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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medicine]르네상스 미소

  • 입력 2008.08.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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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이라는 용어는 원래 16세기 이탈리아의 화가가 쓴 저서에 처음으로 사용된 것으로 '부활' 또는 '재생'이라는 뜻이다. 그 후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프랑스어와 독일어로 번역되어 르네상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듯 이탈리아 사람들은 고대 로마의 문화를 되찾으려는 의욕이 강했지만, 거기에는 전통 문화를 부활시키려는 단순한 복고 정신뿐만 아니라 인간성의 부활이라는 큰 의미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중세 크리스트 교회가 인간성을 무시하고 신의 권위만을 강조해 왔던 탓으로 이 시대의 인간들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 시대의 인간중심의 생활을 다시 찾으려는 욕구가 강하게 일어났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르네상스를 인간중심의 문화 또는 인본주의 사상이라고도 한다.
당시의 조각이나 회화는 주로 종교적인 내용이었지만 중세의 표현과는 달리 인간적인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즉 예수나 마리아의 모습을 인간과 똑같이 자애롭고 아름다운 감정을 지닌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따라서 인물화에는 이때까지 볼 수 없었던 미소도 그려 넣기 시작하였으며 그 미소의 특징은 모두가 불가사의하고, 애매하며, 수수께끼에 쌓여 있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 미소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르네상스와 더불어 그림이나 조각 작품 속 미소의 전성시대를 맞이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미소의 표현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3대 거장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1564), 라파엘로(Sanzio Raffaello 1483-1520)의 작품들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사망할 때 까지 옆에다 간직하였던 그림은 ‘모나리자(Mona Lisa)' (1503-05), ‘성 안나와 성 모자’ (1502-1513), 그리고 ‘세례자 요한’ (1513-16)의 3점이었는데 이 그림들 모두가 미소와 관계되는 그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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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표적인 예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림이 된 작품이 ‘모나리자’이다. 이 초상화를 보면 예술이 자연을 어느 정도까지 묘사할 수 있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것은 화가가 이 그림에 자기가 갖고 있는 정묘한 필치를 모두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그림의 주인공 모나리자는 지오콘도(Francesco dil Giocondo)의 세 번째 후처로 출가하여 그녀가 낳은 어린애가 죽었기 때문에 실의에 잠겨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검은 상복을 입고 있다. 그래서 화가는 그녀의 초상화를 그릴 때 사람을 고용하여 노래를 부르게 하든가 익살을 부리게 하여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 그녀로 하여금 미소를 잃지 않게 하였다고 한다.
눈은 마치 실물을 보는 것같이 윤기가 있으며 약간 긴장하면서도 빛이 난다, 속눈썹은 피부에서 솟아난 듯이 섬세하기 비길 데 없이 표현되었고, 눈썹은 여기저기에 성글게 표현되어 눈썹이 있는 것인지 없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이다. 아름다운 코는 장미 빛이며, 부드럽고 알맞게 다문 장밋빛 입술의 묘사는 미소 짓는 것인지 화난 것인지가 애매한 표정으로 이 까닭 모를 미소가 이 그림의 주가를 높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얼굴빛은 색을 칠하였다 기 보다는 살색 그대로이다. 목의 오목한 데를 주의 깊게 보고 있으면 맥박이 뛰는 것 같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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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작품 ‘성 안나와 성 모자’는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고 성모의 어머니인 성 안나의 3대의 그림인데 아기 예수가 양을 잡으려고 어머니의 손에서 벗어나고 있으며 마리아는 그녀의 어머니의 무릎에서 일어서 예수의 행위를 막으려 하고 있다. 양은 예수의 수난을 상징하는 희생의 동물이기 때문에 이를 막으려는 장면이다. 그러나 세 사람의 얼굴에는 모나리자의 미소에 못지않은 자비의 미소가 감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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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지니고 있던 세 번째 작품인 ‘세례자 요한’은 레오나르도의 마지막 작품으로 세례자 요한은 아름다운 젊은이의 상으로 표현하였는데 세 작품 중 그 미소가 가장 확실하게 표현된 그림이다. 아마도 이 그림은 레오나르도의 젊은 날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자기 인생의 꿈, 이상으로 하였던 행복을 실현시킬 수 있는 가정을 가질 수는 없었지만 그러나 이를 위해 평생을 노력한 것을 회상하는 의미에서 남긴 작품인 듯싶다.
