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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배경을 바꾸는 기획. 그 겨울이야기로

  • 입력 2022.12.30 18:46
  • 기자명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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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얼마 전 내린 겨울비는 계절이 변화했음을 보란듯 알려주는 신호와 같았다. 기후변화로 여름이 길어지고 겨울이 짧아지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하지만 절기의 변화는 여전히 느낄 수 있다. 특히 이번 겨울은 세계 정세의 변화로 전세계를 덮친 에너지난(Global Energy Crisis)으로 더욱 추워질 전망이라 한다.

겨울은 꿈을 꾸게 한다. 야외활동보다 실내에서의 생활이 주를 이루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는 일년의 반이 겨울인 곳이 있을 정도라 하지만, 실내에서는 전반적으로 난방이 잘되어 어느 것에 몰두하기 좋아 러시아에 대문호와 뛰어난 예술가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러시아의 영혼이라 불리는 푸슈킨(A. Pushkin, 1799-1837)을 통해 낭만을 사랑하는 이들은 질풍노도의 낭만을 발견하고, 냉철한 이성을 사랑하는 이는 사실주의적 시선을 발견한다. 세상을 비판하는 차가운 냉소와 사랑에 빠진 장밋빛의 사랑의 노래를 읽기도 한다. 이처럼 푸슈킨은 러시아 문학의 거장을 넘어 러시아 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다.

눈 덮인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I 이미지출처 bienvenidospb
눈 덮인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I 이미지출처 bienvenidospb

눈 덮인 도시와 예술가들

러시아의 대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푸슈킨의 드라마, , 그리고 소설작품들 중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눈 오는날과 어울리는 오페라로 만든 작곡가가 바로 차이코프스키(P. I. Tchaikovsky, 1840-1893)이다.

화려한 발트해 사이로 찬란한 건축물들이 자리한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현재 러시아 제 2의 도시로, 도시가 완성된 18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는 러시아의 수도였다(이후 1918년 모스크바로 수도가 옮겨가며 제2의 도시로 되었다). 러시아 표트르 대제가 핀란드로부터 거둔 땅에 계획도시를 만들면서 그의 야망을 담은 러시아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옛 소련의 레닌그라드로 잘 알려진 이 항구도시는 86개의 강과 운하, 101개의 섬이 있어 북방의 베네치아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만큼 도시의 운하와 강 사이로 곳곳마다 러시아 근세사가 스며든 화려한 궁전, 유럽풍의 건축물, 대사원, 성당이 위치해있다.

푸슈킨을 포함해 고골(Nikolai Gogol, 1809-1852), 도스토예프스키(F. M. Dostoevsky, 1821-1881)의 작품들에는 이 도시의 지명과 건축물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들의 작품 대부분이 이곳을 배경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현재까지도 세계적인 문화와 예술의 도시로 불리운다. 특히나 백야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이곳은 표트르 대제의 거침없는 개혁정신이 그대로 남아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백야 I 이미지출처 bienvenidospb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백야 I 이미지출처 bienvenidospb

염세이지만 낭만주의로 가득 찬 오페라

차이코프스키는 함박눈이 내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낭만적이고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를 남겼는데, 오페라 예프게니 오네긴(Eugene Onegin)과 스페이드의 여왕(The Queen of Spades, Op. 68, 또는 Pique Dame로 불림)이다. 예프게니 오네긴의 타티아나가 오네긴에게 쓴 편지 장면, 스페이드 여왕에서 눈 녹는 봄에 눈부신 러시아의 공원 장면을 시작으로 하는 미스터리한 작품까지 오페라의 장면 장면마다 낭만주의가 묻어난다.

오페라 The Queen of Spades의 한장면 I 이미지출처 Metropolitan Opera
오페라 The Queen of Spades의 한장면 I 이미지출처 Metropolitan Opera

푸슈킨의 단편소설인 스페이드의 여왕(The Queen of Spades; Pikovaya dama)1833년 가을, 가족의 영지였던 볼디노라는 마을에서 집필을 시작하여 이듬해 3월 문학 잡지인 Biblioteka Dlya Chteniya에 처음으로 출판하였다. 차이코프스키는 푸슈킨의 원작 스토리를 바탕으로 작업했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냈다. 3막으로 구성된 오페라로, 차이코프스키의 동생인 모데스트가 푸슈킨의 단편소설을 기초로 하여 동명의 오페라의 러시아어 대본을 작성했다. 189012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Mariinsky Theatre)에서 초연되었으며,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구스타프 말러(G. Mahler, 1860-1911)190212월 빈 국립 오페라(Wien Staatsoper)에서, 19103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ropolitan Opera)에서 연주를 선보였다. 이 오페라에 대해 말러는 차이코프스키의 작품 중 가장 성숙하고 예술적으로 견고한(the most mature and artistically solid)’곡이라 평하기도 했다.

오페라의 주제는 주로 도박 중독의 파괴적이고 고립된 특성에 대해 그린다. 푸슈킨의 원작은 오페라를 위해 극적인 면에서 몇가지의 수정을 거쳤다. 오페라의 주인공 헤르만(Hermann, 테너)는 모든 7(12장 구성, 23장 구성, 33장 구성)에 출연하여 노래하기에, 성악가에게 굉장한 테크닉과 인내를 요구하기도 한다. 특히 이 역은 러시아의 유명 테너인 니콜라이 피그네르(Nikolay Figner)를 위해 작곡되었다고 한다. 작품의 초연을 위한 리허설에서는 차이코프스키가 직접 리허설에 참여하며 지도했다고도 전해진다.

푸슈킨의 원작이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에서 많은 변화를 이끌면서 원작을 바탕으로한 다양한 시도를 통해 새로운 세계의 작품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오페라의 끝은 결국 비극적이지만, 장면의 말미에는 주인공이 용서를 구하고, 여주인공 리자를 향한 그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녀가 용서하기를 바란다. 모두 그의 고통스런 영혼을 위해 기도하게 되는 장면이다.

음악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소리로 전해주는 말, 즉 음악의 전령이 주는 사랑의 메시지이다. 사랑할 수 있는 시간. 기도하고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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