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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나들이

  • 입력 2023.02.15 11:08
  • 기자명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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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이번 자선 콘서트가 열린 Parc de la Villette
이번 자선 콘서트가 열린 Parc de la Villette

지난달 프랑스 파리에서 클래식과 케이팝이 드디어 한 무대에 올랐다. 바로 125(현지시간) 파리 19구 빌레트 공원(Parc de la Villette) 내 제니스 공연장(Zenith Paris - La Villette)에서 열린 프랑스 영부인 브리지트 마크롱(Brigitte Macron) 여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자선 단체(l'opération Pièces Jaunes, 노란 동전 모으기 운동)가 주최하는 갈라콘서트(Le Gala des Pièces Jaunes)의 피날레 무대이다. 이 콘서트는 매년 아픈 아이들의 입원조건 개선이라는 취지를 갖고 다양한 모금행사와 봉사활동 등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자선 콘서트의 티켓 판매 수익과 콘서트를 위해 모인 기금 전액은 프랑스 병원재단에 기부된다고 공연 후 인터뷰에서 마크롱 여사는 직접 밝혔다.

Le Gala des Pièces Jaunes 피날레 무대
Le Gala des Pièces Jaunes 피날레 무대

서양 클래식의 정적 청취에서 케이팝으로의 외출

그룹 블랙핑크는 케이팝 아티스트로는 최초로 콘서트에 초청받게 되었으며 마지막 순서로 무대에 올라 그들의 앨범에 수록된 셧 다운(Shut Down)’핑크 베놈(Pink Venom)’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프랑스의 카퓌송 형제(The Capuçon brothers)’로도 알려진 동생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Gautier Capucon)이 함께 무대에 올라 핑크 베놈반주에 함께했으며, 21세기 바이올린 신동으로 알려진 스웨덴의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로자코비치(Daniel Lozakovich)셧 다운이라는 곡에 샘플링된 원곡,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La Campanella)’의 바이올린 선율을 그대로 재현했다.

기존의 블랙핑크 곡들을 가득 채운 전자음악(EDM)이 아닌 바이올린 연주가 그 자리를 장식했다는 점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셧 다운이라는 곡은 공개되자마자 유튜브 조회수가 1억을 넘기고, 셧 다운의 발표 이후 영국 오피셜 앨범차트 1위와 빌보드 메인차트 정상에 오르면서 전세계에서 수많은 찬사를 받았다. 블랙핑크의 이 곡은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파가니니(N. Paganini, 1782-1840)의 곡을 샘플링했다.

프랑스 대통령 집무실인 엘리제궁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블랙핑크
프랑스 대통령 집무실인 엘리제궁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블랙핑크

파가니니와 리스트, 그리고 종소리

1826년 작곡된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2(Violin Concerto No. 2 in B minor, Op. 7)3악장은 론도 테마의 반복되는 구간이 마치 종소리와 같은 특징이 있어 라 캄파넬라(La Campanella)’ 혹은 라 클로셰(La Clochette)’라는 별칭을 가진다. 캄파넬라는 이탈리아어로 관현악에 쓰는 타악기의 하나로 작은 쇳조각을 반음계순으로 소리가 나는 악기이며, 클로셰는 프랑스어로 작은 종, 방울을 일컫는다. 또한, 그는 직접 3악장의 타이틀에 Rondo à la clochette, 즉 종()에 부치는 론도라고 적기도 했다.

이 곡은 파가니니의 첫 번째 협주곡을 완성한 이후 8년 만에 작곡한 곡으로, 리스트(F. Liszt, 1811-1886)가 편곡한 라 캄파넬라의 원곡으로 더 유명하며, 교회당의 종소리를 제재로 하여 만든 곡으로 알려져있다.

파가니니는 초절적인 기교, 비르투오조의 대명사로 알려져있는데 이 협주곡 2번은 그가 한창 연주여행을 다니며 활발한 활동을 하던 시기에 작곡한 곡으로 바이올린의 화려한 기교가 인상적이다. 이 곡의 별칭인 작은 종이라는 의미의 제목이 보여주듯 바이올린의 독주부에서는 하모닉스 주법(한 손가락은 누르고 동시에 네번째 손가락은 살짝 갖다대는 주법으로 인위적으로 두 옥타브 높은 소리를 얻을 수 있음)으로 종소리를 묘사하는데, 특히 화려한 테크닉이 가능했던 파가니니의 연주였다면 실제 종소리가 바이올린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도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악마적일 정도로 화려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독창적인 아이디어들을 파가니니가 작곡에 시도했기에 19세기 유럽의 청중들에게는 충격을 주었으며 당시 유럽 음악계에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는 오직 화려한 테크닉이 뛰어난 자신을 위해, 그 기교를 선보이기 위해 곡들을 작곡했기에 오랜 시간동안 오직 파가니니만이 연주할 수 있는 곡들이 대부분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리스트가 피아노곡으로 편곡했고 많은 피아니스트들에게 사랑받아 종종 이 곡을 리스트의 피아노곡으로 알고 있는 이들도 많다. 리스트의 어린시절인 1830년 파리에서 파가니니의 연주회에서 그를 보고 감동해 자신도 피아노 연주자로서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리스트는 15세 이후 평생에 걸쳐 연습곡을 작곡했는데 여기에서도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연주를 피아노로 재해석했다. 리스트의 피아노 연주 테크닉을 집대성한 12곡의 초절기교 연습곡(Études d'exécution transcendante)6곡의 파가니니 대연습곡(Grandes études de Paganini)가 바로 그러한 시도를 보여준 대표적인 예이다. 피아노곡으로 편곡된 라 캄파넬라는 이 파가니니 대연습곡의 3번 곡이다.

라 캄파넬라의 도입부 고음이 마치 종을 치는 소리와 같다 전해지는 만큼 한국의 대중음악 케이팝이 유럽 무대에서 소수의 팬층만이 아닌 전 세계로 펼쳐 울리는 새해가 되길 바래본다. 파가니니를 품은 리스트가 피아노의 초절기교를 장식했던 것처럼 블랙핑크가 파가니니를 입고 새로운 역사를 써냈다는 찬사(미국 Forbes)와 같이 많은 아티스트들의 작업이 꾸준히 주목받을 수 있기를 엠디가 함께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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