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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중독을 끊는 시스템 만들기

  • 입력 2022.12.27 16:26
  • 기자명 전현수(송파 전현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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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은 다릅니다. 중요한 건 생각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하게 되는 상태를 만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에서 빠져나오려면 술을 보고도 안 마실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야 합니다. 술은 안 좋으니 끊어야겠다고 백 번 다짐해도 술 앞에서 무너진다면 영원히 알코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제가 볼 때는 모든 중독은 그것을 많이 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반복하는 과정에서 뇌에 회로가 형성되고 길이 나서 조건에 의해서 중독 상태가 됩니다. 그 중독에서 빠져나오면 안 해야 합니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안 하게 할 수 있는지를 연구해야 합니다.

알코올 중독자를 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은 술을 강제로 못 마시게 하여 술과의 연결고리를 끊고 새로운 회로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입원을 하게 되면 일을 할 수 없으므로 생활에 지장이 올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알코올 중독에 쓰는 ‘알코올 스톱’이라는 약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생산이 중단되어 구할 수 없는데, 그 약을 먹으면 알코올이 몸속에서 분해가 안 되기 때문에 술을 마시면 몸이 괴로워집니다. 속도 울렁거리고 얼굴도 붉어지고 호흡도 불편해지고 심장이 갑갑해서 굉장히 힘듭니다. 쉽게 말하면 술 잘 먹던 사람이 술 아주 못 먹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알코올 중독자에게 그 약을 처방해주면, 알코올 중독자들은 일단 약을 먹고 술을 마셔봅니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하지만 굉장히 괴로워지거든요. 그런 고통을 경험한 다음에는 그 약을 먹고 그 약이 작용하는 동안에는 술을 안 먹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 약을 어떻게 먹게 하느냐? 사실 알코올 중독자도 술 안 먹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대개는 아침에 일어나면 그런 기분이 든다고 해요. 자는 사이 술이 좀 깨서 정신이 돌아오는 거지요. ‘이렇게 살아서야 되겠나.’ ‘가족들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구나.’ 하는 자각이 드는 겁니다. 그런 상태일 때 알코올 중독자와 치료 동맹을 맺습니다.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에 온 환자에게, 이 약을 드시라고 권하는 거지요. 환자의 건강한 부분과 치료자가 동맹을 맺어서 환자의 병적인 부분을 공략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알코올 중독을 수월하게 치료하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건강한 부분까지 망가진 환자는 약 자체를 먹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이 방법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런 분은 병원에 입원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알코올 중독은 좀 심하게 말하면 알코올이 누군가를 접수한 상태입니다. 알코올 공화국에서 환자는 하수인이 돼 있는 거지요. ‘야, 술 넣어.’ 하면 술 넣어야 합니다. 알코올은 강력한 거인과 같은 존재고 환자는 작고 연약한 존재이므로 싸워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백전백패지요.

그래서 저는 알코올 중독 환자들에게 술을 보면 무조건 도망가라고 이야기해줍니다. 길을 걷다가 술집이 보이면 삥 돌아서 가라고도 하고, 집에 있는 술을 직접 치우기보다는 가족들에게 대신 치우도록하기도 합니다. 앞에서 말했듯 모든 중독은 많이 해서 이뤄진 거니까 안 하면 중독의 힘이 점점 약해집니다. 술 보고 도망치는 걸 계속하면 환자를 알코올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상태가 점점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집에 CCTV를 설치해서 술에 취했을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 찍어서 직접 보라고도 합니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자기가 술에 취했을 때 어떤 사람이 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직접 확인해서 알도록 하는 것도 효과가 있습니다. 중독은, 당사자가 그것을 하면 자기에게 막대한 손해가 온다고 절실히 깨달아야 끊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보면 대체로 술 먹는 것 이외에 다른 취미가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는 데 재미거리가 술밖에 없는 거지요. 그리고 술을 안 먹으면 자기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사람은 일단 술을 마시면 부정적인 이야기를 쏟아내고는 합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술보다 더 좋은 무언가를 제시해줄 필요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무엇에 흥미를 보이는지 자세히 관찰해서 그에 맞는 것을 권하는 것이지요. 의사 표현을 잘 못하는 사람에게는 의사 표현 기술을 가르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니까 알코올 중독이라 해서 술 하나만 다루지 말고, 환자의 삶을 총체적으로 꼼꼼하게 파악해서 다각도에서 구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정리하면, 일단 실제 술로부터 도망가고, 그 다음에는 술과 관계된 기억이나 생각, 정서로부터 철저히 도망가고, 마지막으로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줄 새로운 재미 혹은 방법을 계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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