레오나르도는 인간 사회의 미래를 확실하게 보고 여러 분야에 아직도 도움이 되는 갖가지의 교훈을 남겼다. 그러나 레오나르도 인생의 정말로의 꿈은 인간다운 애정이 가득 찬 평범한 가정에서 마음 편안한 삶을 원했던 것 같다. 아무리 시대를 초월한 천재라 할지라도 그의 몸에는 뜨거운 피가 흐르고 지난날을 회상하면 의미 있는 따스함이 넘치는 미소, 즉 만능표정으로서의 미소가 인간 최고의 예술작품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시사한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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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조각 작품인 ‘죽어 가는 노예’ (1513-15)는 매우 모호한 작품으로 잠에서 깨어나는 모습인지 아니면 죽어 가는 모습인지가 잘 분간할 수 없으나 작품명이 ‘죽어하는 노예’이니 분명 죽는 순간을 표현 한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보면 온몸이 팽팽히 긴장한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생명이 빠져나가면서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보이 기도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 죽어가는 노예의 표정을 황홀경에 가까우며 성적인 쾌감과 종교적 희열로 해석하고 있다. 반면, 잠이 든 채로 태양이 밝게 빛나는 어딘가를 꿈꾸며 죽는 가벼운 미소는 인간성의 진실을 들어내는 미소일 수도 있다.
이렇듯 죽어가는 노예의 얼굴 표정은 사전기(死戰期)에 들어서서 죽음의 과정이 진행되는 얼굴의 표정 그대로이며, 얼굴의 근육에는 경한 경련이 일고 있어 눈은 감았지만 입가 근육의 경련은 마치 미소 짓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른바 죽음의 미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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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가 그린 그림은 많지만‘라 포르나리나’(1520)라는 그림은 여러 면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주제 ‘라 포르나리나’라는 것은 이탈리아어의 ‘빵집 딸’이라는 뜻이며 그 모델의 본명은 마르게리타 루티(Margherita Luti)이다. 그런데 화가가 그 모델의 본명을 제목으로 하지 않고 ‘빵집 딸’이라는 주제를 붙인 것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으며 화가는 어떻게 해서 그녀를 모델로 그렇게 많은 그림을 그렸는가가 궁금해진다.
그녀의 집은 교황청 근처에서 빵집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라파엘로가 교황청으로 일을 하기위해 등청하다가 우연히 빵집 마당의 샘물에서 발을 씻고 있는 마르게리타를 보는 순간 그녀가 바로 자기가 찼고 있던 이상적인 모델상의 모습 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어 고만 가든 길을 멈추고 숨어서 그녀를 한참 동안 바라보는 가운데 그녀는 자기 그림의 모델로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재확인하고 마음을 완전히 굳혔다는 것이다.
그녀의 무엇이 라파엘로의 마음을 그렇게 움직였는가에 대해서는‘라 포르나리나’의 그림에 표현된 그녀의 생김새와 그 얼굴의 표정을 보면 답이 저절로 나올 것 같다. 즉 그녀의 눈동자는 겁이 날정도의 강한 정열을 내뿜고 있지만, 진정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볼 수 없는 애틋한 표정에서 정과 친밀 그리고 진실성을 느끼게 하며 웃는 표정이 아닌데도 입의 양쪽 구각이 약간 올라가 마치 미소를 지우는 듯이 보이는 것으로 화가가 그녀의 눈과 입의 표정에 포로가 되었던 것을 그대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마르게리타의 그림을 놓고서는 유명화가들도 상당한 관심을 표명하고 그 그림의 주인공의 얼굴을 재현하는가 하면 미술사상 보기 드문 화가와 모델의 사랑 이야기도 남겼다.
그리고 보면 미소야말로 인간 최고 최대의 예술성을 지닌 표정이라는 것을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들의 작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