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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달빛 아래의 숭고함

  • 입력 2023.03.09 14:03
  • 기자명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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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봄이 움트는 3, 햇살 위로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는 계절이 시작되었다. 지난해 가을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 재개관한 LG아트센터는 개관 이후 국내외 정상급의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내세운 라인업을 보이고 있다. 2023LG아트센터서울의 기획공연 시리즈인 콤파스23(CoMPAS23)의 화려한 시작을 알리는 공연은 30년만에 한국을 찾는 파리오페라발레단(BOP, Ballet de l'Opéra national de Paris)<지젤(Giselle)>이다. 지난 20218월 엠디 지면을 통해 전해지기도 했던 최초의 동양인 에투알(étoile, 수석무용수)로 선정된 무용수 박세은의 소식에 이은 반가운 소식이다.

파리오페라발레의 지젤과 빌리들의 군무 / 이미지출처 Opera national de Paris
파리오페라발레의 지젤과 빌리들의 군무 / 이미지출처 Opera national de Paris

1669년 창단된 세계 최고(最古)의 파리오페라발레단

유럽의 대표적 오페라 극장인 프랑스 파리 국립오페라단의 발레단인 파리오페라발레단은 영국 로열 발레단(The Royal Ballet)’, 미국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와 함께 세계 최고의 발레단으로 꼽히며, 루이 14세가 그의 임기 중 직접 공연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1669년 창단된 만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발레단이자 지금까지도 그 명성을 자랑하는 파리오페라발레가 30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대전 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33일과 42회 공연 후, 서울 LG아트센터의 LG SIGNATURE 홀에서 8일과 11일까지 총 5회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1993년 세종문화회관에서의 <지젤> 공연 이후 첫 내한으로, 93년 당시의 <지젤>이 유일했을 정도로 파리오페라발레의 국내 공연은 굉장히 보기 드물다. 이번 내한공연은 현 예술감독인 호세 마르티네스(José Martinez)와 무용수 70명을 포함하여 총 120명이 내한하며, 오케스트라 연주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맡았다. 스페인 출신의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호세 마르티네스는 파리오페라발레의 에투알(1997년 선정)이자 2010년부터 스페인 국립무용단의 예술감독을 맡았고, 지난 202210월부터 파리오페라발레의 예술감독(Dance Director)으로 선정되어 한국을 찾는다. 또한, 그는 30년 전 내한공연 <지젤>에서 솔리스트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지젤과 알브레히트 / 이미지출처 Opera national de Paris
지젤과 알브레히트 / 이미지출처 Opera national de Paris

낭만발레의 정수 지젤

프랑스 낭만 발레의 대표작인 <지젤>은 안무가 장 코라이(Jean Coralli)와 쥘 페로(Jules Perrot)이 안무를, 아돌프 아당(Adolphe Adam, 1803~1856)이 작곡했다. 아돌프 아당은 베를리오즈나 리스트와 같은 거장들이 활약하던 낭만주의 시대에 극장음악(Theatre Music)을 작곡했다. 극장음악은 오페라나 발레를 넘어 판토마임이나 오페레타와 같은 극장의 공연을 위한 음악을 포함한다.

아돌프 아당은 39편의 오페라와 14편의 발레곡을 작곡했다고 하는데 대부분 잊혀졌으며 그의 또 다른 유명 작품인 해적(La Corsaiore, 1856)과 지젤만이 현재까지 무대에 오르고 있다. 19세기 전반 격동하는 시대적 배경에서 낭만주의 사조는 예술 전반에 영향을 미치면서 낭만주의 음악과 낭만주의 발레 등 예술 활동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 시기의 발레는 오페라의 막간에 행해졌던 단순한 여흥에 그치는 공연이 아니라, 독립성을 갖춘 극장예술의 위치로 부상했다. 당시 아당은 비교적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오페라와 발레 음악을 작곡하여 오늘날의 대중음악과 같이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귀족과 서민층 모두의 필요를 충족했던 작곡가였다. 당시 발레는 궁정에서 왕족과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지만, 이후 도심의 극장으로 그 범위를 확대하며 더 폭넓은 대중들이 접할 수 있는 여흥이 되었다.

