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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젊어지는 친구들

  • 입력 2022.10.18 11:41
  • 기자명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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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미스터 헤일’ 이 세상을 떠났다. 나는 미스터 헤일이 누군인지 모른다. 다만 그가 여태까지 이 지구상에 살았던 남성중 사장 수명이 길었다는 사실에 감격한다. 나는 여성의 파트너인 남성들이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기를 항상 바란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여성들만 장수를 하는 듯했다. 우리나라의 최연장자나 일본 섬마을의 사진을 보면 정정한 할머니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노년기에 우리의 댄스 파트너가 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남성들도 장수할 수 있다니 반가운 일이 아닌가!

게다가 미스터 헤일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열심히 일을 했단다. 95세 되는 해에 큰아들 내외와 함께 그는 일본 여행을 다녀왔고, 그 다음 해에는 작은 아들과 함께 독일 여행을 즐겼다고 한다. 해산물 사업을 하는 딸네 가게에서 가장 부지런히 노동을 한 것도 그였다. 고향인 메인 주를 떠나 양로원이 있는 보스턴으로 이사 온 것도 100세가 넘은 후였다. 그래도 그는 일하기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현관을 닦고 양로원의 허드렛일을 틈나는 대로 도왔다. “저희 아버지는 한순간도 게으르게 앉아서 TV를 보신 적이 없어요. 늘 일을 하셨지요. 은퇴하신 후의 인생이 직장에 다닌 시간보다 휠씬 길었지만 아버지는 늘 일을 하셨어요.” 자랑스레 말하는 아들의 모습에서 나는 미스터 헤일이 그의 자손들에게 심어준 인생의 교훈이 살아 숨쉬는 것을 느꼈다.

뼈가 닳을 만큼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겠다”

‘쉬지 않고 일하는 기쁨’ 을 내게 가르쳐 주신 분은 나의 어머니다. 몇 년 전 하도 등이 아프다고 해 척추를 비롯한 주요 골격의 방사선 사진을 찍어봤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골다공증 증상이 심한 것은 물론 관절염 증상이 골절마다 보였다. 류마티스성 관절만이 아니라 ‘퇴행성 관절염’ 이 많았다. 너무 많이 사용해 생긴 자국이다. 영어의 “Wear and Tear’(닳아 없어짐, 마멸)이라는 말이 자꾸 X-ray 위에 떠오른다. 이런 관절을 가지신 채 어머니는 지금도 본인의 주위는 물론 게으른 나의 일상사까지 꼼꼼히 챙기신다. 그야말로 쉬실 틈이 없으시다. 어머니가 젊은 시절에 자주 쓰시던 말씀이 있다. “죽으면 썩을 몸, 아껴서 무엇 하겠느냐”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네 형제들 대뇌에 깊이 새겨진 말이다. 한마디로 ‘은퇴 없는 인생’ 이다.

‘부지런한 한국의 여성들’ 을 많이 사랑한 분 중에는 캐나다 선교사로 한국에 오셨던 스코필드 박사가 있다. 젊은 나이에 파견돼 온 한국에서 그는 일본의 압제를 목격하고 세계에 이를 알렸다. 그러다 결국 일본정부에 의해 추방됐으나 그의 한국에 대한 열정은 은퇴 후에 나타났다.

토론토 대학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노년기의 영광을 멀리하고 또 다시 해방된 한국을 찾아 왔다. 10대 소녀였던 내가 그를 만났을 때는 그는 이미 70이 휠씬 넘었었다. 그는 내게 어두움의 뒤에는 빛이 있음을 가르쳤다. 한국 여성의 강인함을 일깨워 줬다. 그리고 여성도 의사가 될 수 있다며 새롭고 낯선 길을 가르쳐 보이셨다. 그래서 나는 70이 넘은 은퇴한 노인의 큰 힘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느꼈다. 그분이 나의 인생을 새롭게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나의 친구들 중에는 ‘환갑은 제2의 인생 시발점’이라면서 자꾸들 젊어져 가는 친구들이 많다. 기쁜 일이다. 나의 어머니처럼 뼈가 닮을 만큼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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