verlaine, 1844~1896)의 시집 우아한 축제(Les Fêtes galantes, 1869)중 하얀 달(La lune blanche)의 한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아노 원곡 외에도 관현악곡으로도 편곡되었으며 최근에는 다양한 악기 구성의 편곡으로 연주되기도 한다. 다음은 드뷔시의 달빛에 영향을 끼친 베를렌의 시 전문이다.

Louis Maeterlinck의 Clair De La Lune
Louis Maeterlinck의 Clair De La Lune

하얀 달이 / 빛나는 숲속에서 / 가지마다 / 우거진 잎사귀 사이로 / 흐르는 목소리 // 오, 사랑하는 사람아 // 깊은 겨울 / 연못에 드리운 / 버드나무의 / 검은 그림자는 / 바람에 흐느끼네 // 아, 지금은 꿈꾸는 때 // 별들이 / 무지개빛으로 / 반짝이는 하늘에서 / 크고 포근한 / 고요가 내려오는 듯 // 아득한 이 시간 - 폴 베를렌 <하얀 달> 전문

 도시 위로 뜬 달이 우리를 지켜주듯 갈 곳 잃은 이들에게 삶의 방향을 정해주는듯 하다. 짜여진 틀을 거부하고 자유롭고 대담한 음악 표현을 구사했던 드뷔시가 그러했듯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언어로 삶의 흐름 위에서도 나의 길을 확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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