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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식증 소녀

  • 입력 2022.12.27 16:22
  • 수정 2022.12.27 16:27
  • 기자명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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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13세 소녀는 학교에서 늘 A만 받는 우수한 학생이었다. 집안에서도 순종적이고 말썽부리지 않는 착한 딸이었다. 소녀를 데리고 나를 찾아온 어머니는 “우선 딸이 살아 있게만 해달라”며 급박한 마음을 호소했다.

문제는 약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2살이 되던 해 9월쯤 새로운 학기를 맞는 다른 중고등학생들처럼 그녀도 새로운 급우들을 만나는 것이 불안했다. 누구에게든 잘 보이고 싶었고 인기 있는 친구들이 부러왔다.

어느날 그녀는 자신이 너무 살쪘다고 느꼈다. 5피트 4인치에 120파운드이니 객관적으로 정상 체중임에도 말이다. 그녀는 그때부터 먹는 것을 피했다. 항상 허름한 옷을 입고 다니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급속하게 체중이 빠지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드디어 미릿결도 거칠어지고 월경이 끊어져 버렸다. 소녀의 체중은 겨우 90파운드였다. 본래 몸무게의 25%를 잃은 상태다.

거식증이라는 진단이 내려졌고 가족과 소녀의 피나는 투쟁이 시작됐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너무 불안해요. 내가 아직도 너무 뚱뚱해 남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아요.”

팔다리는 앙상하게 말라 있고 혈압이 극도로 내려가 있는 소녀의 숨가쁜 소백이다. 심장 박동이 60 이하로 떨어져 있으니 일반인 같으면 앉아 있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거울을 보면 아직도 내 몸이 비대하게 느껴져요.”

무슨 원인인지 소녀의 바디 이미지(Body Image)는 이렇게 고정돼 있다. 그러니 거울에 비치는 모습은 마음 속의 상 때문에 비뚤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몇 가지 원인을 찾아봤다. 최근의 정신과학연구에 따르면 거식증이나 다른 섭식 관련 증상(폭식증 포함)들이 유전과 관계있다고 한다. 이들은 심한 강박 증상이나 우울 증세도 보인다.

이 소녀의 아버지도 완벽을 요구하는, 그러나 모범적인 전문인이다. 학교 선생님인 소녀의 어머니는 매사에 적극적이며 딸을 사랑하는 백인 여성이다. “저와 남편이 이혼한 것이 아이에게 영향을 주었겠지요?” 부모의 이혼은 소녀가 11살 되던 해의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여성 호르몬인 난소 호르몬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이에 따른 뇌 화학물질의 이상적 불균형이 오기 쉬운 시기였다. 아마 소녀는 자신이 더욱 마르고 아름다워지면 모든 일이 해결되리라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아름다움은 ‘몸이 마른 상태’ 라고 현대사회는 가르친다.

여성 호르몬은 여자 아이를 미래에 분만이 가능한 여성의 몸으로 바꾸어 준다. 그래서 월경이 시작되기 몇 년 전부터 젖멍울이 서고 엉덩이가 커진다. 체형이 변하면서 지방이 축적되는 이유는 언젠가 새로운 생명을 잉태했을 때를 대비하는 창조주의 깊은 뜻 때문이었으리라.

어른으로의 변화는 그러나 심리적 성장을 필요로 한다. 부모들도 이때가 되면 힘들다. 어느 날 갑자기 처녀(?) 몸이 되며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독립체가 되면 많은 부모가 이를 못견뎌 한다. 물론 무의식적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그래서 옛날 7~8세 때의 ‘소녀 모습’ 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다 생명을 잃을 수 있다. 다행히 요즘은 치료법이 많아 발달되어 상당 및 가족치료, 항우울제 치료 등을 한다. 거식증은 오랫 세월을 두고 치료해야 하는 무서운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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