지젤이 초연된 르 펠티에 극장의 Grande Salle, 1864년 그림
지젤이 초연된 르 펠티에 극장의 Grande Salle, 1864년 그림

<지젤>은 파리오페라발레와 1841628일 파리 르 펠티에 극장(Salle Le Peletier)에서 초연되었다. 당대 최고의 발레리나 중 하나인 이탈리아 출신의 칼로타 그리시(Carlotta Grisi, 1819~1899)가 지젤을 맡았고, 그녀를 좋아하던 프랑스의 낭만주의 시인 테오필 고티에(Théophile Gautier, 1811~1872)가 대본을 썼다. 낭만 발레의 대명사인 <지젤>에는 또다른 이름이 붙는다. 바로 <지젤 혹은 윌리(독일어로는 빌리)(Giselle ou les Wilis)>이다. 당대 최고의 발레리나인 그리시를 추종하던 시인 테오필 고티에가 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1835년에 쓴 독일 전설에 관해 쓴 책 <De l'Allemagne(도이칠란드에 관하여)>를 읽던 중, 결혼을 못하고 죽은 처녀 귀신이 빌리가 되어 남자들을 유혹하고 죽을 때까지 춤을 추도록 만들었다는 전설의 내용에서 영감을 얻어 베르누아 생 조르주(Jules-Henri Vernoy de Saint-Georges)와 협력하여 이 독일 설화를 주제로 한 발레 <지젤>의 기틀을 구상했다.

초연 당시 지젤 역에는 작품 탄생의 단초가 되었던 그리시가 캐스팅되었고, 안무는 당시 파리오페라 극장의 수석 발레마스터였던 장 코라이가 담당하기로 되어있으나, 지젤을 맡은 그리시가 연인이었던 쥘 페로를 추천하게 되면서 작품에서의 모든 독무는 그가 맡게되었고, 장 코라이와 쥘 페로가 안무를 공동으로 짜게 되었다.

초연 이후 지젤은 예술적, 상업적으로 모두 큰 성공을 거두면서 파리오페라발레의 상징적인 작품이 되었다. 이후 다양한 안무가들과의 작업으로 변주되기도 했는데, 이번 2023년 내한에서 선보일 <지젤>은 원작에 기초하여 1991년 파트리스 바르(Patrice Bart)와 외젠 폴랴코프(Euegene Polyakov)가 재안무한 버전으로 선보인다.

고티에가 하이네의 책에서 영감을 받은 중세 독일의 전설에 의하면 춤을 좋아하는 처녀가 결혼 전에 죽으면 빌리라는 귀신이 되어 밤마다 무덤에서 빠져나와 젊은이를 유혹하며 광기의 춤을 추게 함으로써 죽음에 이르게 한다고 한다. 작품에서 빌리(Wilis)는 춤의 요정이 되어 밤마다 무덤에서 깨어나는데, 특히 2막에서 24명의 빌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빌리들의 군무는 발레 역사에서 명장면으로 꼽힌다.

파리오페라발레의 지젤 / 이미지출처 Opera national de Paris
파리오페라발레의 지젤 / 이미지출처 Opera national de Paris

아름다운 시골 여자인 지젤은 마을 사람으로 변장한 귀족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지지만, 지젤을 짝사랑하던 마을 청년 힐라리온에 의해 알브레히트에게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로 인한 슬픔에 빠져 죽게 된다. 결국, 지젤은 빌리가 되었지만 빌리들의 여왕인 미르타가 알브레히트를 밤새도록 춤을 춰 죽게하려 하자 그를 지켜준다.

이 작품은 무용수들의 테크닉을 보여주는 고난도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특히 지젤 역을 맡은 발레리나의 목에서 어깨를 거쳐 팔로 떨어지는 선을 가리켜 지젤 라인 또는 지젤 곡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지젤 라인이 표현하는 아름다움과 공기처럼 가벼운 몸놀림은 모두 고난도의 테크닉에서 나온다. 1막에서 연인의 배신을 알게되고 실성해가는 지젤의 모습을 그린 매드 씬2막에서 빌리들의 군무가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봄은 모든 자연.

그 자연에 사는 사람.

우리들을 춤추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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